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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94년 동안의 한' 간토학살 유족회 발족…"국가가 규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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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강제동원역사관'서 30일 발족식…서울서도 25일 추도식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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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20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1923년 간토(關東) 대지진 때 학살당한 한인들의 추도식'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권영전 기자 =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94년 전 일본인들이 조선인 6천여명을 집단 살해한 사건인 간토(關東)학살의 희생자 유족들이 진상규명과 배상을 요구하기 위해 유족회를 만든다.

21일 간토학살 다큐멘터리 영화 연출자 재일동포 오충공(吳充功·62) 감독, 김홍술 부산 애빈교회 목사, 민족문제연구소 등에 따르면 간토학살 희생자 유족들이 이달 30일 오후 2시 부산 국립 일제강제동원 역사관에서 '관동 진재(震災) 조선인학살희생자 유족회' 발족식을 연다.

그간 강제동원 피해자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원폭 피해자의 유족회나 단체는 있었지만 간토학살 관련 유족회가 만들어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족들은 발족식에 앞서 당일 오전 10시 희생자들이 마지막으로 밟은 조선땅인 옛 부산부두 인근 수미르공원에서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제사도 지낸다.

이번 유족회에 참여하는 유가족은 일곱 가족이 전부다. 이들 가운데는 연합뉴스가 목격과 증언 등을 추적해 2014년 피해 사실을 확인한 조묘송(제주)씨 유가족과 일본에 있는 묘가 뒤늦게 알려져 화제가 됐던 강대흥(경남 함안)씨 유가족도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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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토학살 당시 조선인 학살 장면으로 추정되는 사진 [연합뉴스 자료사진]



유족회에 참여하는 유가족이 적은 것은 관련 진상조사·연구가 부족해 대부분 의 희생자 유족들이 부모·친척의 간토학살 피해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관련 조사 기구도 없어 오 감독을 비롯한 활동가들이 발품을 팔아 피해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을 찾으러 다니고 있다.

유족들은 유족회 출범 이후 한일 정부에 간토학살 진상을 조속히 규명하고 국가가 나서 다른 피해자들을 찾는 데 힘을 쏟으라고 촉구할 계획이다. 유골 봉환과 배·보상 등 조치도 요구한다.

한편 유족회 발족식에 앞서 서울에서도 간토학살 희생자 추도식이 열린다. 김종수 목사가 이끄는 1923간토한일재일시민연대는 25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기독교회관에서 추도식를 개최한다.

추도식에서는 오 감독이 제작 중인 다큐멘터리 '1923 제노사이드, 93년간의 침묵'의 예고편(18분 분량)이 상영되고, 도쿄 요코아미초공원의 조선인학살 추도비 탁본이 전시된다. 한일 연구자 특별 강연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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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충공 감독 [연합뉴스 자료사진]



김종수 목사는 "피해자의 손자뻘도 고령이 된 만큼 국가가 직접 조사기구를 만들든 민간단체 조사에 협력하든 서둘러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홍술 목사도 "유족회 출범에 발맞춰 국가가 특별법을 만들어 간토학살 진상규명과 조사를 제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간토학살은 1923년 9월 1일 일본 도쿄 등 간토 지역 대지진이 일어나 40만명이 죽거나 실종된 이후 일본 정부가 국민의 분노를 돌리려고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타고 약탈을 한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자 일본인들이 조선인 6천여명을 집단 살해한 사건이다. 일각에서는 당시 도쿄에서 유학했던 김소월의 시 '초혼'이 간토학살의 참상을 목격하고 쓴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19대 국회 여야 의원 103명은 2014년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위원회'를 설치하는 특별법안을 발의했으나 결국 통과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강제동원 관련 기구인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가 간토학살 조사에 도움을 줬지만 이마저 2015년 말 해산했다.

comm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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