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6 (수)

‘개혁·정치 전략’인 문재인 대통령의 소통정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국민 소통 행보가 숨가쁘게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취임 100일을 관통하는 열쇳말도 국민과 소통이다. 20일 ‘토크쇼’ 형식으로 진행한 대국민 보고대회, 취임 100일 기자회견, 청와대 개방 등 일련의 소통행보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광화문 대통령’이라는 자기규정에서 보듯 대국민 소통을 정체성의 핵심이자 ‘대통령 정치’의 본질적 원리로 공식화한 건 문재인 정부가 처음이다. 촛불혁명이 만든 시민권력이라는 자기인식, 전임 박근혜 정권의 ‘불통’에 대한 시민의 염증, 시민과 동행하지 않는 개혁은 실패한다는 참여정부 때 경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요컨대 국민과의 감성적 소통은 문 대통령의 개혁 전략이자 신념인 셈인데, 주요 사안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시민과 접점을 만들다보니 내각이나 여당 등 ‘시스템에 의한 정치’는 왜소화하고 있다는 지적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숨가쁜 대국민 소통행보

‘광화문 대통령’을 표방한 문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국민과의 소통에 힘을 쏟았다. 대국민 소통은 네 갈래로 뻗었다.

사회적 약자나 국가권력 피해자들에 대한 위무와 공감이 그 중 하나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희생자 유가족을 포옹하며 위로한 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세월호 유가족을 청와대로 초청해 사과하고 진상규명을 약속한 것 등이 그런 사례다.

문 대통령이 시도한 탈권위주의도 대국민 소통이라는 맥락에 놓여 있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시민과의 적극적인 스킨십을 통해 한국 대통령제 특유의 권위주의, 엄숙주의를 허물고 시민과의 물리적·심리적 거리를 좁혔다. 행사장에서, 해외 순방지에서, 휴가지에서 자신들과 스스럼 없이 어울리고 부대끼는 대통령을 보고 시민들은 환호했다.

문 대통령은 국정 현안을 설명하는 자리를 대국민 정치의 장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미리 주어진 질문지 없이 즉문즉답을 시도한 취임 100일 기자회견, 20일 TV로 전국에 생중계된 ‘국민인수위 취임 100일 대국민보고’ 토크쇼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주요 정책 추진 과정에서 절차적 정당성과 여론수렴을 강조하는 것도 광의의 소통 정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신고리 5·6호기 공사 완전 중단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공론위위원회 출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한반도 배치에 앞선 일반 환경영향평가 등이 그렇다.

■노무현의 ‘이성 정치’, 문재인의 ‘감성 정치’

문 대통령이 국민과의 소통에 공을 들이는 것은 현 정부를 시민이 만든 시민권력으로 보는 인식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촛불혁명으로 국민주권의 시대가 열리고 첫번째 맞는 광복절”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토대가 촛불혁명임을 천명한 것이다. 시민의 힘으로 탄생한 정부인 만큼 주권자인 시민과 소통하며 국정을 운영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인식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불통’으로 일관하다 파산한 박근혜 정부의 경험도 반면교사가 된 것으로 보인다. 다수 시민은 박근혜 정권의 가장 큰 문제로 ‘불통’과 공감의 부재를 꼽았고, 이는 새 정권의 소통과 공감에 대한 기대로 이어졌다. 문 대통령의 소통 행보는 이같은 시민의 정서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시민 다수의 공감을 얻지 못해 개혁에 실패한 참여정부의 경험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연정, 증세, 개헌 등 굵직한 개혁 화두를 던졌으나 다수 시민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청와대 비서실장과 민정수석으로 일하면서 이 과정을 지켜본 문 대통령이 ‘시민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개혁은 실패한다’는 뼈아픈 교훈을 얻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노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의 화법 차이도 이런 맥락에서 눈에 띈다. ‘깨어있는 시민의 집단지성’을 중시한 노 전 대통령이 주로 ‘이성의 언어’를 통해 개혁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쪽이었다면 문 대통령은 ‘감성적 소통 정치’를 통한 국민과의 정서적 공감에 상대적으로 힘을 쏟고 있다.

국민과의 소통은 여소야대라는 조건에 처한 문 대통령의 전략적 선택인 측면도 있다. 현재 의석 분포상 국회에서 여당 힘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야당이 반대하면 개혁입법은 불가능하다. 선택지는 야당을 설득하거나 시민의 힘으로 야당을 압박하거나 둘 중 하나인데, 문 대통령은 일단 후자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대국민 소통정치의 명암

문 대통령의 소통 행보는 취임 이후 줄곧 70%를 웃도는 고공 지지율의 토대로 분석된다. 하지만 ‘문재인식 소통 정치’의 이면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표적인 것이 야당과의 협치 문제다. 당장 9월 시작되는 정기국회에서 개혁입법을 하려면 야당 협조가 절실한 만큼 문 대통령이 야당을 설득하기 위해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개혁입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개혁은 벽에 막힐 공산이 크고, 그에 따른 실망감이 국정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질 경우 ‘지지율 하락→국정 동력 약화→야당의 비협조→지지율 하락’의 악순환 싸이클에 갇힐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무총리, 내각이 존재감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서는 당·정·청 세 박자가 맞물려 돌아가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하는데 지금 보이는 모습은 ‘당·정·청 삼위일체’보다 문 대통령의 ‘원맨 쇼’에 가깝다는 것이다.

박상훈 정치발전소학교장은 “내각은 제 역할을 못찾고 있고 집권당은 존재감이 없다. 청와대가 역할을 할 기회를 주지 않아 그런 것”이라며 “문 대통령은 ‘민주당 정부’를 약속했지만 지금 모습은 그것과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소통 정치가 정책 결정을 위한 주권자와의 상시적 소통이라는 본래 목적보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자체에 치우치며 본말이 전도될 경우 ‘홍보 정치’ ‘이벤트 정치’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당장 20일 열린 대국민 보고대회를 놓고도 ‘국민 제안을 정책에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 설명하는 합당한 자리였다’는 평가와 ‘정부의 국정 운영을 일방적으로 홍보하는 자리였다’는 상반된 평가가 나온다.

<정제혁 기자 jhjung@kyunghyang.com>

▶ 경향신문 SNS [트위터] [페이스북]
[인기 무료만화 보기]
[카카오 친구맺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