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9 (토)

'자연의 역습'이 낳은 살충제 계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부메랑으로 돌아온 환경파괴]

고온다습한 환경·공장식 축사, 닭진드기 급증하자 살충제 남용

치사율 높은 살인진드기 등 감염병 옮기는 곤충들 급증

수온 오르자 해양생태계 변화… 맹독 문어·뱀·해파리도 나와

최근 발생한 '살충제 계란 사태'는 인간의 편의 추구와 자연 파괴 행위가 결국 인간에게 막대한 피해를 가져오는 '자연의 역습'이란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번 사태는 닭에 생긴 진드기를 없애기 위해 일부 농가에서 살충제를 마구 뿌려 발생했다. 계란 대량 생산을 위해 공장식 축사에서 닭을 키우고 기후변화로 닭진드기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까지 조성되면서 닭진드기가 크게 늘었고, 결국 살충제 계란 사태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에코데믹'이 퍼진다

닭진드기는 밀집 사육과 기후 변화가 상승 작용을 일으키면서 대량으로 퍼졌다. 한국소비자연맹이 지난해 전국 산란계 농장 120곳(닭 1400만 마리)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닭진드기에 감염된 닭의 비율은 94.2%에 달했다. 문홍길 국립축산과학원 가금연구소장은 "기후변화 영향으로 우리나라가 아열대 기후처럼 온난 다습해지면서 닭진드기가 불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겨울도 따뜻할 때가 잦아 4계절 내내 진드기가 기승을 부리자, 결국 일부 농가가 여러 농약을 돌려가며 직접 살포하거나 심지어 사료에 살충제를 섞여 먹이기도 했다는 것이 소비자연맹의 설명이다.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인류가 자연환경을 파괴한 결과로 나타나는 생태 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된 감염병을 일컫는 '환경 감염병(에코데믹)'도 크게 늘었다. 자연 개발로 숲이 파괴되자 포식자가 줄었고, 진드기를 달고 다니는 생쥐 등의 숫자가 늘어 각종 감염병을 유발하는 진드기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털진드기가 옮기는 쓰쓰가무시증에 걸린 환자는 2000년 1758명에서 2015년 9513명으로 5배 가까이 늘었다. 이상원 질병관리본부 미래감염병대비과장은 "진드기는 평균 기온·강우량 추이에 비례해 늘어난다"면서 "곤충 매개 질환은 기후변화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치사율이 높은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에 걸리는 사람이 많아진 것도, 기후변화 영향으로 이를 옮기는 작은소참진드기(일명 '살인 진드기')가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이 보건 당국의 설명이다.

◇아열대성 맹독 생물까지 올라와

특히 우리나라는 기온 상승이 빨라 최근 각종 아열대 생물이 관찰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기상청의 '기후 변화의 이해와 기후변화 시나리오'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6개 도시 평균 기온은 1900년 이후 전 지구 평균(0.74도)보다 두 배 높은 1.5도나 올랐다. 이에 따라 아열대 바다에 살던 맹독성 해양 생물이 발견되는 경우도 늘고 있다.

'파란선문어' '넓은띠큰바다뱀' 등 아열대 바다에 살던 생물이 대표적이다. 연구 기관에 따르면, 파란선문어는 2012년 제주에서 발견된 데 이어 2015년에는 관광객이 제주에서 이 문어에 물리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파란선문어는 올해 6월엔 거제도, 7월엔 울산에서도 발견돼 차츰 발견 장소가 위로 올라오고 있다. 이 문어는 복어류에 있는 테트로도톡신이란 강한 독을 갖고 있다. 1㎎만으로도 사람이 죽을 수 있다. 넓은띠큰바다뱀 등 맹독 바다뱀도 제주 해역 등에서 발견된다.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독성 해파리 역시 기후변화와 함께 각종 해양 오염, 연안 해양구조물 건설 등 여러 요인이 겹치면서 2000년 이후 우리나라 연근해에 대량 출현하고 있다. 김민섭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선임연구원은 "기후 변화로 아열대 해역에서 사는 해파리류, 파란고리문어, 바다뱀 등이 우리나라 주변 해역에서 더 자주 발견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고 기후 변화로 전 지구 기온도 오르면서 대비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김응권 해양연구센터 연구원은 "바다뿐 아니라 산림 병해충이 늘고, 아열대 식생이 늘어나는 등 광범위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며 "장기 기후변화에 대비한 '기후변화 100년 프로젝트'와 같은 각종 연구와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성모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