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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군산 앞바다에 잠들어 있던… 동아시아 무역史 건져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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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 수중 유산 발굴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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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1년 고군산군도 해역 일대에서 벌인 수중문화유산 탐사에서 조사원이 겹겹이 포개진 채 발견된 청자 다발을 수습하고 있다. /국립해양유산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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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사들 올라옵니다!”

현장 책임자의 신호가 떨어지자, 수중 발굴을 끝낸 잠수사 2명이 수면 위로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2인 1조로 바다에 들어간 민간 잠수사 김태연(46)씨와 나승아(26)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연구원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바지선에 올랐다. 머리엔 통신 장비와 조명, 카메라가 달린 보호구를 썼고, 조끼에 달린 무게 추, 등에 짊어진 공기탱크까지 30㎏ 달하는 장비로 무장했다. 40분간 유속 빠른 물길을 헤치며 바닷속을 탐사한 이들은 사슴뿔과 도기, 선박 일부로 추정되는 1.5m 길이 목재 조각을 건져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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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선유도 수중 발굴 현장에서 잠수사가 바닷속 탐사를 위해 입수하는 모습. /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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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언론에 공개된 수중 발굴 현장에서 관계자들이 잠수사가 건져 올린 1.5m 목재 조각을 살펴보고 있다.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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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전북 군산시 옥도면 선유도 해역 수중 유산 발굴 조사 현장. 선착장에서 보트를 타고 10여분 달려 도착한 해상 바지선에선 국가유산청 국립해양유산연구소 발굴단원들과 민간 잠수사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지난 4월부터 선유도 해역 제3차 수중 발굴 조사가 진행 중이다. 잠수사가 머리에 쓴 통신 장비와 카메라를 통해 이들이 헤쳐나가는 바닷속 현장이 실시간 바지선 모니터 영상에 전달된다. 경력 20년에 달하는 베테랑 잠수사 김태연씨는 “수심 4~5m 해역, 바닥선 60cm 아래 파묻혀 있던 목재를 찾았다”며 “평소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유물을 찾으면 역사가 바뀔 수 있다고 말하곤 한다. 유물을 발견하는 순간엔 마음 속으로 ‘심봤다’를 외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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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군산 선유도 해역 수중 발굴 현장에서 정헌 국립해양유산연구소 학예연구사가 출수 유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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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하경


시작은 우연히 발견된 도자기 파편이었다. 2020년 12월 선유도 해역에서 어로 작업을 하던 잠수사가 “도자기와 선체 편을 발견했다”고 신고하면서 이 수중 유적의 존재가 처음 알려졌다. 연구소는 선유도 해역을 비롯한 고군산군도 해역 전체에 대해 탐사를 벌였고 2021년 도자기, 닻돌 등 유물 200여 점을 수습했다. 선유도 동쪽 암초 주변에서 청자발과 접시 81점이 다발로 포개진 채 확인됐고, 고선박이 난파되면서 유실된 것으로 추정되는 목제 닻, 노(櫓), 닻돌 등 선박 도구들이 함께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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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 해역에서 출수된 대표 유물들. 청자, 백자, 분청사기, 청화백자, 도기와 토기, 숯돌 등을 한자리에 모았다. /국립해양유산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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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선유도 해역의 본격 발굴이 시작된 후 지금까지 670여점의 유물이 출수됐다. 고려청자, 조선 백자, 분청사기, 5~6세기 삼국시대 토기 조각, 중국 남송대 자기와 도기, 청동 숟가락, 닻가지, 닻돌 등 폭넓은 시기, 다양한 유물이 나왔다. 정헌 학예연구사는 “특히 지난해 발굴된 청동기 시대 마제 석검 조각은 선유도 해역의 해상 활동이 선사시대부터 이뤄졌다는 걸 알려주는 단서라 주목된다”며 “남송대 만들어진 백자 비문 접시, 사이호 등 중국 도자들이 출수돼 이 해역에 난파된 중국 고선박이 매몰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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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1년 선유도 동쪽 암초 주변에서 청자발과 접시 81점이 다발로 포개진 채 확인된 모습. /국립해양유산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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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지역은 바다와 인접한 지리적 특성으로 일찍부터 비안도, 십이동파도, 야미도 등에서 해저유적 발굴조사가 이뤄졌다. 이규훈 연구소 수중발굴과장은 “선유도는 예부터 서해 항로의 거점이었다. 고려 시대에는 송나라와 무역의 기항지 역할을 했고, 조선 시대에는 왜구를 방어하기 위한 수군진(水軍鎭)이 설치됐던 곳”이라고 했다. 송나라 사신 서긍이 1123년 고려에 방문한 기록을 담은 ‘선화봉사고려도경’에 의하면, 이곳에 사신을 접대하는 객관(客館)인 군산정(群山亭)이라는 건물이 있었다. 1872년 만경현에서 제작된 ‘고군산진 지도’에는 “조운선을 비롯해 바람을 피하거나 바람을 기다리는 선박들이 머무는 곳”이란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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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선유도 해역 수중 유적 전경. 아래 보이는 배가 수중 발굴단의 베이스 캠프인 바지선이다. /국립해양유산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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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직까지 난파선은 찾지 못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발굴단원들은 이구동성으로 “바닷속 어딘가에 파묻혀 있을 고선박을 꼭 발견하고 싶다”고 했다. 선유도 해역 전체 조사 면적 23만5000㎡ 중 이제 겨우 2.8% 조사가 끝났을 뿐이다. 이규훈 과장은 “장기 발굴 계획을 세워서 차근차근 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군산=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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