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6 (수)

72년 전 광복 충북에선···독립기념비 세우고 신사 불태우고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뉴시스

음성 설성공원 독립기념비


뉴시스

일제 신사


【청주=뉴시스】강신욱 기자 = 오는 15일은 72주년 광복절이다.

일제의 억압과 착취로부터 해방과 국권 회복의 기쁨을 안은 이날의 광복으로 전국은 태극기 물결이었다.

당시 증평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송기민(81) 전 증평문화원장은 저서 '노변향사(爐邊鄕史)'에서 "낮 12시께 선친이 경영하던 양조장에 갔더니 여러 분이 라디오 앞에 모여 앉아 일왕의 무조건 항복이라는 방송을 듣고 계셨다"고 회고했다.

지금의 증평군청 앞 네거리 주변에는 일본인 상점이 여럿 있었지만 일왕의 항복 선언 후 문을 닫았고 괴산경찰서 증평지구대 자리에 있던 주재소에는 무기를 휴대한 경찰들이 삼엄한 경비를 하고 있었다.

청주근세60년사화편찬위원회가 1985년 발행한 '청주근세 60년 사화'에 따르면 광복 다음 날인 8월16일 청주에 건국준비위원회 측 여운일(呂運一·1890~?)이 내려와 청주형무소 옥문을 열고 수감된 우국지사들을 석방하자 많은 시민이 중앙공원에 모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일부 인사들은 당면한 문제가 치안 유지라고 보고 구연직 당시 제일교회 목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충청북도 치안유지회를 조직했다.

증평에서도 치안자치대를 조직해 당시 면사무소(현 디팰리스) 앞과 현 창동리 증평농협 하나로마트 자리에 천막을 치고 훈련용 목총과 목검 등으로 무장했다.

제천에서도 자치치안유지회를 조직하고 경방단원들도 요소마다 경비에 나섰다.

괴산에서는 항일운동 경력의 인사들이 벽초 홍명희(洪命憙·1888~1968)를 중심으로 군청에서 괴산군 치안유지회를 결성했다.

이처럼 각 지역에서는 혼란과 폭동을 막기 위한 치안유지에 나선 가운데 청년들이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이 일제가 지역 곳곳에 세운 신사(神社·神祠)였다.

요즘 젊은 사람들도 익히 들었을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가 주변국 침략을 위해 싸우다 죽은 군인들을 제사한다면 당시 식민지에 건립한 신사에서는 일제가 자신들의 조상 신 등의 위패를 모셔 놓고 강제로 제사를 지내게 했다.

일제가 한국인들의 참배를 강요한 이 신사는 식민지배에 억눌렸던 한국 청년들에 의해 대부분 불태워지거나 철거됐다.

이 신사는 광복 직전 충북지역 109개 읍·면 가운데 74곳에 세워진 것으로 파악됐다.

괴산군 사리지역에서는 청년들이 현 사리우체국 뒤편 언덕에 있던 신사를 불태웠다.

이후 1956년 손근성 면장이 주민 100여 명과 함께 이곳에 남아 있던 석물 가운데 용 문양을 양각한 90×90×60㎝ 크기의 6면체 석물을 면사무소에 옮겨놨다.

신사를 찾은 참배객이 손과 입을 씻는 테미즈야(手水舍)·스이반샤(水盤舍)로 추정하는 이 석물은 현재 면사무소 연못 분수대로 사용하고 있다.

손 면장은 이 석물을 잘 보존해 후세에 교훈으로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증평지역에서도 광복 다음 날 청년들이 신사를 불태웠다.

이날 오후 증평을 찾은 몽양 여운형(呂運亨·1886~1947)은 지금의 증평군청 앞 사거리에서 연설을 하던 도중 신사에서 연기가 치솟는 것을 보고 "그 좋은 나무를 정자로 써도 좋은 재산인데 왜 태워 버리느냐"고 역정을 내기도 했다고 송 전 원장은 기억했다.

이후에 지역인사들은 그 자리에 단군전을 건립했다.

광복이 일제 시설물을 파괴한 것만은 아니었다.

음성군 음성읍 설성공원에는 '獨立記念碑(독립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이 비 뒷면에는 '檀紀四千二百七十八年八月九日立(단기사천이백칠십팔년팔월구일립)'이라고 새겨져 있어 광복 엿새 전인 1945년 8월9일 건립됐음을 알 수 있다.

일제의 탄압이 극에 달했던 시기에, 그것도 일왕 탄생을 기념해 만든 비석의 글자를 지워 독립기념비로 바꿔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누가 어떻게 건립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최초로 투하한 8월6일 직후이고 나가사키에 두 번째 원자폭탄이 떨어진 8월9일이란 점에서 일본의 항복과 독립을 염원한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광복 직후는 아니지만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 중앙공원에는 1949년 8월15일 건립된 '대한민국독립기념비'가 있다.
1945년 광복과 1948년 정부 수립을 경축하고자 세운 기념비다.

광복 7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충북 곳곳에는 일제의 잔재가 남아 있지만, 등록문화재 등으로 지정된 이외 일부 시설물은 안내판이 없어 일반인에게 실상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단양군 영춘면 만종리 효동마을 입구에는 1915년 세워진 '御登極記念林碑(어등극기념림비)'가 있지만, 일왕 요시히토(嘉仁·1879~1926) 즉위를 경축해 추진한 조림사업을 기념한 비석이란 설명은 없다.

일제의 흔적 지우기와 함께 남아 있는 일제의 시설물에 대해서는 후세에 산교육장으로 활용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ksw64@newsis.com

뉴시스 SNS [페이스북] [트위터]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