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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2 (일)

IMF때 쓰러져 약탈금융 수렁에…‘추심 유령’ 20년째 따라다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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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장기 빚 연체자 비상등] 61살 ㄱ씨의 ‘재기 없는 삶’

연매출 100억대 수출업체 운영하다

구제금융기 대출 회수에 ‘흑자도산’

‘60%대 이자’ 대부업체 급전 빌렸다

원금 상환커녕 이자만 계속 불어

아직도 5400만원 ‘독촉장’ 날아들어

환갑 넘어 월급 180만원 경비 취직

급여 차압·재계약 안될까 걱정 태산



한겨레

그래픽_김승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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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 ㄱ씨(61) 월셋집에는 최근에도 독촉장이 어김없이 날아들었다. 380만원 원금에 1300여만원의 이자와 법적 조처 비용을 갚으라는 채무 독촉장으로, 빨간 직인이 찍힌 누런 봉투에 담겨 있다. 이는 1997년 외환위기 즈음에 생긴 빚이다. ㄱ씨가 운영하던 수출업체가 도산할 때 직원들 의료보험료가 두어 달 치 밀렸던 탓이다. 이 빚은 자그마치 20년째 그를 따라다닌다. 그는 1997년 당시 충남에서 직원 120명 정도를 두고 연매출 100억원을 올리는 중소 수출업체를 5년째 운영하고 있었다. 천막지·방수포 등을 생산해 100% 수출하는 업체였다.

위기가 닥친 것은 그해 8월쯤이었다. “은행들이 중소기업 여신을 무자비하게 회수하기 시작했어요. 신규 대출이 안 되는 것은 물론이고 수출대금이 들어와도 기존 대출을 회수한다면서 무조건 빼 가 버립디다. 그러면 자재 구매를 할 수가 없어요. 외국 거래처에서 오더는 넘치는데 제조를 할 수가 없고, 돈 흐름이 막히며 흑자 도산하는 상황으로 가버린 겁니다.”

중고등학생인 딸들과 아내와 함께 생활하던 집에는 빨간 딱지가 붙었다. 그는 빚쟁이들을 피해 서울로 도망가고, 식구들도 친척 집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살던 집도 잃어버렸고, 선산도 날아가 버렸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신용불량 처지가 되고 보니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긴 어려웠다. 당시 사업체가 도산하고 월급쟁이가 평생직장에서 쫓겨나는 사연은 흔하디흔했다. 일용직에도 나섰지만 재기는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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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아이들 생활비와 학비가 다급한 상황에서 2000년대 초반 산와머니·러시앤캐시 등 대부업체들이 손을 내밀었다. 당시 대부업 이자율은 연 60%대였다. 구제금융 사태 직후 1998년 1월 이자제한법이 폐지돼 금리 상한이 아예 없어졌다가, 2002년 10월 대부업법 제정으로 금리 상한이 정해진 게 연 66% 수준이었다. 당시 은행 가계대출 평균금리는 6.9%였지만 그가 은행 문턱을 넘기는 어려웠다.

“밥은 먹고 살아야 하니까, 급할 때 대부업체에 전화를 해봤어요. 당시에 100만원을 빌려주면 선이자를 30만원 떼고 줘요. 그리고 대출조건을 만드느라, 자기들이 유령법인을 세워놓고 직장인 등록을 해서 직장의료보험 가입자로 만든 뒤 대출을 해줬어요. 이자가 너무 높아서 몇번 갚다가 포기했던 것 같아요. 이자로 낸 돈만 원금은 넘어갈 거에요. 그 이후엔 그냥 추심을 당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ㄱ씨는 이런 과정에서 정부 복지제도의 도움을 받을 기회는 전혀 없었다고 했다. 몇 차례 통장이 압류되는 경험을 겪고 나니, 정식 금융거래를 할 길이 없었다. 자기 이름으로 월급계좌를 열어야 하는 제대로 된 직장엔 다닐 수 없게 된 셈이다. 앞서 2014년 은행 여신거래 기본 약관 개정 전엔 이미 소멸시효가 지난 채무 연체 기록만 있어도 통장 거래를 막는 등 연체 채무자에 대한 불이익이 많았던 탓이다.

40대와 50대 내내 사실상 신용불량이란 ‘경제적 처벌’에 갇혀 취업을 못했던 ㄱ씨는 환갑을 넘어선 올해서야 어렵사리 일자리를 얻었다. 1년 단위로 재계약을 하는 비정규직 경비원 일자리다. ㄱ씨는 “월급이 180만원으로 괜찮은 데다 전임자가 70대 초반까지 자리를 지킨 전례가 있는 자리”라면서 “국민연금도 없는 처지인데 성실히 일해서 노후자금을 조금이라도 마련하고 싶다”고 말했다.

ㄱ씨는 빚 추심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직장에 알려져 재계약이 안 될까 봐 두렵다고 했다. 현행 제도상 채무불이행(옛 신용불량) 기록은 최대 7년간만 유지되지만, 빚 추심은 계속 따라다닌다. “신용불량이었던 게 직장에 알려지면, 재계약이 될 것 같지 않아요. 하고 싶다는 사람이 널렸는데 왜 저를 써주겠어요. 신용회복 상담도 받아봤지만, 채무조정 과정에서 직장에 이 사실이 알려질까 두렵고, 월급에서 얼마가 떼일지 몰라서 포기했습니다. 소액씩 나눠 갚기로 약정을 한다고 해도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잘리면 계속 갚을 길이 없어요. 그렇게 되면 애써 갚은 것도 아무 소용이 없어지니까요.”

그는 노후에 자식들 짐이 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누구는 돈 버는 자식도 있고, 월급도 나오는데 왜 빚을 안 갚냐고 하겠지요. 하지만 자식들한테 아비 빚을 갚으라곤 못 해요. 애들 대학 등록금도 딱 한 학기씩밖에 못 대줬고, 다들 학자금 대출로 어렵게 졸업했어요. 남은 나날 벌 수 있는 한 벌어서 집세도 내고 자식들 짐을 좀 덜었으면 합니다.”

환갑 직후 암 수술까지 받았지만 일흔까지만 일하고 싶다는 그에게 지금껏 날아오는 채무 독촉은 20년 전 의료보험료 건을 포함해 총 4건, 5400만원 정도다. 대부업 채권만 3700만원인데 독촉장만 봐선 원금이 얼마인지조차 모른다. 이런 연체기록을 무덤까지 안고 가거나, 노후를 빚 청산과 맞바꾸는 것, 그에게 남은 선택지는 그 정도뿐이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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