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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이분법에서 탈피하라"... 공론조사 성공을 위한 4가지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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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일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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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공론조사를 사회적 갈등 해결의 모델로 삼을 것”이라고 밝히면서 공론조사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논의가 증폭되고 있다. 문 대통령은 21일 국가재정전략회의 마무리 발언에서 “신고리 원전 5,6호기는 원래 전면 중단한다는 것이 제 공약이었지만 밀어붙이지 않고 공론조사를 통해 결정하기로 합리적 선택을 했다”며 “공론조사에서 가부 결정이 나오면 받아들여져야 하며, 앞으로도 사회적 갈등 해결의 모델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론조사가 문재인 정부 정책 결정의 핵심 수단임을 시사한 셈이다. 때마침 오늘(24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공식 출범한다. 전문가들은 공론조사가 편파 시비를 최소화하고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선 다음 네 가지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①대표성=공론조사란 1988년 미국 스탠퍼드대 제임스 피시킨 교수의 ‘숙의 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가 출발점이다. 표피적인 ‘여론조사’와 달리 일반 시민이 논의 과정에 직접 참여한다. ‘1차 설문→표본집단 추출→학습 및 토론→2차 설문’으로 진행되며 1차 설문에 비해 2차 설문 결과가 어떻게 달라지느냐가 관건이다. 이준웅 서울대 교수는 “1차 설문 집단 구성이 가장 중요하다. 기존 여론조사의 1000명 안팎은 곤란하다. 성별ㆍ지역별ㆍ연령별 등 정밀한 분포를 기반으로 최소 5000명 이상 실시해야 확률성이 높아진다. 방대한 돈과 시간이 투여되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표본집단은 1차 설문 결과를 토대로 추출해야 한다. 즉 1차 설문에서 찬반이 6대 4로 나왔다면, 그 비율대로 표본집단을 꾸려야 한다. 전문가들은 최소 200명 이상의 표본집단을 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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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쿠시마 원전앞 바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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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다양성=피시킨 교수 연구센터에 따르면 지난 30년간 20여 개국에서 70여 차례의 공론조사가 실시됐다. 일본에선 후쿠시마 원전 사고(2011년)가 일어난 이듬해 ‘에너지와 환경정책에 대한 공론조사’를 벌였다. 원전 폐기와 지속 중 하나만 택하게끔 하지 않았다. 2030년 에너지 정책으로 ^원전 완전 폐기 ^원전 비율 15% ^원전 비율 20-25% 등 세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2차 설문 결과 완전 폐기에 찬성하는 비율은 7.4%포인트 상승했으나 나머지 두 안은 소폭 하락했다. 임동욱 한국교통대 교수는 “정책은 옭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이분법에 갇히면 왜곡될 여지가 많다”고 말했다. 다양한 선택지를 두고 최선의 안을 찾아가는 게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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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한국리서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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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숙의성=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부산 북항재개발과 관련한 공론조사가 실시됐다. 조사표본은 1000명에 이르렀으나 실제 토론회에 참석한 인원은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나머지는 발송된 자료집을 검토하고 이에 답하는 것으로 대체했다. 김춘석 한국리서치 이사는 “표본집단은 통상 1박2일의 합숙시간을 거치며 복잡한 사안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다. 그중에서도 분임토의 등 세분화된 토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심층성을 높이기 위한 토론 시간 확보 및 세밀한 방법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반면 한규섭 서울대 교수는 “일반적으로 진보성향의 참가자가 보수성향 참가자에 비해 적극적이다. 공론조사 결론이 진보적으로 도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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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신고리 5,6호기 공사가 중단 된 16일 신고리 3.4호기(왼쪽부터) 옆 공사현장의 크레인 등 장비들이 멈춰 서 있다.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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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참조성=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 여부는 현재까진 시민배심원단의 판단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공론조사가 최종 정책 결정권을 갖게 되는 셈이다. 일부에선 “공사 중단을 한 뒤 하는 공론조사가 무슨 의미가 있나. 이미 답이 정해진 뒤 행하는 요식행위”라는 부정적 시각도 있다. 김광웅 초대 중앙인사위원장은 “결과가 일방적이라면 그 방향으로 가는 게 맞지만, 오차범위내의 결과를 그대로 밀어부친다면 대립을 심화시킬 수 있다”며 “공론조사도 또 다른 형태의 여론조사일 뿐이다. 만능해결사가 아니다. 정책 결정을 전적으로 공론조사에만 의존하는 건 다소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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