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 노환으로 별세
美의회서 위안부 증언하고 정부 지원금 등 모아 2.5억 기부
위안부 생존자 37명만 남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김군자(91·사진) 할머니가 23일 오전 8시 노환으로 별세했다. 김 할머니는 평생 모은 돈을 장례비만 제외하고 모두 기부했다. 2000년 한국 정부로부터 받은 생활지원금 등으로 모은 5000만원을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하며 "위안부로서의 설움보다 배우지 못한 설움이 컸다"고 했다. 또 2007년 미국 하원에서 위안부의 참상을 생생히 증언했다. 미 하원이 "(위안부가) 20세기 최대 인신매매 가운데 하나"라는 내용의 '위안부 결의문'을 채택하는 결정적 계기였다.
1926년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는 1942년 중국 지린성 훈춘(琿春) 위안소로 끌려갔다. 열일곱 때였다. 수차례 탈출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그때마다 가혹한 구타를 당했다. 왼쪽 귀가 들리지 않는 장애를 안고 살았다. 해방 후 귀국해 노점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다 1998년 광주 나눔의집에 들어왔다.
김 할머니는 지금까지 지원금을 사용하지 않고 모아 2억5000만원 넘는 돈을 기부했다. 2000년 5000만원으로 아름다운재단의 제1호 기금 출연자가 됐다. 그는 "장례식 비용 500만원만 남기고 모두 기부할 것"이라고 했다. 그해 참여연대가 전국의 시민운동가 100인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우리 시대 희망을 주는 인물' 시민 부문에 선정됐다. 2006년에 또 5000만원을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했다. 할머니의 뜻에 동참한 시민 700여명이 기부금을 출연하면서 '김군자 할머니기금'은 11억여원으로 불었다. 아름다운재단을 설립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처음 전 재산이다시피 한 5000만원을 기부해주신 것을 똑똑히 기억한다"며 "할머님의 뜻이 큰 발걸음이 됐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2015년에 그동안 모은 1억5000만원을 경기도 광주시 퇴촌성당에 기부했다.
김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238명 중 생존자는 37명으로 줄었다.
[이해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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