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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진보대통합 시즌2 개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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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진보대통합 논의가 시작됐다. 7월 9일 창당준비위 발족식을 연 새민중정당(대표 김종훈 의원)은 진보 통합을 기치로 내걸었다. 새민중정당은 지난해 11월부터 ‘민중의 꿈’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해오고 있었다. 울산지역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김종훈·윤종오 의원, 이영순 전 의원, 김창현 전 울산 동구청장 등 진보인사들이 새민중정당의 핵심이다. 새민중정당은 이미 지난해 11월 정의당과 민중연합당을 찾아 진보대통합을 제안했다. 지난 대선 때는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진보세력 대선후보 단일화가 논의되기도 했다. 김선동 민중연합당 후보의 선거운동에 민중의 꿈 인사들 몇몇이 참여하기도 했다.

김종훈·윤종오·이영순·김창현 중심

새민중정당 창준위 발족 이후 ‘제2의 통합진보당’으로 주목을 받았다. 물론 당의 주요 인사들은 통진당 시절에도 활동했다. 창준위 발족식에서 김창현 전 구청장(민중의 꿈 공동대표)도 “진보정치를 하려는 사람 중 통진당 출신이 아닌 사람이 거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새민중정당의 주요 인사들이 민족해방(NL) 계열 출신이기는 하지만, 구 통진당의 핵심으로 불렸던 경기동부연합 계열과는 맥이 다르다. 새민중정당도 ‘제2의 통합진보당’보다는 ‘제2의 진보대통합’을 중심으로 내세우고 있다. 새민중정당 발기취지문에서 이들은 “새로운 당은 진보 대단결로 승리하는 당”이라며 “상층의 몇몇에 기대는 단결, 주고받는 단결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의 피땀으로 단결을 실천하는 정당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진보대통합은 6년 만의 일이다. 2011년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과 진보신당 탈당파는 통합진보당을 출범시켰다. 이듬해 총선에서 10%가 넘는 정당득표를 달성하는 등 대중적인 지지도 있었다. 하지만 이듬해 통진당 부정경선 사건과 뒤이은 중앙위 폭력사태로 씁쓸한 분열의 상처만 남겼다. 2015년에도 진보세력 내부 통합 논의가 있었으나, 정의당에 노동당 탈당파 등이 가세하는 형태로 마무리됐다.

과거 진보대통합은 NL계가 주도하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현재 진보세력의 주류는 NL계 정당(새민중정당, 민중연합당)이 아니라 정의당이다. 최근 이정미 의원을 신임 당대표로 선출한 정의당은 현재 진보대통합에 대한 특별한 의견이 없는 상태다. 한창민 정의당 부대표는 “대선 전부터 진보통합 논의가 있었던 것은 알고 있지만, 아직은 내부적으로 깊은 논의는 진행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정의당 새 지도부도 자리를 잡고 새민중정당도 창당을 하는 9월 이후에는 정확한 입장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정미 정의당 신임 대표도 취임 이후 평화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정책이 같으면 여러 가지 연대나 협력은 할 수 있지만, 지금 당 차원에서 특정 정당과의 통합논의 이런 것은 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통합에 적극적인 것은 새민중정당과 민중연합당이다. 소성호 새민중정당 사무부총장은 “창준위 차원에서 민중연합당뿐만 아니라 정의당, 노동당 등과 대통합을 제안하고 있다. 현재는 민중연합당이 우리의 통합 제안에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저희는 배제 없는 대통합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민중연합당은 아예 새민중정당의 9월 정식 창당에 합류할 생각이다. 민중연합당은 사실상 구 통진당을 계승한 정당이다. 김선동 전 의원이 대선후보로 나선 것은 물론 이상규·오병윤·김재연 등 구 통진당 의원들이 당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7월 21일에는 구 통진당 소속 지방의원 6명이 국회 정론관에서 “국가와 지자체는 옛 통합진보당 지방의원들에게 공식 사과하라”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현재 민중연합당 지방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기자회견을 준비한 인사는 “새민중정당 김종훈 의원의 도움으로 정론관 기자회견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통합 전부터 사실상 활동 공조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송명숙 민중연합당 부대변인은 “7월 20일 김종훈 새민중정당 대표가 저희 당사에 오셔서 여러 가지 대화도 나눴다. 그 전부터 새민중정당으로부터 통합 제안을 받아 몇 차례 이야기가 오갔다”며 “9월 새민중정당 창당을 할 때 민중연합당까지 합쳐서 하나의 정당을 만드는 과정을 밟고 있다”고 말했다.

진보대통합이 추진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새민중정당에서 공식적으로 밝히는 이유는 ‘촛불혁명’이다. 촛불혁명을 통해 시민들의 정치참여도가 높아진 만큼, 기성 정치세력과 다른 강력한 진보정치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실적인 진보대통합의 이유로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무너진 진보의 지역기반을 다시 세우겠다는 점이 있다. 정의당 울산시당의 간부 ㄱ씨는 통진당 해산 이후 울산의 진보세력이 사분오열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울산에서는 1990년대부터 20년 가까이 진보세력이 제1야당 역할을 해 왔고, 민주당은 약세였다. 하지만 통진당 해산 이후 진보세력이 흩어지면서 점점 민주당의 지분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ㄱ씨는 “울산지역에서는 소속된 당은 다르지만, 내년 지방정권 교체를 목표로 진보세력이 뭉쳐야 한다는 인식은 공유하고 있다. 통합을 통해 시민들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야 울산에서 과거의 입지를 회복할 수 있다고 다들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의당 “특정 정당과 통합할 생각 없다”

실제로 진보대통합이 순조롭게 추진되기 위해서는 하부조직에서부터 화학적 결합이 중요하다. 중앙에서 통합을 선언하더라도 지역조직이 통합되지 않는다면, ‘선거용 일시 통합’에 그칠 수밖에 없다. ㄱ씨는 “울산에만 한정지어 말하자면 정의당과 새민중정당 사이에 거리감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새민중정당도 통진당 NL계 출신이긴 하나, 통진당 주류가 아니었던 만큼 통진당 시절의 부정경선, 폭력사태에 대한 책임은 상대적으로 작다는 설명이다. 그는 “당원들 사이에는 새민중정당하고는 통합할 수 있겠지만, 민중연합당까지 합치는 것은 곤란하다는 인식이 많다. 그런데 새민중정당은 민중연합당과 우선 합당을 추진하고 있으니 그 점이 큰 벽”이라고 말했다.

2012년 5월의 사태는 지금까지도 진보대통합을 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통진당 중앙위 폭력사태 이후 심상정·유시민 전 대표는 “통진당에 눈에 보이지 않는 지하정부가 존재한다”며 당 주류였던 경기동부연합 계열을 비판했다. 결국 비주류 당원들은 비례대표 의원을 ‘셀프 제명’하는 사상 초유의 일을 벌이면서까지 통진당을 탈당해 정의당을 창당했다. 이후 선거에서도 정의당은 통진당과 연대, 통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혔다.

구 통합진보당에서도 할 말은 많다. 구 통진당 주류 측은 특히 심상정·유시민 전 대표가 ‘지하정부’ 발언을 하고, 정의당이 이석기 전 의원의 체포동의안에 찬성했던 점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통합진보당 중앙간부를 지낸 ㄴ씨는 “정의당의 정책에 대해서는 저도 불만이 없고, 민중들의 삶과 관련한 부분에서는 한편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과거 진보당원들 중에는 연대 이상 통합까지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ㄴ씨는 “2008년 민주노동당이 분당할 때 조승수 전 의원이 종북주의 문제를 제기해 많은 당원들에게 상처를 남겼다. 2012년 분당할 때도 심상정 대표가 ‘지하정부’ 발언을 했고, 당시 심각했던 종복몰이에 일조했다. 이런 발언에 명확한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ㄴ씨는 이정미 신임 정의당 대표에 대해 심 전 대표보다는 상대적으로 가깝게 느끼는 통진당 인사들도 많다고 전했다. 이정미 대표는 인천에서 노동운동을 했고, 전국연합에서 활동한 NL계 출신 인사다. ㄴ씨는 “이 대표가 최근에 인터뷰한 내용을 보니 통합은 몰라도 정책에 따라 연대는 가능하다는 의사를 밝히셨더라. 과거보다는 진전된 입장이다. 연대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상태에서 과거 종북몰이에 대한 사과와 재발 방지를 약속한다면 좋은 일이 있을 수도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소성호 새민중정당 사무부총장은 새로운 진보 통합정당은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는 당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 진보대통합 과정에서 특정 정파의 전횡이 문제였다며 “다수를 점하는 세력이 일방적으로 당을 운영해 왔던 부분에 대해서 저희도 문제인식을 갖고 있다. 새로운 통합정당은 다수파의 전횡이 아니라 합의를 통해 당이 운영되는 제도적인 구조를 갖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중연합당은 정식 창당에 합류 가능성

한편, 새로운 진보 통합정당을 통해 진보의 외연 확장이 가능한지도 관심사다. 기존 진보세력의 재통합만으로는 ‘대중적 진보정당’이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2011년 진보대통합 당시에는 새로운 인물들이 진보세력에 합류해 대중의 호응을 받았다. 당시 시민운동가였던 박원석 전 의원이나 진보세력으로 분류되기 어려웠던 국민참여당 등이 진보대통합에 합류했다. 같은 해 10월에 있었던 서울시장 재선거 활동을 통해 통합진보당이 출범해 이듬해 2012년 총선에서 13명의 국회의원을 당선시켰다. 반면 올해의 진보대통합에서는 아직 새롭게 합류할 세력이 눈에 보이지 않고 있다.

정의당에서 수도권 지역간부를 지낸 ㄷ씨는 “기존 진보세력끼리의 통합이라면 2011년 통합진보당으로 돌아가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지금처럼 정의당이 하나의 정당이 되는 데도 5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며 “아직도 5년 전 중앙위 폭력사태를 잊지 않은 이들이 대다수인 상황에서 선거를 앞두고 명분 없이 통합만 진행된다면 5년 전처럼 다시 분열하고 말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정의당 입장에서는 통합에 급할 필요가 없다며 “대선을 전후로 정의당에 입당하는 이들도 많아졌고, 의원 구성도 과거보다 다양해졌다. 정의당이 그 자체로 ‘대중적 진보정당’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ㄷ씨의 말처럼 지난 대선에서 정의당은 괄목할 만한 성과를 달성했다. 심상정 대선후보는 200만 표(지지율 6.2%)가 넘게 득표했다. 반면 민중연합당 김선동 후보는 0.1% 지지율에 그쳤다. 하지만 정의당의 구조가 튼튼하다고 확언하기는 어렵다. 통합진보당 시절 당비를 내는 진성당원만 3만명, 전체 당원은 10만명에 가까웠던 반면, 현재 정의당 당원 숫자는 3만3000명 선으로 알려져 있다.

한창민 정의당 부대표는 “정의당 당원 중 60%가량이 정의당이 생애 첫 정당이라고 한다. 사회운동 경험은 없지만 더 나은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마음을 가진 시민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통합진보당 경험이 없는 당원이 더 많다는 뜻이다. 한 부대표는 “정의당 내에서 통합논의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과거 진보운동을 했던 분들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지지와 응원이 함께하는 대중적 진보정당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한다”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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