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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 (화)

‘자사주 마술’ 막 내리는데…‘지주사 전환’ 막차 탈까 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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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주사 요건 강화…대기업은 고민중

지주·사업사 분할하며 지분 늘려

‘대주주 지배력 강화 악용’ 비판

새 정부 출범뒤 본격 제동 움직임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 법안 추진

지주사의 자회사 지분율 상향 검토

“규제 전에” 롯데·현대중 등 속도전

전환계획 미정 현대차·효성 등은

요건 강화땐 자금부담 커져 딜레마

시민단체 “비용 탓 말고 추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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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차에 올라탔다. 그러나 심란하다.’

최근 지주회사 설립을 고민하는 기업 심정이 이럴지 모른다. 올 들어 롯데그룹과 에스케이(SK)케미칼, 현대중공업그룹 등 재벌의 지주회사 설립이 이어지고 있다. 새 정부 출범 후 지주회사 설립 요건이 강화되기에 앞서 ‘속도전’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기업들을 가장 고민에 빠뜨리는 것은 이른바 ‘자사주의 마술’에 대한 규제다. 기업들이 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기업을 인적분할하는데, 이 과정에서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가 인적분할을 통해 의결권 있는 주식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총수일가 등은 대주주와 주식을 교환해 돈 들이지 않고도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과거 한진그룹이나 한진해운의 지주회사 전환 과정이 대표적이다. 한진그룹의 경우, 2013년 자사주 6.75%를 보유한 대한항공이 한진칼(지주회사)과 대한항공(사업회사)으로 나뉘었다. 한진칼은 기존 6.75% 자사주를 승계한 것은 물론 그만큼 의결권이 있는 새 대한항공 신주 지분을 배정받았다. 이 과정에서 조양호 회장 등 한진그룹 총수 일가는 기존 대한항공 대주주 지분율 9.87%에 인적분할로 생긴 대한항공 신주 지분(6.75%)를 합쳐 총 지분을 16.62%까지 늘렸다. 자기 돈을 거의 들이지 않고도 회삿돈을 이용해 지분율을 대폭 높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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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사례를 막으려고 국회에는 이미 이종걸·제윤경 의원(더불어민주당) 등이 규제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인적분할 전에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거나, 인적분할시 신주 배정을 금지하는 등의 내용이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대선 후보 시절 규제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삼성전자가 지난 4월 자사주 13.3%를 소각하겠다고 밝힌 것 역시 대외적으로 지주회사 전환 계획이 없음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자사주의 마술에 대한 규제는 조만간 국회에서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상법을 고쳐 일반 기업에까지 자사주 마술을 금지할 것인지,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대기업집단(재벌)에만 적용할 것인지도 논의 대상이다. 법이 개정되면 자사주를 활용할 수 없어 지주회사 전환에 훨씬 더 많은 돈이 들 수밖에 없다. 또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한 바대로 지주회사 요건도 강화될 전망이다. 지주회사가 보유해야 할 자회사(손자회사) 지분율(상장사 기준)을 현재 20%에서 30%로 올리고, 부채비율도 현재 200%에서 100%로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인 지주회사 설립 요건이 점점 까다로워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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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도 마찬가지다. 경영권 승계를 위한 재벌 3세들의 종잣돈 마련을 위해 이들의 지분이 높은 물류·시스템통합(SI)·광고 등의 자회사에 다른 계열사들이 일감을 몰아주는 이른바 ‘터널링’(tunneling) 수법으로 부를 부당하게 넘겨준다는 비판이 있었다. 국회에서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서 총수 일가 지분요건을 현행 30%에서 20%로 강화하는 법안을 논의 중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현대글로비스나 이노션 등 총수 일가 지분이 약 29%인 기업들이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최태원 회장 지분이 많은 에스케이씨앤씨(C&C)와 지주회사인 에스케이가 합병해 규제 대상에서 벗어난 것처럼, 지주회사 전환이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이 된다.

내년에 끝나는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른 세제 혜택’도 지주회사 전환을 마치지 못한 기업들의 고민을 더하고 있다. 이 법안은 지주회사로 전환할 경우 특수관계인(대주주)의 현물 출자에 대한 양도차익 과세를 무기한 미뤄주고 있다. 지주회사 전환을 촉진하기 위해 2000년 법이 도입된 후 2015년 말 네 번째로 연장된 바 있지만, 새 정부의 재벌개혁 정책을 감안하면 추가 연장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지주회사 전환을 재촉하는 또다른 요인이다.

최근 지주회사 전환을 하는 기업들을 보면 그 고민을 엿볼 수 있다. 현대중공업과 에스케이케미칼은 자사주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상반된 태도를 취했다. 현대중공업은 현대중공업(사업회사)과 현대로보틱스(지주회사)로 나뉘면서 자사주(13.4%)를 이용했다. 현대로보틱스가 자사주 13.4% 보유한 것은 물론 자회사가 된 현대중공업에 대해서도 같은 지분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반면 에스케이케미칼은 다르게 움직였다.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하면서, 자사주(13.3%) 가운데 8%를 소각하고 나머지(5.3%)는 시장에 매각하기로 결정해 지배구조 강화에 쓰지 않기로 결정했다. 에스케이케미칼 관계자는 “아직 법으로는 허용하지만 자사주를 총수 일가의 지분 강화에 활용하지 않고 소각을 결정했고, 법적으로 소각이 금지된 인수·합병으로 얻은 자사주만 시장에 매각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현재 순환출자가 문제되는 유일한 기업이라고 지목한 현대자동차그룹은 지주회사 전환 계획을 밝힌 적은 없다. 그러나 지주회사를 설립한 뒤 정몽구 회장 일가가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지분을 확보하려면 약 4조원 정도가 필요한 상태다. 이에 더해 지주회사 설립을 위한 인적 분할 과정에서 생기는 자사주 5.9%를 포기한다면 금전적 타격도 크다.

효성그룹도 조석래 회장으로부터 아들 조현준 회장과 조현상 사장에게 경영권 승계 과제를 남겨두고 있어 증권가에서는 인적분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더욱이 조현준 회장은 올해 회장으로 부임하며 섬유 및 정보통신 사업부문장을 맡고, 조현상 사장은 산업자재 및 화학사업부문장을 담당해 총수 일가간 계열분리 가능성도 있다. 이를 위해 지주회사 전환시 효성의 자사주 5.2%가 총수 일가 지분 강화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점쳐진다. 이에 대해 효성 관계자는 “지주회사 전환 계획은 아직 없지만, 지주회사 전환시 (새 정부가 추진 중인) 요건 강화에 따른 재무적 부담을 고려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현대산업개발은 자사주 매입조차 주춤한 상태다. 현대산업개발은 지주회사 전환을 밝히지 않은 채, 올해 상반기 5%에서 6.8%까지 자사주 매입을 진행했다. 증권가에서는 9%에 도달하면 현대산업개발의 인적분할을 통해 지주회사를 설립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지배력이 낮은 정몽규 회장의 지분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자사주의 마술’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지주회사 전환을 마쳤지만 고민에 빠진 곳도 있다. 오리온홀딩스(지주회사)와 오리온(사업회사)으로 인적분할을 선언한 오리온그룹은 자사주 처리를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오리온그룹 관계자는 “자사주 처리 문제는 급한 사안이 아니라 아직 논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현재 자사주 비율은 12.1%로 오리온그룹 쪽은 지주회사 설립 뒤 자회사 주식의 맞교환 등을 거치면 담철곤 회장 일가의 주식 등이 50% 가까이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공정위가 지난 5월 집계한 자료를 보면, 국내 기업 가운데 지주회사로 등록된 곳은 152개다. 총수가 있는 대기업집단가운데 지주회사를 세운 곳은 에스케이와 엘지(LG), 지에스(GS), 씨제이(CJ), 부영, 한진, 엘에스(LS), 한국투자금융, 하림 등 9개 그룹뿐이다. 경제개혁연대 이총희 연구원은 “지주회사 전환에 따른 비용 부담이 있을 수는 있지만, 바람직한 지배구조와 기업가치 제고 등의 긍정적 효과가 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인데 비용을 핑계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성환 기자, 산업팀 종합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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