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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덕기자 덕질기 1] 일단 (멈)춤, (멈)추시오 / 석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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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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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진희
디지털뉴스팀 기자


밤도 좋고 춤도 좋은데, 밤에 추는 춤은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가방에 탱고 슈즈나 발레 슈즈를 넣고 다닌 지 4년. 이런 변화가 있었다. 댄스화가 들어가기 작거나 소재가 무거운 가방은 메지 않는다. 땀이 나고 울 때도 있어서 눈화장을 하지 않는다. 막 걷던 길바닥이 다르게 보인다. 모든 곳이 ‘무대’. 바닥이 달라 보이니까 길에 있는 저 사람도 ‘아무나’로 보이지 않는다.

탱고 때문이다. ‘걷기’가 전부인 춤. 인간이 아름답게 걷는 방식을 궁리하는 춤. 탱고를 시작하면, 비유가 아니고 진짜 걸음마부터 배운다. “한번 걸어보세요.” 레슨 가면 강사분이 맨 먼저 이렇게 말한다. 아니 지금 여기까지 걸어왔는데, 걸어보라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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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의 화려한 스텝은 하체가 아니라 상체가 만든다. 발을 움직이는 건 가슴이다. 2014년 가을 서울 홍익대 근처 한 밀롱가(탱고를 추는 장소)에서 초급반 동기와 아브라소(안는 자세)를 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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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요청은 자신의 보행능력을 제대로 알게 하려는 꿍꿍이다. 정수리는 더 위로, 발바닥은 더 아래로. 팽팽해진 몸에 옆구리를 끌어올려 골반으로 코어를 단단히 받친다. 동시에 가슴과 어깨는 힘을 빼 내린다. 탱고가 요구하는 걷기는 몸을 새롭게 세팅해 무너진 축을 세우고, 보폭과 속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걷기다. 막상 해보면 이 한 걸음을 못 걸어서 누구나 쩔쩔맨다.

춤은커녕 엉거주춤. 스튜디오 거울을 통해 처음 봤다. 걸을 때마다 어색해서 다시 걸어보던 내 모습. 탱고는 한 걸음의 무게를 처음으로 실감하게 해준 춤이다. 걷는 게 이렇게까지 철저하고 어려워야 하는 단엄한 이유가 있다. 누군가를 안은 채 함께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 손으로 서로의 등을 감싸고, 다른 한 손은 맞잡은 채, 가슴을 붙인 두 사람이, 가슴으로 감정을 주고받아, 다음 걸음을 결정한다. 내가 잘못 걸으면 파트너의 춤도 망칠 수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탱고댄서 파소 한(Paso Han·오른쪽)과 레티샤(Laetitia)의 해변 탱고. 탱고스쿨·사진작가 Geff Kim Taehwan 제공

이 춤은 ‘영혼의 섹스’라고도 불린다. “탱고… 마치 가위의 양날처럼”(존 버거 ‘A가 X에게’) 두 육체가 하나의 꿈을 오리니까. 나는 섹스보다 입맞춤이 어렵고 관능적이라고 생각한다. 이 춤은 입춤(기본 자세를 익히기 위한 춤)이 걷기라는 점부터 못 견디게 관능적이다. 많은 이에게, 걷기란 무슨 특별한 동작이 아니라 일상적인 몸짓 중 하나다. 하룻밤을 함께하는 것보다 밤산책을 함께하는 게 더 어렵다. 탱고를 추면 몸이 느낀다. 둘이서 더 행복하게 걸으려면 내 몸을 내가 알아서 가눠야 한다. 힘들다고 기대면 안 된다. 탱고의 ‘안기’는 (몸)무게를 전달하지 않는 선에서 꼭 붙을 뿐이다.

그래서 발레. 한쪽 발끝으로 위태롭게 설 때도 혼자 버틸 힘을 기른다. 하물며 아름답게 버틸 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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