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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매경포럼] 국회를 해산할 수 있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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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문재인 대통령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18일 자유한국당이 '웃기는' 논평을 내놓았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9월 야당일 때 발표한 논평을 그대로 쓰고서 대통령·정당·장관 이름만 바꿨다.

'국민을 무시하고 국회를 모욕한 문 대통령의 탈법적 장관 임명'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이어 "오늘 임명된 장관의 경우 인사청문회를 통해 임명돼서는 안 될 인사임이 명백히 드러났음에도 문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해 국민을 무시했다"고 썼다. 문 대통령을 박근혜 대통령으로 바꾸고 강 장관을 조윤선·김재수·조경규 장관으로 바꾸면 지난해 9월 4일 민주당이 낸 논평과 똑같다.

여야가 바뀌었지만 국회에서 벌어지는 행태는 옛날 그대로다. 인사청문회, 추가경정예산안, 국회선진화법 등을 놓고 여야가 정반대 태도로 돌변했을 뿐이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는 속담 그대로다. '너도 한번 당해 봐라'는 식으로 딴지를 건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9일 만에 청와대에서 여야 5당 대표를 만났다. 서로 소통과 협치를 강조했지만 예상대로 그때뿐이다. 10년 전이나 20년 전과 마찬가지로 서로 네 탓을 하며 또다시 으르렁거린다.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지 40여 일이 지났지만 임명된 장관은 고작 6명이다. 사회부총리 후보자 등 8명이 인사청문회를 기다리고 있는데 국회는 파행이다.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 사퇴를 놓고도 내 편이면 '음모'라 하고 네 편이면 '사필귀정'이라 말싸움이니 헛웃음이 나온다. 상식과 염치는 뒷전이다.

흔히 우리나라 대통령을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한다. 맞장구칠 수 없는 소리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보자. "법률을 통과시켜주지 않으니 도무지 일을 할 수 없다"며 국무회의에서 책상을 치고 한탄했다. 일자리를 최대 69만개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며 제출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지금까지 6년째 국회에서 먼지만 쌓이고 있다. 그땐 박 전 대통령의 소통부족을 탓했다. 이제 문 대통령이 소통에 적극 나서고 있으니 국회가 달라질까. 언감생심이다.

국정이 순조롭게 돌아가면 치솟아 오르는 건 대통령과 여당의 인기다. 그걸 야당이 바랄 리 없다. 오히려 야당으로선 악착같이 발목 잡고 국정을 흔들어야만 기회를 노릴 수 있다. 국민들이 비난해도 신경 쓸 필요 없다. 대통령이 탄핵되든 정당지지율이 곤두박질치든 상관없다. 국회의원은 한번 당선되면 어차피 4년 동안 철밥통이다.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도 있다. 누가 뭐라든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이들을 설득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미국 대통령은 그나마 행정명령권이 있어 의회 동의 없이도 새로운 정책을 시행해볼 수 있다. 기존 법률에 명백하게 저촉되지만 않으면 법률과 같은 효력을 발휘한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노예 해방도 행정명령으로 이뤄졌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재임 중 200여 건에 이르는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우리나라 대통령도 '대통령령'과 '긴급명령권'을 발동할 수 있지만 별 소용이 없다. 대통령령은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위임한 사항만 정할 수 있으니 국회 손바닥 안에서만 작동하는 셈이다. 긴급명령권은 '국회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에만 허용되니 평상시엔 작동하지 않는다.

항상 그래 온 것처럼 야당이 발목을 잡으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더구나 여소야대 국회다. 정부와 국회의 대치구도에 변화를 주려면 국회의원들도 뭔가 잃을 것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여론을 살피며 국민을 두려워하게 된다. 1987년 헌법 개정으로 사라진 대통령의 국회 해산권을 부활하는 것은 그 방법 중 하나다. 지금 대한민국은 대통령 독재에 억압되기보다는 무소불위의 국회 권력에 휘둘리고 있다. 문 대통령이 개헌을 약속한 시기는 내년 6월이다. 그동안 행태를 보면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국회해산권 부활이나 불체포특권 폐지를 추진할 리는 만무하다. 국민적 관심과 압박이 필요하다.

[최경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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