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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김명환의 시간여행] [75] 지붕서 여탕 엿보다 탕 안으로 추락… 여탕 탈의실 창문에 철조망 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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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롭던 대낮 여탕 안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1969년 11월 11일 오후 3시 30분쯤 7명이 목욕 중이던 서울 오류동의 여탕 지붕이 무너지며 22세 청년 한 명이 천장에서 추락해 탕 안으로 빠졌다. 여성들 몸을 훔쳐보려고 구멍을 뚫고 보다가 사고를 낸 것이다. 목욕 중이던 19세 여성 한 명은 청년과 충돌해 다쳤다(매일경제 1969년 11월 15일자).

조선일보

곽경택 감독 데뷔작‘억수탕’(1997년)에서 여성들의 벗은 몸을 엿보려는 남자 때문에 여탕에 소동이 빚어진 장면(왼쪽 사진)과 1920~1960년대의 여탕 훔쳐보기 사건을 보도한 일간신문 기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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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소형 몰카가 없던 시절에 금남(禁男)의 구역에 대한 호기심에 빠진 극소수 남성이 여탕에 '물리적' 접근을 시도한 사건이 가끔 신문 사회면을 장식했다. 벽이나 천장에 구멍을 뚫기도 했고, 탈의실 유리창 틀을 붙잡고 턱걸이를 하기도 했다. 아예 여탕 문을 열고 뛰어들어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다가 붙잡힌 20대 남자도 있었다. 도시, 농촌을 가리지 않았다. 경남 의령군 어느 읍내 목욕탕 여주인은 27년 영업하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여탕을 엿보려는 남자들과 승강이를 벌이던 일'을 꼽았다. 그는 "남자들이 여탕 창문에 매달려 훔쳐보기에 철조망을 쳐 놨더니 다음 날 다 뜯어놨더라"고 회고했다.

여탕 훔쳐보기란 오늘 같으면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처벌받는 성추행이지만 옛 시절엔 관련 법률도 미처 제정되지 않았다. 지붕에서 엿보다 여탕 안으로 추락해 여성과 충돌한 청년의 죄목도 재물손괴와 상해죄뿐이었다. 1962년 여탕을 훔쳐보던 고교생을 붙잡은 경찰이 한 일은 그냥 '톡톡히 혼을 낸 다음 집에 돌려보내는' 게 전부였다.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야 여탕 훔쳐보기를 경범죄 처벌법 중 '불안감과 불쾌감 조성' 혐의로 처벌하기 시작했으나 처벌 수위는 오늘에 비할 바 아니었다. 그 시절 언론도 이런 범죄를 오늘보다 덜 심각하게 여긴 듯하다. 1967년 목욕탕의 18세 남자 종업원 둘이 여탕에 함부로 들어갔던 사건을 보도한 신문기사 말미엔 "18세라면 사진만 봐도 덜컹거릴 나이일 텐데…"라는 표현이 붙어 있다.

1950~1960년대 청소년기를 보낸 남자 중엔 여탕 훔쳐보기를 어린 시절 일종의 모험처럼, 장난처럼 해본 사람이 꽤 있다. 소문난 개구쟁이였던 화가 김병종은 중1 때 친구들과 읍내 목욕탕 여탕을 훔쳐보다 어른들한테 걸려 흠씬 두들겨맞은 일이 있다. 탤런트 정종준이 1995년 'TV는 사랑을 싣고'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가장 만나고 싶다고 요청한 어릴 적 친구는 목욕탕집 아들이었던 초등학교 때의 단짝이었다. 둘은 '학교가 파하자마자 여탕 훔쳐보기에 매달렸던 일들을 회고했다. 곽경택 감독은 출세작 '친구'보다 먼저 찍었던 데뷔작 '억수탕'(1997년)에서 대중목욕탕에 모인 인간군상 이야기를 엮으면서 '수업을 땡땡이치고 여탕을 훔쳐보러 온 중학생들'과 '여자 탈의실에 숨어든 남자'가 빚어낸 소동을 빼놓지 않았다.

이젠 여탕 벽에 구멍 뚫는 것 같은 일은 찾아보기 어렵게 됐지만, 그치지 않는 몰카 범죄 때문에 여성들의 불안은 더 커지고 있다. 심지어 급속히 보급되는 드론으로 유리창 너머 여탕 탈의실과 노천탕을 촬영할 가능성까지 제기돼 "여탕의 모든 창문엔 블라인드가 필수"라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이런 일에 견주면, 여탕 탈의실을 엿보려고 창문틀에 매달려 바들바들 떨던 꼬마들이 아줌마들 몽둥이찜질 받고 혼비백산 도망갔다는 반세기 전의 훔쳐보기란 차라리 애교처럼 느껴진다.

[김명환 前 조선일보사 사료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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