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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서울대 민낯 드러낸 초유의 표절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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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정반석 사회부 기자

한국일보

지도교수로부터 논문 표절을 당했다며 서울대 대학원생이 작성한 대자보가 스승의 날인 지난달 16일 서울대 인문대 광장에 붙어있다. 정반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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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교수에게 논문을 표절 당했다는 대학원생의 1,000쪽 분량 제보책자가 서울대를 뒤흔들고 있다. 국문과 표절 교수가 불문과 선배 교수에게 논문을 제공했다는 의혹까지 더해지며 사태는 갈수록 점입가경. 서울대 학생들은 “역대급 망신”이라며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19일 서울대 교수들은 인문대 차원의 연구윤리위원회를 만들어 봉합에 나섰다. 16일 표절 교수에게 사직권고를 내린 데 이어 어느 정도 자정능력은 보여준 셈. 그간 표절로 중징계를 내린 적이 없는 본부 측도 표절 교수의 사표 수리를 거부하며 의외로 강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아쉬움을 지울 수가 없다. 대학원생 사이에서는 이미 “대학에 자정 능력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는 깊은 불신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단순히 이번 건을 윤리의식이 바닥인 한 교수의 표절 행위만으로 뭉개서는 안 된다는 지적인데, 과연 대학 측 대응이 이런 지적을 감안해 근본적인 문제를 들여다보고는 있는지 의심이 든다는 얘기다.

학내 구성원들은 “지도교수 변경조차 거의 불가능한, 지도교수에게 생사여탈권이 쥐어진” 학계의 ‘갑을(甲乙) 관계’가 근본적인 문제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실제 이번 논문 표절이 지도제자와 대학원생, 시간강사 등 자신보다 약자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

게다가 이런 부조리는 ‘이미 우리가 대부분 알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서울대 인권센터는 얼마 전 타인의 연구 및 논문을 작성한 대학원생이 13.4%, 인권침해를 경험한 대학원생이 43%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는데, 이는 ‘콜롬버스가 발견한 신대륙’ 같은, 전혀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지금도 대학 내에서 ‘을’로 살아가는 이들은 어제도 그랬고, 그전에도 그랬고, 게다가 앞으로도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서울대에 터진 초유의 표절사태는 이처럼 켜켜이 쌓인 대학사회의 적폐를 돌아볼 자성의 기회이기도 하다. 학교 측은 표절피해 대학원생이 처음 문제를 제기했던 2013년 이후 4년간이나 왜 방치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혹시나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라고 여겼던 거라면, ‘다들 그러는데 뭐가 문제냐’는 안이한 생각을 했던 거라면, 지금이라도 자세를 바로잡아야 한다. 그 시작은 ‘나도 이런 경험이 있다’는, 교수들 갑질에 눈물 짓고 한숨 쉬었던 을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부터다. 그래야 ‘갑을 관계’라는 근본 문제가 개선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banseok@hankookilbo.com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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