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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윤한봉 선생 10주기…평전 헌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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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안재성 작가, 지인들 인터뷰해 집필

“인권운동 정신 지금도 이어져 감동”

24일 5·18민주묘지 추모제서 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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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윤한봉(1947~2007) 선생 타계 10돌 추모문화제와 평전 헌정식이 24일 오전 11시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다. 윤한봉기념사업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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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묘지에 책 한권이 헌정된다. 고 윤한봉(1947~2007) 선생 타계 10돌 추모문화제와 평전 헌정식이 24일 오전 11시 국립5·18민주묘지 ‘역사의 문’ 앞에서 열린다. ‘5·18 마지막 수배자’로 평생 민주화운동에 헌신해 온 고인의 삶을 다룬 평전 <윤한봉>(창비)이 최근 출간됐다. 노동운동가이자 소설 <파업>으로 전태일문학상을 받은 안재성(57) 작가가 고인의 평전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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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봉 평전.


“‘아, 이런 사람이었구나’하고 충격도 받고 감동도 많이 했어요.”

안 작가는 20일 “2015년 겨울 윤한봉 선생을 알게 돼 책으로 쓸만하다고 생각하던 차에 평전 집필 제안을 받았다”고 말했다. 안 작가는 고인의 회고록 <운동화와 똥가방>, <망명> 등 구술자료와 강연집, <합수 윤한봉 선생 추모문집> 등을 읽었다. 그리고 사단법인 윤한봉기념사업회가 주선한 집담회(9회)와 미국 방문을 통해 지인 100여 명을 인터뷰했다.

고인의 삶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말이 바로 ‘합수’(合水)다. 똥거름을 뜻하는 합수는 고인의 별호였다. 별명처럼 그는 “직위도 돈도 모두 마다하고 스스로 퇴비(7쪽)”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 윤한봉은 민청학련(1974) 사건으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고 전남대에서 제적된 뒤 민주화운동의 중심에 섰지만, “뒷바라지하고, 명예는 후배나 다른 사람이 갖도록 하는 인물”이었다. 5·18항쟁의 주모자로 수배를 받던 중 1981년 4월 미국으로 밀항했던 그는 ‘민족학교’(1983), ‘한국청년연합’(1984), ‘재미한겨레동포연합’(1987) 등의 단체를 설립해 한인사회에서 12년 동안 인권운동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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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국립5·18민주묘지 ‘윤한봉의 묘’. <한겨레>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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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도 5·18 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으로 그는 잠을 잘 때도 침대를 이용하지 않는 등 ‘엄격한 수도자’처럼 지냈다. 또 단체를 설립한 뒤 직책을 맡지 않고 ‘소사’(심부름꾼)’를 자처했다. 오래된 ‘똥가방’ 하나 들고 행사에 나가면 물걸레로 강당 바닥을 닦던 이가 ‘합수’였다. 윤한봉은 당시 “약자와 소수자를 돕기 위해 운동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안 작가는 “지금도 시카고·뉴욕·워싱턴·로스앤젤레스 등에선 민족학교 등 4개 단체가 재미동포와 약소국 이민자들을 돕는 법률지원 등의 활동을 하는 것을 보고 감동했다”고 말했다.

1993년 5월 12년 동안의 미국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한 윤한봉은 5·18기념재단을 설립하는 데 힘을 쏟았다. 탄압과 투옥 등으로 건강이 좋지 않아 2007년 6월 폐 이식수술을 받은 뒤 유명을 달리해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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