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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전국 법관회의 "판사 블랙리스트 직접 조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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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명 모여 대법원장에 "권한 위임해달라" 요구]

- 언론에 먼저 공표하며 대법원 압박

조사小委 위원 5명 가운데 4명이 인권법연구회 소속… 불공정 소지

법조계 일부 "노조 만드나" 비판… 내달 24일 다시 전체회의 열기로

법원의 직급별 판사 100명이 19일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열어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을 직접 조사할 수 있도록 권한을 위임해 달라고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요구했다. 판사들은 또 대법원 규칙을 개정해 법관대표회의를 법원 내 공식 기구로 만들어 달라고 양 대법원장에게 요구했다. 법관대표회의가 전국 단위로 열린 것은 2009년 4월 신영철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법원장 시절 광우병 촛불 시위 사건 재판에 개입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열린 뒤 8년여 만이다.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은 지난 3월 이모(39) 판사의 사표 파문을 계기로 불거졌다. 이 판사는 법원행정처 간부로부터 판사 400여명이 소속된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열려던 '대법원장 권한 분산' 세미나를 축소하라는 지시를 받고 이에 반발해 사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대법원은 진상조사위를 구성해 조사에 나섰다. 조사 과정에서 이 판사는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컴퓨터에 비밀번호가 걸린 판사 뒷조사 파일(판사 블랙리스트)이 있다고 들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진상조사위는 "블랙리스트의 존재 가능성을 보여주는 어떤 정황도 나오지 않았다"며 사실무근으로 결론 냈다.

조선일보

8년만의 판사회의 - 전국법관대표회의에 참석한 판사들이 19일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회의를 갖고 있다. 8년 만에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이른바 ‘법원 블랙리스트’에 대한 대법원의 조사가 미진했다며 추가 조사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성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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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대표회의 공보간사인 송승용 수원지법 부장판사는 "사법행정권 남용의 기획, 의사 결정, 실행에 관여한 이들의 행위를 정확하게 규명하고,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존재 여부를 비롯한 의혹을 완전히 해소하기 위해선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며 "판사 5명으로 구성된 현안조사 소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결의했다"고 말했다. 판사들은 블랙리스트 의혹에 연루됐다는 의심을 받는 대법원 관계자들의 컴퓨터 등을 보전 해달라고도 요청했다.

송 판사는 2009년 신영철 대법관에 대한 사퇴 요구를 주도했던 이성복(57) 수원지법 부장판사가 법관대표회의 의장으로 선출됐으며 회의를 상설화하도록 대법원 규칙을 개정해 달라고 양 대법원장에게 요구하기로 했다고도 밝혔다.

하지만 이날 법관대표회의의 논의 내용이나 발표 형식 등은 법원 내에서 적지 않은 논란을 낳고 있다. 법적 권한이 없는 일종의 판사 회의체가 동료 판사들에 대한 조사권을 요구한 것 자체가 이례적인 데다 언론에 공표하는 방식으로 대법원을 압박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송 판사는 "법관대표회의가 의결한 사안이라고 하면 대법원이 무겁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법관회의 참석자 100명 중 40명가량, 블랙리스트 조사를 하겠다는 소위원회 위원 5명 가운데 4명이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이라며 "조사를 한다 해도 또 다른 공정성 시비를 낳을 것"이라고 했다.

법관대표회의 상설화는 대법원과 법원행정처의 독주(獨走)를 견제할 수 있다는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판사들이 인사 평가나 견제를 받지 않기 위해 '판사 노조'를 만들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없지 않다. 법원행정처는 "법관회의에서 결정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하겠다"고만 했을 뿐 회의 결과에 대해 입장을 내지 않았다. 법관회의는 다음 달 24일 다시 전체회의를 열 예정이다.







[조백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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