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06 (일)

벤처 `데스밸리` 넘으려면…판로개척·M&A 선순환 이뤄져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 제2 벤처창업 붐 / 황철주 명예기자 리포트 ◆

매일경제

문재인정부가 중기청을 장관급인 중소벤처기업부로 승격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가운데 창업과 중소기업 성장을 이끌기 위해 혁신기술 벤처를 육성할 방안 마련이 다각도로 검토되고 있다. 정보기술(IT)·바이오 기업들이 몰려 있는 판교 테크노밸리 부근 전경. [한주형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을 혁신기술창업과 중소기업 인수·합병(M&A) 시장의 허브로 키우기 위해서는 스타트업의 '죽음의 계곡(데스밸리·창업 3~7년차)' 극복과 기업 기술가치의 인증보호 정책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신기술을 중심으로 창업한 기업이 판로를 개척하면서 혁신기업으로 일어서고, 독창적인 기술이 보호받으면서 투자를 받거나 M&A를 통해 새 도약을 이끌어 갈 수 있는 발판이 마련돼야 하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불었던 정보기술(IT)기업의 1차 벤처 붐에 이어 4차 산업혁명을 맞아 일어나는 2차 벤처 붐을 확산시키는 동력이 여기에 있는 셈이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올해 기술창업의 척도인 벤처기업은 3만3360개(올 3월 기준)를 넘어섰다. 벤처 업종별로 조사를 시작한 1999년 4934개에 비해 18년 새 7배 가까이 늘어났다. 1차 벤처 붐이 극에 달한 2001년 1만1392개에 비해서도 3배 가까운 수치다. 특히 최근에는 연간 1500개 안팎의 벤처기업이 탄생하고 있다. 중소 벤처기업이 세계로 10억원씩만 수출을 하게 되면 33조3600억원이 증가하고, 1인당 2억원의 매출을 올린다고 가정하게 되면 16만6800명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벤처기업이 성장해 100억원씩 수출하게 된다면 330조원 매출에 166만여 명의 고용이 창출되는 셈이다.

문제는 기업의 지속가능성이다. 실제 대한상공회의소가 올 초에 공개한 '통계로 본 창업생태계 제2라운드' 보고서에 따르면 벤처투자 생태계 미비, 판로 어려움 등으로 창업기업의 62%(2013년 기준)는 3년을 못 버티는 것으로 나타났다. 3년 생존율이 3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기준으로 스웨덴(75%) 영국(59%) 미국(58%) 프랑스(54%) 독일(52%) 등에 크게 뒤처진 것은 물론 조사 대상 26개국 중 25위로 꼴찌 수준이다.

매일경제

그 원인은 창업기업 투자에 대한 자금 회수 가능성이 극히 낮은 탓이다. 미국이 상장에 6~7년이 걸리는 데 비해 한국은 평균 13년으로 사실상 회수 불가능 채권이 되고 있다. 벤처 출구전략 중 하나인 M&A도 1.3%에 불과하다. OECD 국가에서는 기술상용화 가능성만으로도 창업한 후 대기업이나 대형 투자자 등에서 지분매각 방식으로 자금을 조기 회수하는 비중이 51%에 달한다. M&A 시장 거래 규모도 한국은 875억달러로 미국의 22분의 1에 불과하다. 투자·회수 저변이 형성되지 않으면서 데스밸리를 극복하지도 못하고, 살아남은 기업도 내수 시장에만 함몰된 채 단 4곳 가운데 1곳만이 수출 실적을 가지고 있을 따름이다.

해결책은 기업 혁신가치를 극대화하는 저변을 구축하는 데 있다. 지난 세기에는 모든 것이 부족하고 정보가 공유되지 못하면서 모방경제로도 성장이 가능했다. 패스트폴로어(Fast-Follower) 전략으로 빨리 따라가기만 해도 성장하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정보가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기술 진보 속도가 빠른 시대로 접어들면서 반도체산업과 같이 1등이 독식하고 2등도 생존을 걱정하는 때가 됐다. 초기 시장 선점, 혁신이 성장으로 가는 지름길이 된 것이다.

같은 혁신 시장을 만드는 것은 기술가치에 대한 인증과 보호에 있다. 벤처기업의 기술을 해외나 국내 대기업이나 경쟁 업체가 이른바 '핵심 인력 빼가기'를 통해 탈취하거나, 역설계를 통해 모방하는 행위를 철저히 금지하고 기술가치에 대한 올바른 거래 시장을 유도하는 게 필요한 이유다.

벤처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연대보증 폐지, 스톡옵션 과세, M&A 시 주식양도세 신설 등의 규정을 철폐할 필요가 있다. 기업 대표자 연대보증제도는 창업 의지와 실패 후 재도전 의지를 저하시키는 대표적 규제다. 연대보증 면제 범위가 '설립 5년 이내 창업기업'에 이어 제2금융권까지 확대됐지만 현실은 정책과 다르다. 최근 정부가 연대보증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제도 변화를 추진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다만 대표자에 대해 연대보증이 강제되지 않지만 연대보증에 서명하는 대표자와 아닌 대표자에 대해 차별된 금리의 대출을 적용하면서 현실적인 어려움이 적잖다. 기업체로서는 1%라도 낮은 금리를 받기 위해 사실상 연대보증을 피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인재 유치와 창업 동기부여를 위한 스톡옵션 과세도 논란이다. 1차 벤처 붐의 성공 원인 중 하나였지만 2006년 스톡옵션 비과세 혜택이 폐지되면서 벤처 붐에 찬물을 끼얹었고 자금력이 약한 초기 스타트업들은 인재 유치에 난항을 겪고 있다. 국내는 물론 해외 인재 유치를 위해서도 파격적인 혜택과 노력에 대한 보상, 즉 꿈을 키워줄 수 있는 유인책이 필요하다.

"건강한 中企 생태계 만들어 혁신벤처 육성을"

벤처기업 M&A 시장을 활성화한다면서도 대주주의 주식양도세를 10%에서 20%로 상향 조정한 것은 지난 정부의 큰 패착 가운데 하나다. 시장 활성화에 역행하는 대표적인 규제란 지적이 나온다. 1차 벤처 붐 당시 벤처기업 간 금전거래 없이 주식 맞교환 형태로 다양한 협업이 진행된 데 반해 2002년에 차액과세가 시작되면서 시장이 급격히 얼어붙었던 폐해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신생 벤처기업은 탄탄해진 시장을 기반으로 설립부터 세계시장을 노리는 '본글로벌(Born-Global)'을 목표로 세계로 뻗어가야 한다. 세계 70억명 시장의 0.007%밖에 되지 않는 5000만명 내수에서는 지속가능한 성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신기술이 세계로 판로를 확대하고, 매출이 상승하면 자연스럽게 데스밸리 극복과 함께 일자리 창출이란 선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정부는 추가예산을 들여 일자리 창출을 기업에 강제할 것이 아니라 창업 융성, M&A 시장 활성화, 기업 육성정책 확대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일자리가 늘어나도록 선순환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중기·벤처 전문가들도 데스밸리를 뛰어넘는 혁신벤처를 키우려면 기업 성장의 토대가 되는 건강한 '중기 생태계'를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최근 IBK경제연구소 주관으로 열린 중소기업인·전문가 정책좌담회에서 주요 인사들은 혁신벤처가 안정적으로 성장하려면 대·중소기업 간 불공정거래 타파, 네거티브 규제 도입, 혁신기술을 보호하는 제도적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나타냈다.

[황철주 중기벤처 명예기자 / 정리 = 진영태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