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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소중한 걸 잃은 사람들은 어떻게 견딜까…소설 읽는 건, 타인의 감정을 경험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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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오직 두 사람’ 출간한 김영하

경향신문

김영하 작가가 7편의 단편을 엮은 새 소설집 <오직 두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문학동네 제공


“문학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과 아무 관계없는 이야기에 공감하게 만들어요. 세월호를 인양한다고 했을 때 사회 일각에선 단지 몇 명의 유골을 찾기 위해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야 하냐며 반대한 사람들이 있었잖아요. 그 반대편에 있는 게 ‘안티고네’의 세계죠. 즉 비용이 얼마가 든다 하더라도 적절한 방식으로 가족의 품에 돌려보내고, 장례를 치르고, 애도할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끔찍함을 느끼는 것. 그것이 몇천 년 동안 문학이 해온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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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서울 연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소설가 김영하(49)는 문학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품위를 지키고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문학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감정적 경험을 함으로써 자아를 확장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가 최근 새 소설집 <오직 두 사람>(문학동네)을 발표했다. 지난 7년간 쓴 7편의 이야기를 담았다.

“막상 쓸 때는 몰랐는데, 이번에 소설들을 묶으면서 내가 ‘상실’이라는 주제에 대해 오래 관심을 가져왔다는 게 보였어요.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잃어버렸을 때 사람들은 그 이후를 어떻게 견디는가 하고 말이죠.”

‘아이를 찾습니다’는 2014년 발표해 이듬해 김유정 문학상을 받았던 작품이다. 아이를 잃어버린 주인공이 지옥 속에서 살다가 11년 뒤 아이를 찾으면서 시작되는 새로운 고통에 대한 이야기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구상하고 묻어뒀던 초고를 다시 꺼내 집필하기 시작한 때가 세월호 사건이 벌어진 직후였다. 이 작품을 쓰는 내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다. ‘아이를 찾습니다’를 기점으로 작품의 성격도 그 전과 후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전에 썼던 세 편은 소중한 것을 상실한 뒤 자신을 합리화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희극적으로 그렸다. 이에 반해 그 이후에 쓴 세 편의 소설은 상실을 생의 가장 끔찍한 사건으로 다루고 있다. 그는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에 엄존한다는 걸 이제 우리도 알게 됐다”면서 “작가들뿐 아니라 많은 시민들의 치유과정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위로와 치유의 문학에 익숙해진 독자들에게 그의 소설은 김영하 특유의 생생한 비관을 보여준다. 불길한 소문이 삶을 잠식하고, 유일하게 의지하는 사람이 죽고, 벗어나고 싶지만 출구가 없다.

“우리는 잘 모르는 사람들의 삶까지 다 알고 싶도록 진화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소설은 겪고 싶지 않은 상황을 겪게 하고,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을 보게 만들죠. 소설은 정연하게 쓰여진 악몽입니다. 낮에 우리가 이성으로 억압했던 것들이 다시 돌아온 것이죠. 그 감정적 경험을 통해 독자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대상에게도 공감하게 됩니다.”

2013년부터 약 10개월간 뉴욕타임스 국제판의 칼럼을 쓰면서 겪었던 쓰디쓴 경험은 그로 하여금 ‘팩트’의 세계에서 ‘예감’의 세계로 귀환케 했다. 그의 산문은 과감하고 문학적인 상징을 사용하는 스타일인데, 신문사에선 작가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데이터와 통계를 요구했다. 근거 없는 예단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그가 쓴 문장들을 일부 지우고, 팩트들을 채워넣어 글을 무미건조하게 만들었다. “문학적 진실은 사실과는 관계가 없지만, 사실보다도 강력하게 존재합니다.”

김영하는 장편소설을 준비 중이다. 현재는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생겨 관련 책을 읽는 중이라고 했다. 그는 22년간 작품을 쓰면서 10여개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미국, 프랑스 등 다수의 국가에서 번역됐으며 영화·연극·뮤지컬로도 제작돼 사랑받는다. 작가로서 다음 단계를 묻자 “훌륭한 내수용 작가”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모국어를 함께 쓰는 독자들에게 깊이 사랑받는 작가가 되는 거죠. 삶이 고통스럽고, 타인에게서 모멸당하고, 직장에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았을 때 ‘어서 집에 돌아가 침대 속에서 그 작가의 책을 다시 읽고 싶다’ 하는 그런 작가요.”

<심혜리 기자 grac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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