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자가 25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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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초대 외교사령탑으로 내정된 강경화(62)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뉴욕생활을 마치고 25일 오전 4시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강 후보자는 본격적으로 국회 인사청문회 준비에 돌입했다. 강 후보자에겐 장녀(33)의 이중국적·위장전입 관련 불씨가 놓여있다.
미국에서 태어난 강 후보자 딸은 2006년 미국 국적을 취득했지만, 이번에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 국적을 얻기로 결정했다. 이 딸은 과거 이화여고로 전학할 당시 1년간 친척 집에 주소를 두면서 위장전입을 했었다. 대학 진학에 유리한 고교 진학이나 부동산투기 목적은 아니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태어나 이중국적을 갖게 된 딸이 성년이 돼 스스로 미국인이 되겠다고 택한 걸 부모가 뭐라 할 수 없는 세상이다. 이런 까닭에 정부 여당에서는 강 후보자 ‘본인’의 국적 문제도 아니므로, ‘큰 흠결이 아니다’라고 보고 있다. 여기에 장녀가 스스로 미국 국적을 포기하겠다고 하니 ‘넘어가자’는 분위기다. 국민 상당수도 여기에 수긍하고 있다.
4년 전 흑역사 강제소환, ‘이중국적의 추억’
그런데 이 와중에 되새기고 싶지 않은 흑역사가 ‘강제소환’ 되고 있는 인물이 한 명 있으니, 박근혜 정부 초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였던 김종훈(57) 미국 벨연구소 전(前) 사장이다.
박근혜 정부 초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였던 김종훈 미국 벨연구소 전 사장. /성형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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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1975년 미국으로 이민 가 시민권을 얻은 뒤, 미국 정보통신계의 거물이 된 인물이다. 흑인 빈민촌 이민자에서 출발해 ‘1조 벤처 신화’를 일궈낸,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으로 통한다. 그는 2013년 2월 ‘창조경제’를 이끌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됐지만 ‘본인 국적 논란’으로 자진 사퇴했다.
당시 김씨는 박근혜 내각 합류를 위해 법무부에서 한국 국적 회복 허가를 받았고, 미국 시민권을 포기할 계획이었다. 국가공무원법 및 공무원임용령에 따라 국가 안보와 관련된 정보·보안·기밀을 취급하거나 주요 경제·재정 정책 예산 운영 등에 관한 분야에서 ‘복수국적자’를 임용할 수 없게 돼 있기 때문이다.
1000억원 내고 미국 국적 포기하려고 했지만…
미국 국적을 포기하겠다고 한 김씨는 당시 “큰 결심을 했기 때문에 다른 모든 문제는 그냥 끝까지 밀고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민권을 포기하는 대가가 너무 컸다. 미국은 200만달러 이상 자산을 가진 미국 시민권자·영주권자가 국적을 포기할 경우, 자산 15%에 달하는 국적포기세를 부과하고 있는데, 이 경우 김 전 후보자는 내야할 세금은 무려 1000억원이 넘었다. 김씨는 “세금을 내야하면 내겠다”고 했다.
문제는 1000억원 뿐이 아니었다. 그는 정치권과 언론의 인사 검증이 시작되면서 탈곡기 속 볏짚마냥 ‘탈탈’ 털리는 신세가 됐다. 미 중앙정보국(CIA)이 1999년 설립한 군산복합기업인 ‘인큐텔’의 이사로 재직한 사실, 2009년 CIA 자문위원회에 참가한 사실 때문에 ‘CIA 스파이’설이 불거졌다. 부인이 1998년 경매로 낙찰받은 시세 140억원짜리 서울 청담동 상가 지하에 성매매 업소가 입주해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인터넷에선 한 재미교포가 “김 전 후보자는 뉴저지 룸살롱 단골이며, 라스베이거스에서 원정 도박도 자주 했다”고 올렸다.
이에 민주당은 “국가관과 정체성이 의문스러운 인사”라며 장관직에 부적합하다는 논평을 냈다. 이석기 당시 통합진보당 의원도 “미국 CIA를 비롯해 미국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위해 일해 온 김종훈 후보자가 정보통신 분야를 비롯한 첨단기술을 육성하고 국가 핵심 시설을 맡을 부처의 수장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라며 “김종훈 후보자의 법률적 국적은 물론, 그의 경력과 영혼이 어느 나라 것인지 따지지 않을 수 없다”며 임명 철회를 주장했다.
보름동안 한국 사회 한복판에서 털려보니…
결국 김씨는 한 달이 채 안돼 자진사퇴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미국 입국 당시 그는 취재진에게 “나로 인해 한국에서 이중국적 등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얼마 뒤 그는 조선일보 이메일 인터뷰에서 “약 2주간 한국 사회 한복판에 있으면서 한국의 ‘한쪽이 피를 봐야 하는 정치(blood sport politics)’와 ‘뿌리깊은 관료주의’가 나 같은 외부인을 받아들여 새 부처의 임무를 수행하도록 놔두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김종훈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2013년 3월 자진사퇴 후 미국으로 돌아와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조선일보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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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그랬고, 지금도 한국 언론의 공격적인 스타일에는 적응이 잘 안 된다”며 “내가 진짜 비판받아야 할 것은 한국 정치에 대해 너무 순진하게 생각했다는 점”이라고 했다. 또 “‘한국에서 대중(大衆)에 의한 뒷조사 과정’에 매우 충격을 받았다”며 “어떻게 내 아내를 성매매업소 운영과 연결하는 기괴한 주장을 할 수 있나”고 했다.
美CIA 신원조회는 통과, 한국식 뒷조사엔 백기(白旗)
그는 인터넷에 올라온 사생활 의혹에 대해선 이렇게 답했다.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나는 미국에서 중앙정보국(CIA) 외부자문위원회(External Advisory Board) 위원으로 (2007년부터) 활동했다. 이를 위해서는 철저한 신원조회와 거짓말탐지기 테스트까지 통과해 아주 높은 등급의 허가증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이 허가증을 갖고 있는 동안 전문 수사관이 주기적으로 나의 납세 실적, 사생활, 언행을 조사한다. 나는 이런 과정을 거쳐 오랜 기간 허가증을 유지했고, 이번에 한국에 가기 전에 자발적으로 (허가증을) 포기했다.”
결국 CIA 신원조회·거짓말탐지기 테스트를 통과했던 그가 ‘한국식 뒷조사’에는 두 손 두 발 든 것이다. 이처럼 장관 후보자를 사퇴하고 미국으로 돌아간 김씨는 미국 국적을 그대로 유지했고, 결국 1년 뒤 한국 국적을 자동 상실했다. 그는 2015년 대전 KAIST초청 강연에서 “창조경제는 대통령을 위한 것도 아니고, 장관을 위한 것도 아닌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며 “비판적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정부와 기업,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서로 믿고 끌어주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만일 김종훈씨가 지금 장관 후보자가 됐다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이것이 그가 ‘강제소환’된 이유다.
[한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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