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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땅콩버터 없는 피넛버터 샌드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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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최전선] 서촌 '에버델리'

조선일보

에버델리의 피넛버터 샌드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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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위치는 미국식과 유럽식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미국식 샌드위치에서 빵은 그야말로 포장지에 가깝다. 햄·소시지·치즈·양상추·피클 등 다양한 식재료·소스를 터질 듯 채워넣어 풍성한 맛과 양을 즐긴다. 유럽식 샌드위치는 처음 보면 빈약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재료가 간소하다. 빵에 햄이나 치즈 따위를 한두 가지만 넣는다. 마요네즈 같은 소스는 아예 없다. 이탈리아에서는 심지어 빵에 버터도 바르지 않는다. 하지만 잘 만든 유럽식 샌드위치는 재료 자체의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다.

서울 서촌 '에버델리' 샌드위치는 굳이 따지자면 유럽식에 가깝다. '피넛버터'(5500원)가 대표적이다. 이름에 속지 마시라. 이 샌드위치에는 땅콩버터가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바게트 빵에 햄, 버터, 작은 오이로 만든 피클 코니숑(cornichon), 양겨자가 속재료의 전부.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자 신기하게도 땅콩버터의 맛과 향이 입안에서 느껴졌다.

언뜻 재료가 단순한 듯한데 맛은 전혀 단순하지 않다. 재료 하나하나의 품질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우선 빵. 에버델리는 서촌에서 가장 맛있는 빵으로 이름난 '슬로우브레드 에버'에서 운영하는 가게. 슬로우브레드 에버에서 만든 바게트 빵을 씹자 짙은 갈색으로 구운 두꺼운 크러스트(빵껍질)에서 구수한 향이 피어올랐고, 속은 촉촉하면서도 쫄깃했다. 두툼하게 잘라 넣은 버터는 고소하면서 짭짤하니 바게트와 찰떡궁합이다. 여기에 아삭하고 새콤한 피클과 질 좋은 햄, 알싸한 양겨자가 더해지니 최근 맛본 그 어떤 샌드위치보다 훌륭했다.

피넛버터가 약간 양이 적다 싶다면 '스페니시 오믈렛'(8500원)을 권한다. 스페인식 오믈렛을 넣은 샌드위치. 스페인식 오믈렛은 달걀에 여러 재료를 넣고 부친 오믈렛으로 우리의 달걀찜과 비슷하다. 바게트에 파프리카·양송이·양파·감자를 듬뿍 넣고 부친 스페인식 오믈렛을 얹고 올리브오일과 토마토소스를 뿌려 낸다. 두툼하면서도 부드러운 오믈렛과 구수한 바게트, 고소한 올리브오일, 새콤달콤한 토마토소스가 조화롭다. 'B·L·P·T'(1만원)는 노릇하게 구운 브리오슈 빵에 훈연향 그윽한 베이컨, 구수한 구운 감자와 치즈가 묵직한 맛을 내는데 청겨자 잎의 살짝 쏘는 맛이 균형을 잡아준다.

'머쉬룸 버거'(6500원) 쫄깃하게 구운 표고버섯을 치아바타 빵에 넣은 채식주의자용 햄버거. 채식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런 채식 버거라면 먹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밖에도 '핫칠리독'(7000원), '필리치즈 샌드위치'(1만원) 등 어느 하나 아쉬운 메뉴 없이 평균 이상의 맛이다.

토마토·당근·견과류·치즈·올리브 등이 들어간 '에버 그린 샐러드'(7500원)나 진하게 끓인 '치킨 감자 수프'(5000·6000원)를 곁들이면 웬만한 성인 남성도 배부를 만큼 든든하다. 맨 위에 올린 수란을 터뜨려 각종 채소·치즈·올리브·크루통에 버무려 먹는 '시저 샐러드'(9500원)나 '스페니시 오믈렛 샐러드'(9500원)는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한 끼 식사가 된다.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8시 30분까지 영업하지만 빵이 마감 시간보다 훨씬 일찍 소진돼 샌드위치를 주문할 수 없는 날이 많다.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13길 4-7, (02)720-0850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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