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 편백나무숲
장성 치유의 숲에 앉아 나무 향기를 맡는다. 편백·삼나무 300만 그루가 스트레스 해소 물질 ‘피톤치드’를 뿜어낸다. 몸과 마음이 온통 깨끗해지는 느낌이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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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엔 냇물이 흐르고 왼쪽엔 편백숲이 우거진 나무데크 길을 따라 걷는다. 사진 찍으며 천천히 20여 분 걸었을까. 갈림길에 서 있는 원두막이 보인다. '만남의 광장'이라 적혀 있다. 왼쪽 길은 '쉬운 코스', 오른쪽은 '힘든 코스'란다. 오른쪽을 택한다. 단지 호승심(好勝心) 때문이 아니다. 표지판에 '고 임종국 선생이 안장된 나무를 지나는 숲길'이란 글이 있었다.
임종국(1915~1987)은 이 숲을 혼자 힘으로 일군 이의 이름이다. 1956년부터 20년간 편백·삼나무 300만 그루를 심었다. 식민지와 전쟁을 거쳐 온 산하가 붉은 산 투성이일 때였다. 누구나 먹고살기 어렵던 시절이다. 주위에선 한심한 사람이라 비웃었다. 매년 15만 그루, 매일 410그루를 쉬지 않고 20년간 심어야 300만 그루가 된다. 이 고집쟁이 '나무교(敎) 신도'에게 경배(敬拜)하고 싶었다.
장성 편백나무 숲을 일군 ‘독림가’ 임종국이 묻힌 느티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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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딱고개'라 이름 붙인 가파른 경사길을 10여 분 오르니 이내 세 갈래 길이 나타난다. 직진 방향이 '치유 필드'인데 왼쪽 길로 잠시 빠지기로 한다. 임종국이 묻힌 나무가 있는 곳이다. 가파른 나무 계단 지나 비석 없는 무덤 오른쪽 길로 간다. 소박한 느티나무 아래 작은 비석 하나가 낮게 앉아 있다. '춘원 임종국(요셉) 선생님'이라고 적혀 있다. 고향인 순창 선영에 묻혀 있던 선생의 유골을 화장해 소나무 상자에 넣어 2005년 이장했다. 지난주 금요일(19일) 누군가 가져온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임종국 나무' 앞에는 '부인 김영금(율리안나)'이 묻힌 나무가 있다.
1950년대 후반부터 심었으니 편백나무 나이는 이제 40~60년인데 높이는 20~30m에 이른다. 굵은 것은 두 팔을 한껏 벌려 안아도 닿지 않을 정도다. 이 중엔 분명 내 또래 나무도 있을 것이다. 같은 세월 살면서 저 나무는 저만한 높이와 굵기를 이루고 저렇게 긴 그늘을 드리우고 서 있다. 사람들은 이 숲에서 몸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다. 편백나무가 내뿜는 피톤치드는 스트레스 해소, 심폐기능 강화, 살균작용 효과가 있다 한다. '치유 필드'에 놓인 나무 평상에 앉아 깊은숨을 들이고 내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50~60년대 모습을 간직한 28가구 작은 마을이다. / 금곡영화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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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 나무를 심겠다는 뻔한 말을 실제 몸으로 느꼈다. 당대에 이름을 얻으려 한다면 굳이 나무 심을 까닭이 없다. 내가 심은 나무는 내가 무(無)로 돌아갈 때 나를 기억한다. 임종국은 아무런 벼슬도 없이 그저 '독림가(篤林家)'로서 포천 국립수목원 '숲의 명예전당'에 헌정됐다. 그는 일생 양잠과 특용작물 재배, 묘목 기르기로 살았던 한갓 농부였을 따름이다. 현재 함께 헌정된 이는 박정희 전 대통령, 김이만 나무할아버지, 현신규 전 서울대 농대 교수, 최종현 SK 전 회장, 민병갈 전 천리포수목원 이사장 등 여섯 분이다. 눈 닿는 곳 어디든 빽빽하게 숲을 이룬 편백나무를 보며 흠뻑 감동했다. 갈 길을 바꾼다. '치유 필드'에서 금곡마을 반대 방향으로 1㎞ 더 걷는다. 임종국 기념비가 있다. 노란 꽃에 둘러싸인 비석 앞에서 한동안 머물렀다.
금곡마을은 1994년 영화 '태백산맥'을 찍은 곳이다. 이후 '내 마음의 풍금' 등 영화 4편과 드라마 3편이 촬영됐다. '금곡영화마을'이라 불린다. 낯선 이의 발소리에 개가 컹컹 짖었다. 이곳에서도 조금 걸어가면 한 사나이가 일군 편백나무숲으로 들어간다. 몸이 깨끗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서울~장성 승용차로 4시간. 금곡마을, 모암마을로 가는 군내버스(061-393-6820)가 있다. 장성 편백나무숲은 4구간 6개 길이 있다. 승용차를 세운 주차장을 기억하고 돌아올 시간을 감안해야 한다.
치유의 숲 안내센터 (061)393-1777, 장성 문화관광과 (061)390-7242
[장성=이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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