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일자리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갖는 것은 옳은 방향이다. 그러나 상황판부터 붙인다니 1970년대 청와대와 정부 부처에 붙어 있던 수많은 상황판 풍경을 다시 보는 것 같다. 대통령이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하고 상황판 들여다보면서 숫자를 세고 있으면 공무원들은 그 숫자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기업엔 커다란 정치적 압박이 된다. 정책 왜곡이 일어나고 결과적으로 고용 문제의 근본 해결에 해(害)가 될 수 있다. 반짝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그렇게 해서 지속적인 일자리 창출에 성공한 나라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
새 정부와 비슷한 방향의 공공 일자리 늘리기를 먼저 시행했던 프랑스는 일자리 창출에 처참하게 실패하고 뒤늦게 노동 개혁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문 대통령이 집무실에 상황판을 설치하는 그 무렵, 프랑스의 새 대통령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3대 노조 단체 대표를 비롯해 8개 경제 단체 대표를 일일이 만나 노동 개혁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데 8시간 넘는 시간을 쏟아부었다.
일자리 창출에 성공한 나라의 해법은 다 비슷하다. 신(新)기술을 활용한 신(新)기업이 많이 나올 수 있게 규제를 풀고, 경제 여건 변화에 맞게 인력이 유연하게 공급되는 노동시장을 갖는 것이 정석(定石)이다. 미국에서 새로 생겨나는 일자리의 3분의 2가 IT 하이테크 분야 벤처기업에서 생겨난다. 중국도 창업을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의 동력으로 삼겠다고 선포하고 총리 주도하에 서류 한 장으로 창업할 수 있게 규제와 행정을 쇄신해왔다. 그 덕에 청년들이 창업에 뛰어들어 작년에 하루 평균 1만5000개꼴로 기업이 생겨났다. 일본 아베 총리는 동일 노동에 동일 임금이 지급되도록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하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수많은 다양한 형태의 일자리가 공존하도록 노동시장을 개혁해왔다. 20년 불황을 겪으면서 일본에서 우리같은 연공서열식 임금 체계는 거의 깨졌다.
우리는 거꾸로 간다. 성과에 따라 연봉 주는 게 당연한 글로벌 금융기관조차 한국에서만은 노조 반대로 연봉제를 도입 못 했다. 이런 나라에서 박근혜 정부 시절 겨우 개혁의 첫걸음을 뗀 공공 부문 성과연봉제마저 새 정부는 없던 일로 되돌리고 있다. 노동 개혁과 구조 조정에 반대하는 노조 목소리는 더 높아지고 있다. 나라에 필요하지만 표를 가진 다수와 목소리 큰 세력이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게 되면 가는 길은 뻔하다.
최근 방한한 앤 크루거 전 IMF 수석부총재는 "일자리 확대는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는 노동 개혁 같은 정책적인 측면에 힘을 기울이라"고 했다. 어려운 이론도 아니고 상식이다. 상식과 거꾸로 가는 사회는 결국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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