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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자유찾아 이주한 미국인…왜 반지성주의에 빠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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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반세기 전에 출간된 책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역사는 반복된다는 점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을 전후로 세계적으로 반지성주의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대답을 해도 될 것 같다. 이 책은 미국의 건국 이후 현대까지 정치 종교 경제 교육 문학 등을 아우르며 미국인의 삶에서 나타나는 지성에 대한 멸시의 역사를 담아냈다. 1970년 타계한 미국의 대표적인 역사학자 리처드 호프스태터 컬럼비아대 미국사 담당 교수의 기념비적 저서다. 1964년 퓰리처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지식인'이란 말은 프랑스에서 처음 쓰였다. 19세기 후반 드레퓌스 사건으로 프랑스에서 이념 전쟁이 벌어졌을 때 우파는 모욕의 의미로, 드레퓌스 지지파는 자랑스러운 깃발로 이 말을 내세웠다. 하지만 미국으로 건너간 이 말은 다른 의미를 갖게 됐다. 바로 매카시즘 때문이다.

"이 나라를 팔아넘긴 것은 불운한 이들이나 소수 집단의 구성원이 아니라 모든 혜택을 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똑똑한 젊은이들이 최악의 인간이 되었습니다."

1950년 2월 조지프 매카시의 휠링 연설로 광풍이 불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지식인에 대한 혐오, 즉 '반지성주의'는 일상어가 됐다. 지식인은 표적이 되었고, 이들을 사냥할 때 대중은 즐거워했다.

1952년 대선에선 비범한 지성을 가진 정치인 애들라이 스티븐슨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맞대결했다. 군인 출신인 아이젠하워는 상투적인 사고에 어눌한 말투를 지닌 리처드 닉슨을 러닝메이트로 삼아 압승했다. 당대 언론은 이를 미국이 지식인을 거부한 표시로 받아들였다. 서부극을 좋아한 아이젠하워는 지식인을 말 많고 젠체하는 부류로 단정했고, 지식인은 '계란머리'라 불리며 조롱 받았다. 우파 성향 대중소설가 루이스 브롬필드는 이 단어를 "자의식 과잉의 잔소리꾼으로 무기력한 우국지사"라고 설명했을 정도다.

공직사회의 반지성주의는 주로 과학연구소, 대학, 외교집단 등에서 활약하는 전문가들에 대한 의구심으로 표출됐다. 이들을 향한 극우파의 적대감은 극렬했다. 1953년 GM 회장이 국방장관으로 발탁되자 뉴딜주의자들이 자동차 딜러에게 밀려났다는 보도까지 등장했다. 이런 분위기를 쇄신한 건 1957년 소련의 인공위성 발사였다. 스푸트니크가 발사되자 미국은 국가적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고, 대중은 지성에 대한 혐오가 생존을 위협하는 신호임을 알게 됐다. 마침내 교사의 연봉을 걱정하고, 과학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 것이다.

이 혼란의 시기를 통과한 뒤 저자는 반지성주의의 근원을 찾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이 문화는 미국사에 뿌리가 깊다는 걸 발견했다. 미국은 신대륙에서 건국됐다. 유럽의 귀족주의와 단절하고 건설한 민주적인 국가였으니 미국의 반지성주의는 건국과 함께한 셈이다.

저자는 미국의 반지성주의가 단지 '계란머리'와 '멍텅구리'의 싸움이 아니라고 말한다. 국민 대다수는 지식인과 반지식인으로 간단히 나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식인에 대한 양가적 감정을 지녔다. 계란머리에 불신을 품지만, 동시에 계몽이나 문화를 진심으로 열망한다. 그럼에도 반지성주의가 미국 문화에 스며들어 있음을 확신하는 건 온건한 대중이 특정 사상에 깊이 몰두한 대변인들에게 흔들린다는 점에서다. 일례로 1958년 미국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복음 전도자인 빌리 그레이엄이 꼽힌 바 있다. 그는 "세계 어디서든 편파적인 교육을 하느니 아예 교육을 안 하는 게 훨씬 낫다고 진심으로 믿는다"고 말한 인물이다.

이 방대한 책은 반지성주의가 직관과 감성에 호소하는 미국의 근본주의 그리스도교, 이상주의적인 개혁가나 진보적 지식인들에 대한 우파 정치가들의 공격성, 벤저민 프랭클린의 정신을 이어받은 기업가들의 실용주의 등이 결합해 만들어진 '괴물'임을 논증한다.

반지성주의가 위험한 이유 중 하나는 지성의 실용성이 의심받는다는 점에서다. 19세기까지 미국에선 고등교육이 무익한 것으로 여겨졌다. 정식 교육을 별로 받지 않고도 출세할 수 있었다. 지적이고 문화적인 목적 추구는 남자답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일의 영역은 점점 복잡해졌고 시민이 혼자만의 지능과 이해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점차 줄어들었다. 자세히 들여다볼 수도 없는 정책 결정의 과정을 목격하면 시민들은 좌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권력의 내부 세계를 이해할 수 없게 되면 대학교수나 과학자, 대외정책 조언자들에게 복수심을 품게 된다. 그들을 비난하고 조롱하고 음모론을 통해 희생양으로 만들어서다.

저자가 타계한 후 미국에서 탄생한 반지성주의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나타났다. 미국의 복사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한국사회를 반지성주의가 압도하는 것은 필연적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단언한다. 미국의 지적 성취를 담당한 정신은 프랭클린, 제퍼슨, 존 애덤스 등의 지식층과 마크 트웨인, 해밍웨이, 스콧 피츠제럴드 등의 아방가르드라고. 그리고 미국이라는 자유로운 사회는 다양한 지적인 삶을 인정했다고.

성숙한 토론과 논쟁이, 그리고 지성이 문명이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막아주는 제동장치가 될 수 있음을 알려주는 책이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 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의지가 역사의 저울을 좌우하는 한, 반지성주의가 미래를 지배하는 일은 없으리라 믿는다고. 저자가 세상을 떠난 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그의 예언은 아직 실현되지 못한 것 같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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