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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만들어진 神,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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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보르헤스의 우화 한 편을 짚고 가자. '가장 위대한, 제3의 궤도를 달리는 혹성 틀륀'이라는 작품. 여기서 화자는 틀륀이라는 상상의 세계와 조우하는데, 기이한 것은 서사가 전개되면서 이 틀륀이라는 허구의 세계에서나 존재하던 사물들이 점차 현실 세계를 부유한다는 것이다. 상상계가 현실계로 전이되는, 상상이 현실이 돼버린 역전의 사태. 화자는 독백한다. "틀륀의 감화력 앞에서 어찌 세상이 무너지지 않을 수 있겠으며, 이 행성의 완벽한 질서를 보여 주는 아주 세세하고도 광대한 증거 앞에서 어찌 이 세상이 무릎 꿇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여기서 '틜른'을 '경제학의 세상'으로 환치해보자. 보르헤스는 아마도 예견했던 것일까. 경제학자들이 실험실에서나 상상했던 경제적 세상이 현대인의 삶 구석구석에 침투하리라는 것을. 경영학자 필립 로스코가 자신의 첫 대중 저서 '차가운 계산기'에서 조명하는 것이 이 지점이다. 이 보르헤스의 이야기를 그는 현실계를 무한정 점거 중인 경제학적 만용에 대한 탁월한 비유로 본다. 우리가 호모이코노미쿠스로 부르는 경제적 인간은 인간 본성의 발현이 아니라는 것인데, 이 경제적 인간이란 학습과 제도에 의해 구성되며 개인의 이기심을 지고의 가치로 여기는 지금의 비정한 세상은 경제학의 지배에 의해 후천적으로 구성됐다는 지적이다.

한정된 자원을 합리적 계산에 의해 선택하는 개인을 우리는 경제적 인간이라고 배웠다. 그리고 이 경제적 인간이야말로 가장 진화한 형태의 인간이라고도 배웠다. 계몽주의 시대에 출현해 자본주의 시대를 당도하며 지배 인간형이 된 이 개념이 후천적이라는 사실은 이미 수많은 연구로 입증됐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경제학과·비경제학과 학생 간 무임승차 연구가 좋은 예다. 경제적 사고를 오래 학습한 학생일수록 공동체의식이 현격히 떨어졌다. 비경제학과 학생의 84%가 공공재 공급에 기금 의사를 표했다면, 경제학과 학생은 불과 20%만 같은 의사를 냈다.

문제는 경제적 인간이 개인적 학습의 차원을 넘어 사회 제도의 변화로도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방점은 '만들어진'이다. 사회시스템이 소유권과 이익을 중요 요소로 틀 짓는다면, 자기 이익에만 봉사하는 인간형이 대량 제조될 수 있다는 소리다. 1980년대 노르웨이 정부가 어장 쿼터제를 실시하며 나타난 결과가 한 예다. 어류 남획을 막고자 실시한 이 제도로 어업권이 소유물이 되자, 노르웨이 민족 정체성의 중심이던 어부라는 존재는 급속히 사라졌다. 한 사람당 포획 가능한 어류 량을 제한하고, 등록된 어부에게만 어업권을 주자 대부분의 어부가 이 권리를 돈을 받고 처분했다. 어장을 보존하겠다는 좋은 의도였으나, 결국 어촌 시장화에만 기여한 것이다.

주류 경제학의 시장논리는 지금도 무한히 영토를 팽창 중이다. 마이클 샌델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우려했던 현상은 이제 삶의 지근거리에서 목격된다. 비용과 편익을 따져 결혼 짝을 찾고, 사랑과 우정을 돈으로 구매하고, 인간의 가치와 품위가 시장논리에 의해 규정되는, 가격을 매김으로써 삶의 소중한 영역들이 시장에 잠식되는 사태가 우리 일상에 펼쳐진다. 저자가 엄중히 경고하는 건 이 도처에 만연한 경제적 세상이다. 그럼 대안은 없을까. 저자는 우리 삶에 경제학은 필수이나 절대적이어서는 안 된다며 이처럼 쓴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경제학은 공학이며, 이 공학은 우리가 민주적인 과정을 통해 만들어 내는 여러 원칙과 결정에 복무하기 위해 몸을 낮출 줄 아는 공학이다… 우리는 경제학의 도움 없이 우리 힘으로 여러 가지의 선택을 이루어야 한다. 좋은 경제학이란 지역적이며, 구체적이며, 민주적인 경제학이다." 이 책 말미에 옮긴이 홍기빈이 쓴 다음 구절도 여러모로 곱씹을 대목이다.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21세기의 현시점에서 볼 때, 18세기에 만들어져 20세기까지 세상을 지배했던 '경제적 인간'이란 사실상 네안데르탈인이나 마찬가지다." 경제학이 좀 더 겸손해지고, 우리 모두 경제적 인간에서 벗어난 새로운 인간형을 사유할 때라야 더 나은 세상은 펼쳐질 것이다.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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