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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나 혼자 산다, 어쩌다 워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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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권혁란의 스리랑카 한국어 교실

한겨레

사진 권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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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란 고립을 견디는 능력이다.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살 수 있다면, 즉 돈이나 친교, 또는 사랑이나 명예, 호기심 등 조용히 혼자서 만족시킬 수 없는 욕구들을 해결하려고 다른 사람들을 찾지 않을 수 있다면, 당신은 자유롭다. 만일 혼자 살 수 없다면 당신은 노예로 태어난 사람이다.’

<불안의 책>에 나오는 글이다. 젊을 때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런 말들이 가슴에 들어왔다. 사랑도 명예도 돈도 성공에의 욕구도 가뭇없이 지워지고 오롯이 혼자 살고 싶은 마음만 남았다. 아이가 태어나면 제일 먼저 아기방을 만들어, 아기 침대에 혼자 잠들게 해서 독립심을 키워야 한다고 수많은 양육서가 주장한다. 누워 있을 때부터 독립적으로 살기를 주문받은 아이는 직립보행을 한 후부터 ‘자기만의 방’을 갖는 것이 가장 중차대한 과제가 된다. 십수년 동안 아이는 모름지기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고된 노력을 경주하며 자란다. 마침내 혼자 자고 혼자 먹고 혼자 여행할 수 있게 되면 의존적 관계를 벗어난 자유로운 어른으로 인증받게 된다. 그러나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 가까스로 자유의지를 가진 사람으로,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하게 되면 그동안 갈고닦은 오롯한 존재 자체로서의 삶은 졸지에 폐기해야 마땅할 생활방식이 되어버린다. 저만 아는 이기적인 존재가 되어 매도당하기 일쑤고 그동안 갈고닦은 혼자만의 삶의 리듬을 고수하려면 배려 없는 인간, 관계를 맺고 풀 줄 모르는 고집스럽고 미성숙한 사람으로 치부된다. 고군분투, 분골쇄신, 몇십년을 독립하려고 애쓰다가, 마침내 그렇게 된 연후에야 그토록 다른 두 사람이 사랑과 가족의 이름으로 한집, 한방, 한 침대를 쓰며 사는 것이 당연하고 옳은 것이 되어버리는 아이러니라니. 아무려나. 가족과 직장의 인간관계 해법서를 보고 듣고 의심하면서 이십몇년을 살아냈다. 큰아이가 자라 취직하고 작은아이가 홀로 외국에 나갔을 때, 바야흐로 때가 되었구나, 스리랑카로 떠나왔다. 단출한 관계, 단순한 살림, 나만 잘하면 되는 일, 가난한데도 남에게 줄 게 너무나 많이 샘솟는 날들을 꿈꾸었고 그 꿈속에 들어가 살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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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6시. 바다에서 떠오른 금빛햇살이 내 집 베란다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아침식사는 봉지커피 한 잔. 충분하고 충만했다. 이제 출근하면 된다. 내 학생들을 만날 시간. 사진 권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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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한국에서 회사에 다니는 딸이 말했다. “엄마, 우리 회사 과장님, 차장님, 모든 여자들이 다 엄마 보고 워너비래.” 결혼해서 남편 있겠다, 아이 있겠다, 그것보다 더 나아가 번듯한 직장 있어서 나름 월급 받으면서 잘살고 있겠다, 어쩌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 정도 사는 것이 워너비가 되었을까. 신기하구나, 대답했다. 이해 못할 건 없었다. 그들이야말로 내가 보낸 이십여년의 시간, 엄마와 아내와 직장인의 삶을 보내느라 동분서주하고 있을 테니까. 그렇다 해도 그들에게 현재 나의 삶과 바꾸겠느냐 물으면 고개를 저을 것이다. 2년은 의외로 길고 혼자 사는 집은 멀리 떨어져 있다. 생활의 불편은 한국과 천양지차고 부르주아 봉사입네 말은 많지만 월급은 없고 생활비는 정유라가 고등학교 때 애인과 먹었던 한끼 식사값이다. 그러나 나는 혼자 산다. 시간은, 온통 자유롭게 풀어져 스스로 조율할 수 있으며 공간은, 내 온몸을 자유롭게 품어주고 놓아준다. 마음이 내키면 ‘네발 달린 짐승이 어딘들 못 가랴’ 뚜벅뚜벅 걸어 나가면 된다. 오로지 유념할 것은 그저 신독(愼獨)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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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팥과 중국찹쌀로 만든 간편 깔끔 찰밥. 사실 커피가 반찬. 오십 살 여자가 먼 이국땅에서 이렇게 살 수도 있다. 진수성찬이 아니어도 맛있고 배부르다. 더 할 나위 없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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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로 파견되기 전 모든 단원들이 합숙교육을 받을 때 남자 단원들이 물었다. 결혼했어요? 남편이 허락했어요? 남편 밥은 어떻게 하구요? 아이는 있어요? 무엇하러 다른 나라 애들을 가르치러 가요? 생판 모르는 여자의 남편이 밥 굶을까봐, 처음 본 여자의 자식들이 잘못 클까봐 ‘네버엔딩 맨스플레인’을 그치지 않았던 그 남성 어르신들은 잘들 살고 계신지. 아랫집 스리랑카 여주인 닐루씨는 몇달 정도 위층에 혼자 사는 내 하루를 불안하고 처량하게 바라봤다. 수업만 마치고 돌아오면 혼자 틀어박혀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먹고 사는지, 찾아오는 이도 드문데 외로워서 죽은 건 아닌지 안쓰럽게 들여다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세 아이 보살피고 남편과 다투고 시어머니와 시동생을 건사하느라 땀에 전 옷을 입고 잠깐 내 집에 올라와 실론차를 마시면서 그녀는 한국말로 말했다. 선생님처럼 살고 싶어요.

전 페미니스트저널 <이프> 편집장, 코이카 스리랑카 한국어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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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부카나에 있는 핀나웰라 코끼리 고아원. 엄마 잃은 코끼리들이 모여 산다. 네 발 달린 짐승이 어딘들 못가랴, 하며 여행을 다녔다. 코끼리를 좋아서 종종 찾아간 곳이다. 꼬챙이 든 사육사 모습은 그저 슬픔. 사진 권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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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하푸탈레 릿톤싯에서 만난 타밀 사람들. 광활한 차밭에서 만나자마자 그 사람들은 가지고 있던 노란 꽃을 내게 주었다. 사진 권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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