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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스밀라의 ‘자매’ 수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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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박현주의 장르문학 읽기

수잔 이펙트
페터 회 지음, 김진아 옮김/현대문학(2017)

인간은 접촉하면서 서로에게 흔적을 남긴다. 눈길이 상대에 가닿았을 때 보이는 얼굴, 공기의 파동이 귀에 닿았을 때의 목소리, 손과 손이 스쳤을 때의 촉감, 콧속으로 스며드는 향기. 그것이 우리가 타인을 알아가는 방식이다. 하지만 신체적 감각을 넘어 정신적 전파를 통해 상대방의 마음속에 가닿는 능력이 있다면? 그리하여 그의 진심을 알 수 있다면? 작가 페터 회는 이를 수잔 효과라고 이름 붙였다. 바로 <수잔 이펙트>의 시작이다.

실험물리학자인 수잔은 인생의 위기에 몰린다. 열일곱살 쌍둥이 아이들 중, 아들은 골동품 밀수 혐의로 네팔 국경 근처에서 잡혔고, 딸은 칼리 사원의 승려와 도망치던 중에 체포되었다. 음악가 남편인 라반은 마하라자의 딸과 도주해서 남인도 마피아에게 쫓긴다. 수잔 본인도 강간하려는 거구의 남자를 맨손으로 때려눕혀서 미얀마 국경 근처 감옥에 구금된 상태이다. 덴마크 정부의 인사 토르킬 하인은 수잔과 가족을 구해주는 대가로 수잔에게 어떤 임무를 요구한다. 수잔의 앞에서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속마음을 털어놓는 능력을 이용해서 어떤 사람에게서 무언가 알아내라는 것이다. 마그레테 스프레데라는 여자에게 미래위원회의 마지막 보고서 두 건의 내용과 그에 참여한 사람들의 명단을 받아오라고.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으로 문학사에 길이 남을 여성 캐릭터 스밀라를 창조해낸 페터 회는 이번에도 수잔이라는 인상적인 인물을 그려냈다. 마흔네살의 수잔은 스밀라처럼 수학과 과학의 재능을 지닌 여성으로, 쳐다보기만 해도 기계의 작동 원리를 알아낼 수 있다. 자신을 폭력으로 위협하는 남자들에게는 똑같이 폭력으로 갚아준다.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가족 누구에게도 구속되지 않고 혼자 떠나고 싶어한다. 스밀라의 다른 자매 같은 수잔은 영리하고 강하며 혼자이다.

페터 회의 여러 소설과 비교해서도 소설적 구성 면에서 <수잔 이펙트>는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과 가장 비슷하다.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 요리와 같은 일상의 행위에 대한 철학적이고 과학적인 고찰, 인간의 본성을 꿰뚫는 문장으로 이루어진 이 스릴러 속에서 수잔이 대적해야 하는 대상도 연약한 개인들을 저버리는 거대한 조직이다. 위원회가 보았던 미래는 현재가 되고, 이 위기 앞에서 수잔은 자기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

한편 <수잔 이펙트>는 페터 회가 여러 소설에서 늘 깊이 탐색했던 경계에 대한 이야기기도 하다. 수잔은 자신의 경계를 지킨다는 엄격한 규칙으로 살아간다. 무엇에도 연결되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혹은 그러기에 수잔은 동시에 역설적으로 타인이라는 경계를 세상에서 가장 잘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오롯이 자기가 되기 위해서 자기의 영역 안에 머무를 필요가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늘 구분선을 스치고 넘으면서 산다. 어떤 순간만은 자기를 넘어 솔직해지고 싶어한다. 경계를 무너뜨리고 싶어한다. <수잔 이펙트>는 이것이 암울한 미래를 앞둔 세계의 위기 속에서 인류가 살아남는 길이라 하는 것 같다. 어쩌면 이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다.

박현주 에세이스트, 번역가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주주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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