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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과학 없는 세상의 사고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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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정인경의 과학 읽기

1984
조지 오웰 지음, 김병익 옮김/문예출판사(2006)

조지 오웰의 <1984>는 과학소설(Science Fiction)의 고전이다. 1948년에 바라본 1984년은 ‘미래를 예견하는 소설’이었지만 21세기에는 ‘과거 소설’이 되었다. 그럼에도 <1984>가 그려낸 디스토피아의 암울한 세계에 우리는 여전히 공감한다. “당신들의 미래는 살 만한 곳인가요?”라는 질문에 가슴이 뜨끔한 기분을 느끼면서 말이다.

<1984>의 과학기술문명은 화려하지 않다. 양면의 텔레비전으로 송수신이 가능한 텔레스크린(telescreen)이 나오는 정도다. “빅브러더는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를 실현하는 이 장치는 개인의 사생활을 낱낱이 감시한다. 전체주의 국가권력이 모든 이의 삶을 통제하는 미래 사회가 재현된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살풍경스러운 공포정치를 주도하는 것은 텔레스크린과 같은 기술매체가 아니다. <1984>에서 나타난 미래 사회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은 따로 있었다. 바로 우리 현실이 얼마든지 정치적으로 조작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인간의 본성을 꾸준히 탐구한 조지 오웰의 관찰력과 감수성은 예민하다. 인간이 무엇을 잃어버렸을 때 인간성을 상실하게 되는지를 알고 있는 듯하다. 예컨대 역사와 언어, 그리고 감정(가치판단 능력)이다. <1984>에서는 이 세 가지가 국가권력에 의해 집중적으로 훼손된다. 과거의 역사와 언어를 통제하자, 인간의 사고가 위축되고 가치판단 능력이 소멸하게 된다. 누군가가 과거의 기록과 나 자신의 기억을 끊임없이 조작했을 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조지 오웰은 <1984>에서 에스에프의 상상력으로 언어 통제의 실상을 정교하게 묘사한다. 언론과 매체를 장악한 국가권력은 과거의 언어(구어, 구사고)를 없애고 새로운 언어(신어)를 창조한다. 책 부록에 제시된 ‘신어’에는 놀랍게도 자유, 정의, 민주주의라는 낱말과 함께 ‘과학’이 사라지고 없다. 과학은 객관성이나 합리주의와 같이 더이상 인간에게 필요치 않은 ‘구사고’였기 때문이다. 고도로 발전한 과학기술문명에 ‘과학’이란 단어가 없는 것이 이상하지만 디스토피아에서는 수박 겉핥기 식의 전문 분야 목록과 권력에 순응하는 전문가만이 존재할 뿐이다. 따라서 “과학의 기능은 전문 분야를 떠나 정신의 습성이나 사고의 방법이라고 표현할 어휘가 없다.”

과연 과학이 없는 세상살이는 어떨까? “국가가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엇이든 진실이야. 국가의 눈을 통해 보지 않고는 실재를 볼 수 없어.” 객관적인 자연의 법칙은 없고, 국가가 말하는 것이 법칙인 세상이다. 여기에 세뇌된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으로 인식할 수 있는 객관적인 실재가 있다는 믿음을 잃는다. 진실을 볼 수 없다는 무력감은 옳고 그름을 헤아리는 도덕적 정신마저 무너뜨린다. 지금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 감각을 완전히 상실하고, 결국 껍데기 인간으로 살아간다.

조지 오웰의 사고실험으로 보여주는 <1984>의 경고는 이것이다. 과학적 사고, 합리적 의심이 없으면 정치는 조작된다는 것. 과학과 정치가 아무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과학은 역사적으로 정치권력의 대척점에서 민주주의를 이끌어왔다. 의심하라! 진실은, 지켜내지 않으면 언제든 소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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