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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정규직 준다” 인턴 임금꺾기·공짜노동 시킨 커피빈·이랜드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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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일찍 출근, 늦게 퇴근 15시간 근무

바리스타 뽑아놓고 설거지만 시켜

장갑 없이 맹독세제 사용 손 망가져

연장·야근 수당 등 떼어먹기 일쑤

정규직 전환 약속에 ‘냉가슴’만

정작 채용된 인턴은 몇명뿐



한겨레

커피빈코리아에서 주로 설거지를 하다 손가락 피부가 벗겨지고 피가 난 인턴 노동자의 손. 회사는 교육 때도 세제의 용도와 위험을 전혀 알리지 않았고, 다친 뒤에도 조처를 하지 않아 산재 관리와 보호 의무를 위반했다는 논란이 커지고 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제공


“차라리 계속 알바나 할 걸 그랬어요.” 한때 정규직 전환 꿈을 안고 커피빈 코리아나 이랜드월드에 2~5개월의 시간을 바친 인턴 노동자들의 한탄이다. 혹독한 인턴과정이 끝나고 그들에게 남은 것은 최저임금에도 못미치는 돈과 질병, 상처받은 마음뿐이다.

서울시는 지난 11일 아르바이트 노동인권 보고서를 냈다. 아르바이트 실태 조사였지만, 여기서 임금체불과 노동인권 침해 정도가 가장 심각한 사례는 커피빈코리아와 이랜드월드 인턴들이었다. 서울시 보고서는 회사 이름을 밝히지 않았지만 <한겨레>는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서울노동권익센터 도움을 받아 보고서에 실린 인턴 노동자들을 만났다.

■ 손끝이 타도 맨손 설거지…커피빈코리아 커피전문 체인 커피빈코리아는 짧게는 1주, 길게는 2주일마다 30명씩 ‘바리스타’를 뽑는다. 매장에서 6개월 동안 일하면 간단한 시험을 거쳐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준다고 했다. 그러나 6개월을 버티는 것이 문제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2년 넘게 일자리를 구하던 김정연(가명)씨는 정규직으로 살고 싶어서 올해 1월 커피빈 코리아에 ‘입사’했다. 그러나 본사 교육 뒤 배치된 매장 분위기는 험악했다. 근무시간보다 30분 일찍 출근해야 했고 동료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거나 손님이 없을 때 의자에 걸터앉기만 해도 눈초리가 따가웠다. 2살 어린 정규직원은 그를 꼭 “야!”라고 불렀다. 바리스타 인턴이라지만 그가 2달 동안 주로 한 일은 설거지였다. 출근 1주일 만에 손이 갈라지고 피부가 벗겨지기 시작했다. 알고보니 이 매장에서 쓰는 세제는 맨살에 닿아선 안되는 독한 용액이었다. 피가 나다가 손끝이 까맣게 변할 때쯤 점장이 고무장갑을 줬다. 매니저가 “감사하다고 해라, 회사에선 안 줘. 점장님이 특별히 사주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커피빈 매장 중에서도 매출 전국 10위 안에 드는 이 매장에서 인턴들은 장갑 낄 시간조차 없었다.

김정연씨는 인턴을 시작할 때 하루 8시간 노동을 약속받았지만 실제론 30분 일찍 와서 5~30분 늦게 퇴근했으며 밤에도 수시로 일해야 했다. 그러나 회사는 연장근로수당과 밤 10시 이후 야간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 이는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함께 일하던 동료가 이에 항의하는 진정서를 고용노동부에 내자 점장은 “회사가 조기 출근을 강요한 적이 없다”는 내용의 ‘사실확인서’를 써서 김정연씨에게 서명할 것을 강요했다. 억지로 서명해야 했던 김씨는 결국 인턴 2달만에 커피빈코리아를 퇴사했다.

커피빈코리아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조기출근은 없다. 회사가 종용한 일도 전혀 없으며, 모든 초과근무에 대해 수당을 지급했다”고 했다. 그러나 <한겨레>는 커피빈코리아 인턴들의 단체 카톡방에서 대부분 30분 먼저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정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중엔 임금체불, 관리자 언어폭력에 대한 진술도 있었다. 인턴으로 일하며 1달 150만원을 받은 이수진(가명)씨는 야근 등 초과근로 수당과 주휴수당 등 못받은 임금 12만원을 청구했으나 조기출근 부분만 인정돼 회사로부터 3만원을 받았다. 업무 준비와 마무리에 드는 시간을 버리는 방식으로 임금을 계산하는 것을 ‘임금꺾기’라고 한다. 조기 출근을 부인하던 회사는 임금 일부를 주면서도 임금꺾기 식으로 지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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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빈코리아는 조기출근과 임금꺾기가 논란이 되자 인턴에게 회사가 조기출근을 강요한 적이 없다는 허위사실 확인서를 쓰도록 시키기도 했다. 비정규노동센터 제공


■ “2달 더하면 정규직 확률 90%”에 속아…이랜드월드 패션 마케터가 되고 싶었던 김철호(가명)씨는 지난해 2월 회사에 낸 보고서에 “오늘 하루 72번 웃었으며, 건강주셔서, 영업에 대한 깨달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적었다. 그러나 그는 전혀 웃고 싶지 않았다. 지난해 1월부터 3월까지 이랜드월드 인턴으로 일한 청년 25명은 매일 아침 7시까지 서울 금천구 이랜드 본사로 출근해 성경강독과 기도 시간을 보낸 뒤 각자 배치된 의류매장으로 향해야 했다. 밤 10시 매장이 문을 닫으면 보고서를 내야 하루 일과를 마쳤다. 인턴들의 모든 행동은 상·벌점으로 매겨지고 하루 일과와 웃은 횟수, 감사할 거리를 적는 보고서도 평가 대상이었다. 잘 수 있는 시간은 하루 5시간. 그나마 지각해서 벌점 5점을 받을까봐 아예 잠이 안올 무렵 그는 스트레스로 머리가 한웅큼씩 빠지는 원형탈모를 겪었다. 인턴이 점심시간 술을 한잔 하거나 무단 결근을 하면 바로 퇴사였다.

인턴으로 입사하며 그는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하기로 했지만 실제론 아침 7시부터 밤 10시 반까지 15시간을 넘게 일했다. 퇴근 뒤에도 회사가 시킨 영상을 만들거나 책을 읽거나 시험을 보기 위해 사실상 ‘재택야근’을 했다. 그렇게 일하고도 최저임금(하루 8시간 기준 135만2230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1달 130만원 남짓한 돈을 받았다. 김씨는 “회사는 절반은 정규직 전환이 될 거라고 했다. 나도 그 절반에 들어갈 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 시간을 버텼다”고 했다. 그러나 2달 뒤 회사는 25명 중 8명에게만 최종면접 기회를 줬다. 그나마 김씨를 비롯한 4명에겐 “너는 지금 합격가능성이 70%밖에 안된다. 인턴은 끝났지만 최종면접 때까지는 시간이 있다. 계속 매장에서 일하면 가능성 90%가 넘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말을 듣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김씨는 전국에서 가장 장사가 잘된다는 매장에 가서 5월까지 최저임금만을 받으며 더 열심히 일했지만 결국 정규직이 되지 못했다. 인턴 25명 중 3명만 합격했다. 김씨는 26일 고용노동부에 2달 기준 286시간 연장 근무한 수당을 달라고 진정서를 냈다.

이랜드월드는 “부서 경쟁이 과열돼 일어난 일인 것 같다. 문제제기가 쏟아져 올해부터는 조기출근 관행을 없앴다. 임금체불에 대한 진정이 들어오면 조사 뒤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주주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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