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6 (수)

빵 냄새, 종이 냄새 섞이니 오감이 꿈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ESC] 요리

28일 개관 앞둔 음식 전문 도서관 ‘현대카드 쿠킹라이브러리’ 미리 가보니



한겨레

자연광과 인공조명이 어우러진 1층. 사진 박미향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수만 권의 책이 꽂힌 도서관은 인재를 길러내는 요람이자 한 시대의 문화를 투영하는 공간이다. 인터넷이 아무리 발달해도 손가락 끝에 닿는 관능적인 촉감은 버석거리는 종이를 따라갈 수 없다. 터치스크린 따위가 감히 넘볼 수 없는 영역이다.

최근 현대카드가 색다른 도서관을 강남 한복판에 열었다. ‘쿠킹라이브러리’다. 현대카드는 2013년부터 문화사업의 일환으로 디자인, 여행, 음악을 주제로 테마 라이브러리들을 개관해 왔다. 이번에는 음식이다. 이미영 현대카드 브랜드본부장은 “요리는 누구나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분야”라며 대중의 관심이 점점 커져 기획하게 되었다고 한다.

올해 초 이 소식이 음식업계에 퍼지면서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았다. 성현아 페이스트리 셰프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요리교실까지 하는 음식도서관이라는 소문에 호기심이 생겼다”고 한다. 정식 개관(28일)에 앞서 지난 24일 미리 둘러봤다. 탐독의 공간에 들어선 탐식의 퍼레이드가 궁금했다. 현대카드 회원과 동반한 2명까지는 무료 입장이 가능하다.

수직으로 뚫려 개방감 만족
요리책 1만권 눈 휘둥그레
두툼한 샌드위치 등 팔아
“요리교실도 운영할 계획”

공간, 수직으로 연결되어 서로를 염탐하다

지난 24일 도착한 쿠킹라이브러리는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폴리카보네이트 외장재로 칭칭 감은 건물은 정체를 짐작하기 어려운 모양새였다. 이용자의 호기심을 끌어내려는, 공간 설계자 최욱 원오원 대표의 의도라고 한다.

1층에는 ‘델리’와 제빵 공간, 요리용품 숍과 24인용 한 줄 식탁, 네 줄 식료품 벽장이 있었다. 다른 벽에는 흑백사진이 음악과 함께 흘렀다. 세련된 라운지 바 같았다. 요리용품 숍 앞에 서자 ‘심쿵’할 반죽 밀대가 보였다. 폴란드 작가 발레크가 수작업으로 만든 것이다. 소규모 주방기구 전시장 같다. 식료품 벽장에는 수입 발사믹 식초, 살라미, 여러 종류의 치즈 등과 상수동의 유명 식당 ‘소녀방앗간’의 소스와 산나물 말린 것이 있었다.

고개를 슬쩍 들자 2층 도서관의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각 층들이 서로를 염탐하듯 수직으로 뚫려 연결되어 있었다. 이때 빵 냄새가 진동했다. 통유리로 된 제빵 공간에서 나는 것이었다. 맛 평가는 후각을 포함한 오감의 정교한 작동에 의해 결판난다. 김나영 스페이스 브랜드1팀 팀장은 “1층은 라이브러리 전체 공간의 특징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라고 했다. 3~4층은 요리교실이 진행되는 주방과 예약제로 운영하는 식사 공간 ‘그린하우스’가 있다. 6월 이후 이용이 가능하다.



▶좋은 점: 공간은 자연광과 인공조명이 조화를 이뤄 아늑하다. 1층에서도 2층을 엿볼 수 있는 점도 매력.
▶아쉬운 점: 식사 공간으로 1층은 다소 어수선하고, 요리용품 숍과 식재료 벽장은 수량이 적어 조금 초라해 보인다.



한겨레

예약제로 운영하는 4층의 ’그린하우스’. 사진 박미향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책, 하루 종일 들춰보고 싶은 음식책 가득

서양요리의 체계를 잡은 천재 요리사 오귀스트 에스코피에(1846~1935)가 수많은 요리책을 후대에 남기지 않았다면 식문화가 꽃피었을까. 실력 있는 요리사일수록 책을 많이 읽는다.

2층에 오르자 화려한 장식의 책 1만권이 눈에 들어왔다. 고르곤졸라피자처럼 고소한 향이 바닥에도 천장에도 배인 듯했다. 요리사라면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음식책이 가득했다. 둘러보다 책등이 1㎝ 정도 되는 노란색 책 6권이 눈에 띄었다. 스페인의 전설적인 레스토랑 ‘엘불리’의 12년 역사를 담은 책이었다. 조리와 과학을 접목한 분자요리를 전 세계에 전파한 페란 아드리아의 레스토랑이다. 지금은 없는 레스토랑이어서 책의 존재가 더 소중했다. 김나영 팀장은 “외서가 전체 장서의 70%”라면 “미국 등의 음식 전문 도서관 등을 뒤져 구입한 것들”이라고 말한다. “2층 서가에 앉아 책을 읽다보면 지하 주방에서 만들어 1층 델리로 올려 보내는 음식의 향이 뚫린 공간을 통해 올라와 독특한 책읽기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가운데 ‘인그리디언츠 하우스’(Ingredients House)가 있는 점도 독특하다. 150여종의 향신료와 허브, 소금 등을 향을 맡고 맛을 볼 수 있다.



▶좋은 점: 인도요리 책부터 81종의 잡지까지, 음식 마니아라면 반해버릴 책이 많아 하루 종일 이곳에서 놀고 싶을 듯.
▶아쉬운 점: 국내 서적이 30% 정도인 점과 책상이 다소 부족하다.



한겨레

150여종의 향신료와 허브, 소금의 맛을 볼 수 있는 ’인그리디언츠 하우스’. 사진 박미향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맛, 도톰한 고급 샌드위치들의 향연

1층 한쪽 벽 아래 고풍적인 수레 위에는 샤워도호밀빵이 잔뜩 쌓여 있다. 한때 동빙고동에서 영업했던 빵가게 ‘바로크’가 입점해 비치해 둔 것이다. 탁 트인 제빵 공간도 바로크가 운영한다. 유기농 발효종, 프랑스와 캐나다에서 수입한 밀가루 등을 사용해 빵을 만드는 바로크는 현대백화점에도 입점해 있다. 김나영 팀장은 “백화점보다 5~7% 싸고 이곳에만 파는 빵도 있다”고 한다.

한겨레

(왼쪽부터) 루번샌드위치, 그린 샐러드, 교자만두, 당근 샐러드. 사진 박미향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음식을 즐기는 1층 델리에는 커피 등과 각종 먹을거리가 있다. ‘준혁이네농장’의 당근으로 만든 샐러드를 비롯해 키노아, 안초비, 그린샐러드 등이 애피타이저로 준비되어 있다. 된장과 간 가지가 소스인 당근샐러드는 한 접시가 그림 같다. 시그니처 메뉴로 기대된다는 그린샐러드는 각종 제철 채소에 그린빈을 갈아서 화이트발사믹을 섞은 소스를 부어 만든다. 첫맛이 시큼한데 신선한 계절을 담은 듯했다.

평범해 보이는 까르보나라파스타는 직접 만든 베이컨이 재료고 현재는 건면을 사용한다. 알리오올리오, 미트볼파스타 등 3가지가 있다.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건 샌드위치들. 총 5가지인데 그중 루번샌드위치는 본래 콘드비프(염장해 보관하는 고기)를 쓰지만 이곳은 파스트라미(향신료로 양념한 훈제고기)를 쓴다. 조금 더 고급이다. 샌드위치와 같이 나오는 감자도 통감자를 로즈메리와 타임 등의 허브 우린 물에 삶은 후 잘라 튀겼다. 제주삼겹살을 속 재료로 쓴 교자만두는 스페인 스파클링 와인 ‘까바’와 짝궁이다. 동서양의 조화다.



▶좋은 점: 샌드위치와 그린샐러드 등이 맛깔스럽다. 한 끼 식사로도 충분한 양이다.
▶아쉬운 점: 루번샌드위치의 가격은 1만8000원. 다소 가격대가 높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쿠킹라이브러리에서 볼만한 책 6권

한겨레

〈elBulli 2005~2011〉: 천재 요리사 페란 아드리아가 쓴 책으로, 그의 레스토랑 ‘엘불리’의 전성기인 2005년부터 6년간의 레시피를 다루고 있다. 700여개의 레시피가 1400장의 아름다운 요리사진과 함께 제공된다.

한겨레

〈Mastering The Art of French Cooking〉: 미국인 요리사 줄리아 차일드와 시모네 벡 등이 쓴 2권의 책으로 전통 프랑스 요리를 미국 음식업계에 접목시킨 내용을 다루고 있다.

한겨레

〈Modernist Cuisine: The Art and Science of Cooking〉: 조리 기술과 식재료 다루는 법 등을 과학적으로 해석한 요리과학책. 저자 네이선 미어볼드는 물리학 박사이자 경제학자.

한겨레

〈James Beard’s All-American Eats〉: 미국의 요리계 오스카상이라는 제임스 비어드 상을 주관하는 재단에서 미국 각 지역의 고유음식을 파는 레스토랑의 음식을 소개하는 책.

한겨레

〈How to Cook a Wolf〉(초판본): 제2차 세계대전 때 만들어진 책으로, 전쟁 중이지만 잘 먹고 살 수 있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책 제목의 ‘울프’는 인생의 고난을 말한다고 한다.

한겨레

<음식디미방>: 17세기의 책으로 장계향 선생이 저자다. 최초의 한글조리서로 다양한 조리법들이 기록되어 있어 조선시대 식문화를 살필 수 있다.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주주신청]
[▶ 대선 팩트체크] [페이스북] [카카오톡] [정치BAR]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