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6 (수)

[숨은 역사 2cm] 헬 조선 해결 열쇠는 아랍제국 만든 '아사비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서울=연합뉴스) 황대일 기자 = 우리 사회의 공동체 해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국민 연대의식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기 때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를 보면 한국 사회통합지수는 OECD 회원국 30개국 중 29위다.

연합뉴스


양극화와 여성 차별, 노인 빈곤, 청년 실업난 등이 주원인으로 꼽힌다.

최순실 사태도 사회통합을 약화한 요인이다.

글로벌 홍보업체인 에델만 조사로는 최순실 사태 이후 한국 신뢰 지수가 7% 포인트 떨어졌다.

공동체 응집력이 낮아지면 갈등과 분노 증가로 사회가 산산이 조각난다.

분열 양상이 한계를 넘으면 국가 생존마저 위태롭게 된다.

동서고금에 출현한 제국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요인은 사회 결속력이었다.

연합뉴스

이슬람 학문의 거장인 이븐 할둔. 10디나르 지폐의 인물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에서 제국 흥망사를 처음 연구한 인물은 14세기 아라비아 사상가 이븐 할둔이다.

이븐 할둔은 '아사비야'라는 낯선 개념을 분석 도구로 삼았다.

유목민이 권력을 얻는 데 필요한 연대의식을 일컫는 아랍어다.

아랍 종족은 7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무기력했다.

강대국 비잔틴(동로마)과 페르시아 틈바구니에서 간신히 명맥을 유지했다.

이슬람 지도자 할리파가 국가를 이끌기 시작한 632년부터는 사정이 달라진다.

단기간에 아라비아와 스페인, 아프리카 북부를 아우르는 초강대국을 건설한 것이다.

지배층과 백성이 근면, 검소, 단결, 용기 등으로 무장해 똘똘 뭉친 결과다.

바그다드에 수도를 정한 8세기에는 이슬람 황금시대를 맞는다.

유럽과 소아시아를 장기간 지배해온 비잔틴과 페르시아는 한없이 쪼그라든다.

수백 년간 이어진 양국 전쟁으로 아사비야가 약해진 탓이다.

페르시아는 내전에 휘말리다 아랍 공격을 받아 멸망한다

전쟁 비용을 조달하느라 백성은 가혹한 세금에 시달려야만 했다.

상당수 조로아스터 교도는 인도로 망명한다.

국가 연대의식이 유지될 리 없는 상황이었다.

비잔틴도 부침이 있었지만 큰 흐름은 내리막길이었다.

정부 곳간이 텅 비고 발칸 반도 대부분을 슬라브족에 빼앗긴다.

시리아, 아르메니아, 이집트 및 북아프리카 영토는 아랍 쪽이 차지한다.

내전까지 겹쳐 혼란을 거듭하다 1453년 오스만 제국에 패망한다.

유럽에서 가장 부유했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도 이슬람 세력이 장악한다.

아사비야는 건국 이후 사이클 곡선을 그리며 커진다고 한다.

하락과 상승을 반복하다 정점을 찍는데 이때가 국가 최전성기다.

이후 하향 사이클을 그리다 바닥권에 접어들면 외침이나 내분으로 제국은 망하게 된다.

아사비야는 제로섬 구조여서 변방에서는 되레 올라간다.

칭기즈칸이 몽골부족연맹 기병대를 이끌고 정복에 나선 13세기가 그런 시기다. 몽골군은 유라시아를 넘어 유럽까지 장악해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한다.

급팽창한 몽골제국은 망하는 속도도 빨랐다.

부족 응집력이 느슨해지다가 결국 1368년에 패망한다.

아사비야는 지금도 국가 흥망성쇠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과거와 달리 한계는 있다.

과잉 아사비야는 국수주의로 변질해 세계화 물결에 밀려날 수 있다.

세계화는 자본과 시장 통합뿐 아니라 국가 간 인구 이동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아랍 제국을 낳은 이슬람 연대의식은 평화와 인권 등 국제 보편가치와 가끔 충돌한다.

아사비야는 아랍권이 낙후되고 분쟁이 잦은 원인의 하나일 수도 있다.

한국은 아랍권과 대조를 이룬다.

연대의식이 약해진 탓에 곳곳에서 파열음이 나온다.

경제 순위 11위 국가인데도 헬 조선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한다.

사회를 강하게 묶는 신바람 기운이 사그라든 탓이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양극화를 비롯한 갈등 요인을 줄인다면 아사비야가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경제 체질을 고려하면 아사비야는 더욱 절실하다.

아사비야는 세계화 시대에 탄탄한 공동체 뿌리가 돼 웬만한 외풍도 견딘다.

감미로운 노래로 선원을 잡아먹는 사이렌 유혹도 이길 수 있다.

hadi@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