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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2 (화)

"퇴근 후 밤마다 음란물 사이트 검색하는 날 보고 아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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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사이버 경찰 배영호씨, 음란물 신고대회에서 1위]

음란물 하루 200여개 찾아내 "내 아이, 손주들 생각하면 도저히 두고만 볼 순 없었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어이가 없습니다. 그냥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어 몇 개만 입력하면 6시간 만에 음란물만 450개가 줄줄이 뜹니다. 심지어 단순히 섹시한 연예인 이름만 검색해도 관련 음란물 동영상 링크가 뜬다니깐요. 음란물 수위는 해마다 세지고…."

대구에서 10년째 공인중개사 일을 하며 두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가장' 배영호(49)씨. 그는 대한민국 최고의 '누리캅스'다. 지난달 6일부터 19일까지 경찰청이 개최한 '인터넷 음란물 신고 대회'에서 2600여건을 신고해 1위를 차지했다. 누리캅스란 2007년부터 경찰청이 인터넷상 불법·유해 정보를 모니터하기 위해 발족한 민간 경찰로, 현재 대학생·회사원 등 782명이 활동 중이다. 상을 받으러 서울에 온 배씨를 1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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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이 주최한 인터넷 음란물 신고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 ‘누리캅스’ 배영호(49)씨가 대구 달서구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인터넷 음란물을 찾고 있다. 배씨는 매일 약 200건의 인터넷 음란물을 신고하고 있다. /남강호 기자 kangho@chosun.com


배씨는 "공인중개사 일을 하면서 인터넷을 접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너무 많은 음란물이 인터넷에 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며 "큰아들이 스물한 살이고, 둘째 딸이 열아홉 살인데, 내 아들딸과 손녀 손자들이 이런 음란물에 노출된다는 생각에 활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배씨는 2007년 4월부터 '공인중개사'와 '누리캅스'라는 두 가지 일을 하고 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는 공인중개사 사무실로 출근해 일을 한다. 퇴근해 집에 오고 나면 오후 8시부터 오전 2시까지는 '음란물을 단속하는 경찰'이 된다.

그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글래머, 연예인 동영상, 가슴 등의 검색어를 입력해 음란물과 관련된 주소가 나오면 곧바로 경찰청에 신고한다"며 "이렇게 신고된 주소들은 바로 다음 날 폐쇄된다"고 말했다.

하루 평균 배씨가 찾아내는 음란물은 200여개, 지난 5년 반 동안 배씨가 폐쇄시킨 사이트와 삭제한 음란물 등은 총 50여만개다.

가족 생각에 시작한 '누리캅스' 일이지만, 아내가 배씨의 활동에 찬성한 것은 아니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와 밤마다 컴퓨터 앞에서 음란물 사이트를 검색하는 남편 모습이 이상했던 것이다. "아내가 처음엔 '음란물을 보는 것 아니냐'며 오해했어요. 그다음엔 '정부도 나서지 않는 일을 당신이 왜 하느냐'고 하더라고요. 저도 처음엔 오해받기 싫어서 빈 사무실에 혼자 나와 누리캅스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내에게 차근차근 설명하면서 일을 해요. 최근엔 아내도 제 일을 응원해줍니다.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는 데에 뜻이 맞은 거죠."

6년째 이 일을 하고 있지만, 배씨는 "과연 음란물 문제가 끝이 날까 하는 의문은 여전하다"고 했다.

"매일매일 치우는데 음란물은 계속 쏟아집니다. 폭설 내리는 날 눈 치우는 심정이에요. 옛날엔 야한 옷을 입고 성관계를 맺는 정도였다면, 요즘엔 아동으로 보이는 등장인물들이 나와 더 이상한 포즈를 취하는 등 점점 심각해지고 있어요. 최근 부각되는 아동 음란물 문제, 전 언젠가는 터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배씨는 "음란물이 유포되는 방법도 진화한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많이 하는 '트위터'도 안전하지 않다"면서 "한 번은 한 개인의 트위터를 들어가 구경하는데, 음란물 수준의 상체 노출 사진이 올라와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알고 보니 트위터 이용자가 유료 음란 채팅 운영자였던 것이다. 그는 "옛날엔 음란물 사이트가 대놓고 음란한 티가 났다면, 지금은 개인 사이트 같은데 은밀하게 움직인다"고 말했다.

"얼마 전 아들이 의경으로 들어가면서 제게 그러더라고요. '아빠 덕분에 제가 올바른 가치관을 가질 수 있게 된 것 같다'고요. '아빠 덕분에 경찰이 멋져 보여 의경에 지원했다'고 합니다. 눈물이 핑 돌았죠."

배씨는 누리캅스도 '멋진 보람'이 있다고 했다.


[남정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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