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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자본주의는 ‘차별’을 통해 ‘착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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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자본주의 착취·소외·차별 상관관계

‘차별·착취는 다른 차원’ 주장 반박

“착취와 차별에 대한 저항은 동시에”


한겨레

계급, 소외, 차별-마르크스주의는 계급, 소외, 여성·성소수자·인종 차별을 어떻게 설명하는가?
제프리 디스티 크로익스 외 지음, 편집부 엮음/책갈피·1만5000원


헬조선, 여성 혐오, 차별, 비정규직, 금수저·흙수저…. 지난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열쇳말이다. 여기에 지난해 사회 분야 논문 검색 사이트의 검색어 1위는 ‘여성 혐오’(여혐)였다고 한다. 이에 따라 차별과 소외, 착취를 각각 다루는 책이 많이 나왔지만, 이들 사이의 관계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책은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이다.

<계급, 소외, 차별>은 소외와 차별, 착취가 밀접하게 연관돼 있음을 설명하는 책이다. 출판사 편집부가 외국 사회주의자 8명의 글을 골라 번역해 묶어냈다. 필자는 주로 영국 사회주의자이고, 미국과 캐나다 쪽도 일부 있다. 책을 펴낸 취지는 다음 문장에 집약돼 있다. “많은 사람들은 여성 차별, 성소수자 차별 등 사회적 차별이 계급 착취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이런 생각에 도전한다.”

전체 2부로 나뉜 책에서, 1부는 ‘마르크스주의 정치학의 기본 개념’으로서 계급과 소외, 차별을 각각 설명한다. 그쪽 동네 논리에 익숙한 독자라면 기초적인 내용일 것이며 마르크스주의 정치학의 일부분만 다루고 있지만, 의외로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1부 네 편의 글 가운데는 캐나다 퀸스대학교 정치학 교수인 에비 바칸이 쓴 ‘마르크스주의 차별론’이 핵심이다. 필자는 오늘날 차별에 관한 주류 이론이 명백히 마르크스주의와 동떨어져 있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마르크스주의는 인간 해방, 즉 차별·소외·착취로부터의 해방에 대한 과학”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마르크스주의라고 하면 노동자계급의 해방만 주목할 뿐, 여성·흑인·동성애자의 고통에 주목하지 않는다는 게 일반적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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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에선 여성, 성소수자,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마르크스는 ‘착취’와 ‘차별’의 밀접한 관계에 주목했다. 시민들이 지난해 5월14일 성소수자 차별에 항의하는 모습. 책갈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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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필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에서 차별은 계급문제이고, 노동계급의 여러 부문을 반목시킨다고 거듭 주장했다”고 했다. 흑인 노동자(우리의 경우 이주 노동자)를 차별해 이득을 얻는다고 생각하는 백인 노동자는 자본의 일을 거드는 셈이며, 여성을 차별하는 남성 노동자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차별로 득을 보는 자는 언뜻 노동계급 내 차별하는 특정 부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지배계급이다.”

실제 마르크스는 1870년 영국의 아일랜드 지배를 보면서 “다른 민족을 노예로 삼는 민족은 자신이 찰 족쇄를 만드는 셈”이라 했고, <자본론>에서 미국 노예제와 관련해 “흑인들이 낙인 찍히는 곳에서 백인 노동자는 해방되지 못한다”고 썼다. 영국 노동자들은 영국 제국주의 국가를 자신과 동일시하고, 미국 백인 노동자는 농장주를 자신과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한 사회주의자는 차별에 대해서도 끝까지 저항한다. “차별에 대한 도전은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에서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 전제 조건이다”라고도 했다. 레닌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사회민주주의자(혁명가)의 이상은 노동조합의 서기가 아니라 민중의 호민관이어야 한다. 민중의 호민관은 모든 형태의 폭정과 차별에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썼으며, 실제 1917년 러시아 혁명에서 여성 노동자 등에 대한 차별에 저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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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서울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차별금지법 제정 등을 요구하며 행진하는 모습. 책갈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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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역사학자 제프리 디스티 크로익스가 쓴 1부의 ‘역사유물론과 계급’은 계급이라는 개념을 아주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다. 본인이 고대 그리스·로마의 노예제를 연구하면서 부닥쳤던 체험담을 전한다. 계급이라면 계급의식과 공통의 정치 활동이 있어야 할 텐데, 고대 노예한테는 그런 게 없었다. 그러면 노예는 계급이 아니라, 막스 베버의 말처럼 ‘신분’이라는 지위집단일 뿐인가. 이에 대해 필자는 마르크스의 계급 개념에 대해 큰 오해가 있다면서, 계급의식 등은 계급 규정의 필수 요수가 아니라고 일갈한다. 많은 영국 노동자들이 1980년대 마거릿 대처한테 투표했다고 해서 그들이 노동자계급이 아닌 건 아니라는 얘기다. 박근혜 대선 후보에 표를 준 우리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책의 2부는 여성, 성소수자, 인종 차별의 문제를 각각 상세하게 다룬다. 우리의 경우 ‘여성 차별’ 항목이 더욱 흥미를 끄는데, 남성에 맞서 여성이 계급을 가로질러 단결하자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가부장제 이론에 대한 비판 등이 담겨 있다. 여성해방을 위해선 여성이 임금노동자가 되고 노동계급의 투쟁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을 펼친다.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사진 책갈피 제공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주주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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