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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과 비전 대결로 가는 듯했던 더불어민주당 경선이 피 튀기는 전장으로 변했습니다. 촛불 민심이 맹렬하던 올해 초, 박근혜 대통령에게까지 ‘선의’라는 말을 쓸 정도로 포용과 협치를 강조했던 안희정 충남지사가 같은 친노계 맏형 격인 문재인 전 대표를 향해 ‘정 떨어지게 한다’는 아슬아슬한 표현까지 써가며 맹비난하고 나선 겁니다.
● 文 vs 安 '당신네 진영이나 잘 단속 잘하세요'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다툼의 발단은 21일 6차 TV토론에서 문재인 전 대표가 꺼낸 네거티브 자제 요청이었습니다. 문 전 대표는 “네거티브만큼은 하지 말자는 호소 말씀을 드린다"고 운을 뗐습니다. 최근 문 전 대표의 ‘전두환 표창’ 발언을 놓고 벌어진 캠프 간 공방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읽혔습니다.
안 지사는 그간 쌓였던 것이 폭발한 듯 “네거티브를 하지 말자는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면서도 “우리를 돕는 사람들이 네거티브 하는 게 문제다. 문재인 후보님 주변 돕는 분들도 네거티브를 엄청한다.”고 몰아붙였습니다. 문 전 대표도 “주변에 보면 정말로 네거티브에 몰두하는 분 있다. 안희정 후보의 뜻이 아닐 거라 생각한다. 혹시라도 네거티브를 하자고 속삭이는 분 있다면 정말로 멀리하거나 단속하셔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맞받았습니다. 결국 문재인-안희정 두 주자가 맞붙으면서 양측이 서로를 향해 ‘당신네 진영 단속이나 잘하라’라는 식의 냉소 섞인 비난전으로 번졌습니다.
안 지사 측은 대연정과 선의 발언 논란 때 문 전 대표 지지자 쪽에서 문자폭탄 같은 네거티브를 쏟아냈는데도 이를 방치한 게 바로 문재인 전 대표 아니었냐는 인식이 짙어 보였습니다. 지난 1월 문자폭탄 논란이 벌어졌을 때, 문 전 대표가 비판은 사실에 입각해야 한다며, 당이 다르거나 경쟁 후보라고 해서 비방하거나 욕해선 안 된다고 당부하면서도 “SNS나 문자메시지로 찬성이나 비판 의사를 밝히는 것을 특정인을 위해서라고 폄하해선 안 된다.”거나 “정치인이라면 비판 문자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 것들이 다 그런 맥락 아니냐는 겁니다.
반면 문 전 대표는 안 지사의 대연정을 비판한 적은 있지만 그것은 네거티브와 다르다면서 그 점은 마땅히 토론해야 할 사안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자신의 대연정 비판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정책 토론의 일환이지만 안 지사 측이 ‘전두환 표창’ 발언을 비판하는 건 네거티브 아니냐는 반론을 폈습니다. 안 지사는 그러나 "댓글을 보거나 문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팟캐스트에 나가서 상대 후보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어봐라.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다."라고 일축했습니다. 말이 정책 토론이지 인신공격이라는 겁니다.
설전은 SNS로 장소를 옮겨 계속됐습니다. 문재인 전 대표는 토론회가 끝난 뒤 저녁 7시쯤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래 글을 남겼습니다.
경선이 아무리 치열해도, 동지는 동지입니다. 우리는 한 팀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이 원칙을 잊으면 안 됩니다. 선거에서 네거티브는 늘 있어왔습니다. 그러나 네거티브는 상대를 더럽히기 전에 자기를 더럽힙니다. 저는 제기될 수 있는 모든 네거티브와 검증을 다 겪었습니다.
어떤 네거티브가 제기 되더라도 제가 더 타격 받을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동지들이 네거티브 때문에 되레 신선한 정치 이미지에 오점이 남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 저의 진심입니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습니다. 상대가 누구여도 우리를 합친 것보다 강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네거티브를 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페이스북
7시간 뒤인 새벽 2시쯤에는 안희정 지사가 “문재인 후보와 문 후보 진영의 비뚤어진 태도에 대해”라는 제목의 페이스북 글을 올렸습니다.
자신에게는 관대 - 타인에게는 냉정.
자신들의 발언은 정책 비판, 타인의 비판은 네거티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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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 국가대개혁 과제에 동의한다면 그 누구라도 나는 연합정부를 구성할 것이다.
문 : 적폐 세력과 손을 잡아서야 되겠나?
안 : 국가개혁 과제에 합의해야 가능하다.
문 : 협치 강조는 몰라도 적폐 세력과의 연정 제안은 너무 나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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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 상대가 누구라 할지라도 그가 주장하는 바대로 일단 선의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그 선의도 법과 규칙을 위배했다면 처벌받아야 한다.
문 : 안희정의 선의 발언에는 분노가 빠져있다.
안 : 상처 입은 분들께 사과드린다. 문 후보의 지적도 잘 새겨듣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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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지지 의원들 : 자랑할게 따로 있지 그걸 자랑하냐.
안희정 : 문 후보 발언의 충심을 이해한다. 다만 상처받은 분들을 잘 어루만져달라.
문 후보 진영 인사들 : 안희정이 너무 나갔다. 나쁜 사람이다. 사람 버렸다.
문 : (타 후보들은 나를..) 네거티브 하지 말라.
문재인 후보는 끊임없이 나의 발언을 왜곡하거나 왜곡된 비난에 편승해서 결국 교묘히 공격했다. 심지어 나의 침묵까지 공격했다. 이해할 수가 없다. 자신들이 비난 당하는 것은 모두가 다 마타도어(흑색선전)이며 부당한 네거티브라고 상대를 역공한다.
이번 '전두환 장군 표창' 발언도 문재인 후보가 실수한 것임에도 문제제기 한 사람들을 네거티브하는 나쁜 사람들로 몰아 붙이고, 심지어 아무 말도 안 한 내게 그 책임을 전가시키며 비난한다. 분명 그 전두환 표창 발언 장면에 불쾌감, 황당함을 느낀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말이다.
문재인 후보와 문재인 캠프의 이런 태도는 타인을 얼마나 질겁하게 만들고, 정 떨어지게 하는지 아는가. 사람들을 질리게 만드는 것이 목표라면 성공해왔다. 그러나 그런 태도로는 집권 세력이 될 수 없고 정권 교체도, 성공적인 국정 운영도 불가능하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미워하면서 결국 그 미움 속에서 자신들도 닮아 버린 것 아닐까? 시대를 교체하자 정권 교체 그 이상의 가치 - 안희정
- 안희정 충남지사 페이스북
읽어 보시면 아시겠지만 양측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느낌입니다. 결국 ‘우리는 한 팀’이라며 문재인-안희정 모두 한 걸음씩 물러났지만 당내에서는 정치적 지향점의 차이를 넘어 사람에 대한 실망으로 번진 이번 싸움이 대선 후까지 후유증을 남기지 않겠느냐는 우려 섞인 전망이 적지 않습니다.
● 정치판에 선의란 없다?
어느 쪽의 말이 맞느냐는 각자의 판단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그건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의 생각에 맡기겠습니다. 정치적 사안에 있어 호불호를 선택하는데 정답은 없는 법이니까요. 다만 한 가지 생각해봤으면 하는 게 있습니다. 도대체 왜 이 지경까지 왔을까요? 누구보다 사이가 좋아야 할 문재인-안희정 두 친노계 핵심 인사끼리 말입니다.
따지고 보면 안희정 지사의 ‘박근혜 전 대통령 선의’ 발언이나 문재인 전 대표의 ‘전두환 표창’ 발언, 문재인 캠프의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 장관 ‘부산 대통령’ 발언 모두 전문을 놓고 보면 어떤 맥락에서 나온 이야기인지 납득할 만한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 ‘예가 잘못됐다’거나 ‘그런 말까지 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지적이 있지만 진의까지 왜곡시킬 정도는 아니라는 게 대체적인 평입니다.
문제는 정치라는, 특히 그중에서도 누군가를 꺾고 살아남아야 하는 선거판이라는 특수성이 이런 발언자의 진의, 혹은 선의를 있는 그대로 봐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설사 후보 본인들끼리는 상대방의 발언을 ‘선의’로 받아준다고 해도, 후보의 당락에 자신의 미래를 건 캠프 사람들이나 자신이 지지하는 특정 후보만 옳다고 믿는 극성 지지자들까지 그렇게 봐주길 바라는 건 무리일지도 모릅니다.
다만, ‘선의’가 ‘악의’로 왜곡되는 현실이 유권자들의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걱정스러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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