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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산도 바다도… 그저 '거기'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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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수의 매거진 레터]

'산(山)이 거기 있기에 오른다'라는 유명한 말을 누가 했는지 찾았습니다. 영국 등반가 조지 맬러리(1886~1924)라더군요. 1921년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50m) 원정대 일원으로 참여했습니다. 영국의 첫 에베레스트 도전이었답니다. 맬러리는 이듬해 2차 원정에도 참여해 동료 둘과 함께 8225m까지 올랐습니다. 산소 호흡기 없이 해발 8000m 이상을 오른 최초 기록이랍니다.

'산이 거기 있기에'라는 말은 서른여덟 살 맬러리가 1924년 6월 에베레스트 3차 원정에서 실종된 이후 더 유명해졌답니다. 맬러리는 생전 강연에서 한 청중이 "왜 그렇게 위험한 에베레스트에 오르려고 하나요?"라고 묻자 답했답니다. "그게 거기 있으니까(Because it is there)."(이용대 '등산, 도전의 역사') 산에 오르는 목적 이외의 목적이 없어야 진짜 등산이라는 일갈입니다. 기원전 알프스 넘어 로마를 공격한 카르타고 명장 한니발이나 갈리아(현 프랑스)로 진군한 로마 장군 카이사르는 '알피니스트'가 아닙니다. 산에 오른 목적이 다른 데 있었으니까요.

지난 주말 아내가 느닷없이 "바다가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여행기자가 아이디어를 내라"고 닦달하더군요. 사람 웃기는 일이 직업인 코미디언은 평소엔 조용히 지내고 싶어한다지 않던가요. 저도 집에서 조용히 보내고 싶었지만 별수 있나요. 주문진 방파제에 다녀왔습니다. 아내가 빠져 보던 드라마 '도깨비' 촬영 장소인 그곳입니다. 파도 치는 방파제에서 도깨비(공유)와 도깨비 신부(김고은) 포즈로 사진도 찍고요. 저희 말고도 그런 분 많더군요.

여행의 길은 멀고도 험하네요. 목적 없이 모든 여행이 즐거워야 진정한 여행가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아내 기분 살피려는 목적으로 다녀왔더니 왕복 여섯 시간 운전이 더 고역(苦役)이었습니다. "여행이 거기 있으니까"라는 경지? 요원합니다.

참, 다시 맬러리 이야기. 실종 75년 만인 1999년 5월 1일 시신을 찾았습니다. 미국 원정대가 꽁꽁 언 맬러리 시신을 발견했다네요. 유족 뜻에 따라 시신은 '거기'에 묻혔답니다.


[이한수 주말매거진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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