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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구운 후 5분의 기다림… 입안, 육즙이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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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기운이 완연하다. 캠핑 시즌이 돌아왔단 신호다. 평소 주방에 얼씬하지 않던 남자들도 밖에 나가면 고기를 굽고 싶다는, 선사시대 조상에게 물려받은 본능이 활활 타오른다. 고기구이 요리의 최고봉은 스테이크. 고기를 불에 굽기만 하면 되는, 가장 간단한 요리 같지만 보기만큼 쉽지가 않다. 미국 캔달잭슨 와인을 생산하는 잭슨패밀리와인의 본사 겸 방문센터 ‘캔달잭슨 이스테이트 & 가든’ 총주방장 저스틴 웽글러(Wangler·42)는 “스테이크는 단순하기에 오히려 더 어려운 요리”라고 했다. “스테이크는 와인과 가장 어울리는 요리로 꼽힙니다. 지난 12년 근무기간 무수히 많은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대부분 메인 요리로 스테이크를 드셨죠. 아마 수천 장은 구웠을 겁니다.” 이 ‘스테이크의 달인’에게 스테이크를 캠핑장이나 일반 가정에서 전문 요리사처럼 굽는 비법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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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크용 고기 두께는 최하 1.5㎝로

요리는 무엇보다 재료다. 스테이크를 구울 좋은 소고기를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양한 스테이크용 부위 중에서 웽글러 주방장은 미국에서 가장 즐겨 먹는 안심(Tenderloin)과 뉴욕스트립(New York Strip), 립아이(Rib-Eye), 포터하우스(Porterhouse), 스커트(Skirt), 플랭크(Flank)를 꼽았다. "연하기로는 안심이 으뜸이지만, 고기 맛은 약합니다. 미국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부위는 뉴욕스트립(한국말로는 채끝살)으로, 지방이 많아 느끼하고 안심보다 질기지만 풍미가 좋아요. 포터하우스는 T자 모양 뼈 양쪽에 안심과 등심이 각각 붙어있어요. T본(Bone)은 포터하우스와 같지만 안심보다 등심이 큽니다. 스커트(치맛살)와 플랭크는 소 옆구리에서 잘라낸 부위로, 쫄깃한 식감과 지방이 뿜어내는 풍미가 매력적이다."

스테이크는 일반적으로 두툼하게 썬 고기로 굽는다. "2인치(약 5㎝)가 적당합니다. 육즙이 빠지지 않아 부드럽고 촉촉한 육질을 즐길 수 있지요." 한국에선 이만한 두께의 소고기를 구하기 어렵고 값도 비싸다. 정육점에 이 두께로 썰어달라고 해도 훨씬 얇게 썰어주기 일쑤다. 스테이크용 소고기를 많이 다뤄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한국 사정을 이야기해주자, 웽글러 주방장은 "그렇더라도 최소 1/2인치(약 1.5㎝)는 돼야 스테이크다운 맛이 날 듯하다"며 "너무 얇으면 고기가 뒤틀리고 고루 구워지지 않는다"고 했다.

단 "한국 꽃등심처럼 지방 함량이 높은 고기라면 한국 전통 방식대로 얇게 썰어서 빠르게 굽는 방식이 더 낫다"고 했다. "꽃등심이나 일본 와규(和牛)는 마블링으로 연하고 고소하게 만든 소고기죠. 이런 고기를 너무 두껍게 썰면 열이 제대로 속까지 들어가지 않고, 지방이 충분히 녹지 않아 느끼하고 딱딱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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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크는 사진에 나오는 과정을 지키면 어렵잖게 구울 수 있다. 고기는 굽기 30분 전에 꺼내뒀다가 소금을 앞·뒷면에 넉넉히 뿌리고 물기를 최대한 제거한다. 연기가 나도록 뜨겁게 달군 두툼한 주물 프라이팬에 고기를 2분 굽고 뒤집기를 네 번 반복해 총 8분 구우면 미디엄 굽기의 스테이크가 된다(두께 5㎝ 등심 기준). 버터 등 식용유를 살짝 끼얹어도 괜찮다. 고기가 두꺼울 경우 옆면까지 익혀준다. 다 구운 고기는 반드시 5~7분 레스팅(resting)시킨 뒤 낸다. 그래야 칼로 잘랐을 때 육즙이 빠져나오지 않는다. 스테이크에는 카베르네소비뇽 포도 품종 레드와인이 가장 고전적인 ‘짝꿍’이나, 다양한 와인과 짝을 맞춰보며 나만의 스테이크-와인 궁합을 찾아보는 것도 즐거운 미각 경험이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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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다 굽고 반드시 '레스팅' 시키세요

스테이크에서 고기 다음으로 중요한 건 불이다. 고화력을 꾸준하게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캠핑장이라면 숯불이 최고다. "숯불에 직화로 굽는 고기만큼 맛있는 음식도 없죠." 가정에선 숯불 쓰기가 어렵다. "최대한 두꺼운 프라이팬을 사용하세요. 두꺼워야 두툼한 고기를 얹어도 온도가 떨어지지 않아요. 손잡이까지 일체형으로 된 주철(무쇠·cast iron) 프라이팬이 이상적입니다. 프라이팬을 최대한 뜨겁게 달굽니다. 저는 오븐에 프라이팬을 15분 정도 넣어 놔요. 가스불에 올릴 경우 연기가 올라올 때까지 달궈주세요."

고기는 굽기 최소 15분 전 냉장고에서 꺼내 놓는다. 고기가 속까지 실온으로 올라오도록 30분 전에는 꺼내두는 게 좋다. 속이 차가우면 당연히 제대로 익지 않아 맛이 떨어진다. 그런 다음 소금을 충분히 앞뒤에 뿌린다. "간을 한다는 목적도 있지만, 그보단 고기 표면의 수분을 최대한 제거하기 위해서예요. 물기가 있으면 고기가 구워진다기보다 삶는 것처럼 돼서 맛이 떨어지거든요." 소금을 뿌려두면 수분이 올라온다. 이걸 페이퍼타월 따위로 최대한 제거한다. 그런 다음 다시 소금과 후추를 뿌려준다.

충분히 달궈진 프라이팬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고기를 올린다. 기름은 고기가 들러붙지 않을 정도로 최소한만 바른다. "칙" 소리와 함께 연기가 피어오르고, 이어 고기 표면이 노릇하게 구워지면서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2분쯤 뒤 고기를 뒤집는다. "레스토랑에서는 표면에 X자 표시를 만들려고 고기를 90도 돌리죠. 그런데 이렇게 하면 한쪽만 너무 익어요. 고기를 뒤집어 2분 익히고 다시 뒤집을 때 90도를 돌려주면 X자가 생기니 걱정 마세요." 이렇게 2분씩 앞·뒤 4번 반복해 총 8분을 익힌다. 고기 양옆이 휘어 올라오지 않도록 손으로 전체를 눌러주면서 굽는다. 고기가 두꺼울 경우 집게로 집어서 옆면을 익혀주면 더 좋다. 이러면 고기(2인치 기준)는 미디엄 굽기의 스테이크가 된다. 이때 미디엄은 미국·서양 기준이므로, 한국인이라면 너무 덜 익었다고 느낄 수 있으니 취향에 따라 굽는 시간을 가감한다.

고기를 다 구웠다고 바로 썰면 안 된다. 레스팅(resting)이라는 아주 중요한 단계가 남아있다. "아무리 군침이 돌고 배고프더라도 고기를 5~7분 레스팅 시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육즙이 전부 빠져나가서 퍽퍽하고 맛없는 스테이크가 돼요." 고기를 구우면 표면이 뜨거워지면서 고기 속 육즙이 표면으로 몰린다. 이 상태에서 고기를 자르면 표면 쪽으로 몰린 육즙이 빠져버린다. 고기를 잠시 레스팅, 즉 쉬게 하면 몰렸던 육즙이 고기 전체로 고루 퍼진다. 충분히 레스팅 된 스테이크는 칼로 썰어도 육즙이 빠지지 않는다.

◇페어링 원칙은 '무게와 균형감'

웽글러 주방장은 스테이크의 달인이기도 하지만 음식과 와인 페어링(pairing)의 고수이기도 하다. 페어링이란 와인을 포함한 여러 음료와 음식의 궁합을 맞춰줌으로써 더 맛있게 식사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다. "페어링의 제1원칙은 '무게(weight)와 균형감(balance)'입니다. 음식 맛이 풍성하고 깊다면 와인도 묵직하고 진해야 맛의 상승효과를 냅니다. 한쪽이 너무 강하거나 약하면 밀려서 존재감이 없어집니다."

그는 스테이크에 가장 무난하게 곁들일 수 있는 와인으로 카베르네소비뇽(Cabernet Sauvignon) 포도 품종으로 만든 레드와인을 꼽았지만, "부위에 따라 다른 레드와인을 시도해보는 것도 재미있다"고 했다. "안심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맛이니 가벼운 레드와인이 어울리죠. 피노누아르(Pinot Noir) 품종이 괜찮겠네요. 뉴욕스트립 스테이크라면 카베르네소비뇽이 딱이지만, 가벼운 소스나 샐러드를 곁들인 경우라면 시라(Syrah)도 맞을 듯합니다. 립아이는 진판델(Zinfandel) 와인, 포터하우스는 시라, 스커트·플랭크는 여러 다양한 포도 품종의 레드와인이 실험 가능합니다."

레드와인은 포도 품종에 따라 가메(Gamay)-피노누아르(Pinot Noir)-카리냥(Carignan)-네비올로(Nebbiolo)-카베르네프랑(Cabernet Franc)-메를로(Merlot)-산지오베제(Sangiovese)-진판델(Zinfandel)-그르나슈(Grenache)-템프라니요(Tempranillo)-모르베드르(Morvedre)-시라(Syrah·호주 시라즈·Shiraz)-카베르네소비뇽(abernet Sauvignon)-프티시라(Petit Syrah) 순으로 강해진다.

한국음식은 양념이 강해 와인과 페어링하기 어려운 음식으로 꼽히기도 한다. 웽글러는 "별로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저희 직원 중 하나가 고향이 로스앤젤레스인데, 집에 다녀올 때마다 어머니가 담가주신 김치를 가져와요. 와인을 마시면 고추 매운맛이 도드라져서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하지만 오크통에 오래 숙성하지 않은 와인은 탄닌이 적어서 괜찮더라고요. 과일 풍미가 도드라지는 진판델이나 시라는 살짝 매운 음식과도 썩 어울립니다. 코리안 바비큐(갈비와 불고기 등 한국식 고기요리)는 정말 맛있어요! 카베르네소비뇽과 환상적이죠!"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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