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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단독] 대기업 은근슬쩍 제3자 신주발행…2주전 공고 준수 21% 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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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제3자 배정 유상증자 공시 현황’ 분석

상법에서 정한 2주 전 공고 의무 준수는 21%에 그쳐

제3자 배정 거의 절반이 주식대금 납입 당일 또는 하루이틀 새 공시

2013년 재계 요구로 개정된 자본시장법의 2주 전 공고 의무 면제가 화근

주주들의 상법상 권리인 신주발행 ‘유지청구권’ 행사 기회 원천봉쇄

기업들 법 허점 이용해 2주 전 공고 의무 정관서 배제 추진

박용진 의원 이를 차단키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안 발의



상장사들이 주주 외 제3자에게 신주를 배정할 때 2주 전 공시 의무를 면제하는 자본시장법을 악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소액주주 등은 자신의 지분이 희석되는데도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를 행사할 기회조차 원천적으로 봉쇄당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관련 법령의 헛점을 이용해 대기업들은 아예 제3자 배정을 기존 주주들에게 통지 없이도 할 수 있도록 하는 정관을 주총에 잇따라 상정하고 나섰다.

22일 <한겨레>가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제3자 배정 유상증자 공시 현황’ 자료를 보면, 지난 2013년 4월5일 이후 지난 10일까지 신주를 배정받은 제3자가 주식대금을 납입하기 2주(14일) 전까지 공시해야 하는 의무를 지키지 않는 경우가 거의 8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거의 절반은 주식대금 납입 당일이나 하루이틀 남겨 두고서 공시를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신주는 본디 주주가 보유한 주식수에 따라 배정받을 권리가 있지만, 신기술의 도입과 재무구조의 개선 등 회사의 경영상 목적 달성을 위해 필요한 경우 예외적으로 제3자한테 배정할 수 있다. 그럴 경우 총주식수가 늘어나 소액주주를 비롯한 기존주주의 주식가치는 훼손될 수밖에 없다. 이때문에 1984년부터 상법 418조 2항에선 ‘신주인수권의 내용 및 배정일의 지정·공고’를 명시하고 있다. 조항의 핵심은 제3자에게 신주를 배정할 땐 “2주간 전에 공고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겨레>가 공시 현황을 분석해봤더니 전체 제3자 배정 유상증자 공시 1211건 중 정정공시를 하거나 유상증자를 철회한 경우 등을 뺀 분석대상 568건중 ‘2주 전 공고’ 의무를 준수한 경우는 119건에 불과했다. 심지어 제3자가 배정받은 주식의 대금을 납입한 이후 공시된 경우도 5건이나 된다. 예를 들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범양건영 이사회는 2014년 8월5일 제3자 유상증자 배정을 결의한다. 주금 납입도 당일 이뤄졌지만, 정작 공시는 다음날 실시됐다.

분석대상 중 2주 전 공고를 위반한 총 449건 중 주금 납입과 동시에 공시가 된 경우가 119건으로 가장 많았다. 납입 하루 전 공시가 된 경우는 107건, 이틀 전 공시는 34건, 사흘 전 공시는 38건 등이다.

이런 상법상 2주 전 공고 의무가 무력화한 배경엔 2013년 자본시장법 개정이 있다. 당시 재계의 요청으로 주요사항보고서가 금융위원회에 제출돼 거래소에 공시되는 상장사는 상법상 2주 전 공고 의무를 면제해주는 조항이 신설됐다. 문제는 이때문에 상법상 주주에게 보장된 ‘신주발행 유지청구권’(424조)이 사실상 차단됐다는 사실이다. 유지청구권이란 주주가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있는 경우 회사에 주식 발행을 중지할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박용진 의원은 “제3자 배정 등의 방법으로 신주를 발행할 때 납입기일이 임박해서야 공시를 하는 현실에서 주주들이 신주발행 유지청구권을 행사할 기회를 원천봉쇄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최근 법률간 충돌로 빚어지고 있는 이러한 문제를 차단하기 위해 상장사의 경우에도 주식대금 납입기일 2주 전까지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공시하도록 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대기업들은 법의 허점을 이용해 앞다퉈 ‘신주 3자배정 통지’를 생략할 수 있도록 한 자본시장법 조항을 정관에 담으려 시도하고 있다. 오는 24일 결산 주주총회를 여는 에스케이(SK)하이닉스, 롯데칠성, 씨제이(CJ)계열 3사(씨제이, 씨제이이앤엠, 씨제이헬로비전), 한화 금융계열 3사(한화투자증권, 한화생명보험, 한화손해보험) 등 8개 상장사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정관변경안을 상정했다.

이들 회사의 정관 개정안을 보면 ‘자본시장법에 따라 주요사항보고서를 금융위원회와 거래소에 공시함으로써 (3자배정) 통지와 공고를 갈음할 수 있다’는 내용을 새로 집어넣었다. 기존 정관에는 상법에 따라 3자배정 때 (납입기일의) 2주 전에 주주에게 통지하도록 하는 조문이 들어있다. 의결권 자문기관인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는 “정관이 개정되면 3자배정의 내용을 사전에 알 수 없는 주주들이 대응하기 어렵다”며 안건에 반대할 것을 주주들에게 권고했다.

류이근 한광덕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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