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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엘리트 중산층’이 일으키는 착시 [유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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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재욱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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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을 두텁게 하자는 정책 구호는 나라 안팎에서 단골로 나왔다. 균형 있는 경제 성장과 소득 양극화 해소는 물론이고 사회 통합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중산층일까. 공식적으로 정립되고 합의된 개념은 없다. 다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중위소득의 75~200% 가구로 본다. 원래 중위소득 50~150% 가구로 정했다가 2019년부터 그 기준을 올렸다.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른 2022년 우리나라의 중위소득은 3454만원(처분가능소득 기준)이다. 오이시디 기준을 적용하면 2418만~6908만원 가구가 중산층인 셈이다. 전체 가구의 59.7%로, 조사가 시작된 2011년(51.9%)과 비교하면 상승 추세다.



소득 기준 외에 정책적으로 필요한 지표를 넣어 중산층의 정의를 확장하는 경우도 있다. ‘중산층 경제론’을 앞세웠던 미국 오바마 정부는 소득 기준 외에 주택 소유와 자녀 대학 교육, 의료보험, 퇴직연금, 가족휴가 등을 넣자고 했다. 1960~70년대 집권한 프랑스 퐁피두 정부는 외국어 구사 능력과 스포츠 활동, 악기 연주 능력, 약자를 위한 봉사활동 등을 포함시키기도 했다.(현대경제연구원)



중산층에 대한 느슨한 정의는 종종 주관적 중산층(혹은 체감 중산층)을 양산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한국의 중산층은 누구인가’ 연구보고서(2024)는 계층인식조사를 바탕으로 객관적·주관적 중산층을 아우르면 92.2%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여기엔 소득 상위 20%의 상층이지만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심리적 비상층’(17.8%), 상층을 빼고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여기는 ‘핵심 중산층’(54.5%), 소득 수준은 중간층인데 자신을 하층(하위 20%)으로 간주하는 ‘취약 중산층’(19.9%)이 섞여 있다. 연구진은 고학력에 관리·전문직 출신이 많은 심리적 비상층이 사회적 영향력이 큰 ‘엘리트 중산층’으로 기능하며 중산층 정책 대상으로 과대포장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소득 상위 10%는 지난 10년간 유일하게 소득점유율이 하락한 계층인데 이런 경험을 토대로 ‘중산층 위기’를 전파할 개연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들 가운데 스스로를 상층이라고 인식하는 비중은 2~3%에 불과했다. 엘리트 중산층은 증세에 부정적 응답이 가장 많은 계층이고 선별 복지보다 보편 복지에 대한 수요가 높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초 벌어진 ‘연말정산 파동’은 소득 상위 10% 직장인들의 반발로 촉발됐다. 정부가 소득공제 혜택을 줄이면서 주로 고소득 직장인의 세부담이 늘었는데 ‘중산층 증세’라는 역풍을 맞았다. 결국 정부는 더 걷은 세금의 일부를 돌려줬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세법 개정에 따른 계층별 세수효과를 분석하면서 서민·중산층 기준을 전체 노동자 평균임금의 200%(연봉 7800만원) 이하로 잡았다. 오이시디 기준보다 1천만원 이상 차이가 난다. 사회적 통념에 따른 것이라는데 과다대표된 중산층에 다름 아니다.



집권 이래 대대적 감세 정책을 펴온 윤석열 정부가 다시 종합부동산세와 상속세 전면 개편에 시동을 걸고 있다. ‘중산층 공략용’으로 쓸 모양인데 부자감세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 엘리트 중산층이 일으키는 착시를 경계해야 한다. 중산층 정책의 우선순위는 중산층에서 탈락할 위기에 있는 계층에 둬야 한다.



황보연 논설위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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