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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7 (수)

정민우 이사장의 直talk(51) 시즌 2 <본부장이 時代를 말한다> 제 5 편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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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일본을 섬나라라고 한다. 보통 대륙을 점하고 있는 나라 국민들이 느끼는 섬나라에 대한 인식은 생각이 좁고 얄팍하다는 정도다. 본부장이 섬나라 하면 대충 떠오르는 나라는 몇 안 된다.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일본 그리고 이미 이야기한 영국을 비롯해 가장 크고 가장 많은 수의 섬 나라 인도네시아와 두 번째로 많은 섬 개수를 가진 필리핀 정도이다.

본부장은 방금 이야기한 이 네 나라를 젊은 시절 다 두루 돌아보았지만 어느 한 나라도 그들이 생각이 좁다거나 또는 얄팍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 오히려 매우 조용하고 신중하면서도 사려깊다. 인도네시아나 필리핀도 각각 네덜란드와 포르투갈 및 미국에게 식민통치를 받아 정신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만도 한데 전혀 의기소침하다거나 눈치를 본다거나 하는 게 없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식민지 노예 근성이란 말이 있다. 참 어리석은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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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섬나라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주체적이고 싶어하는 존재이고 영생을 누리지만 생을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는 신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부족하지만 인간답게 살고 싶어하는 존재이다. 물론 지정학이란 학문이 있다. 지리가 정치에 주는 영향을 연구하는 정치학인데 솔직히 본부장은 별로 큰 공감이 가지 않는다. 인간이 지구에 살면서 지구가 닫혀있는 둥근 생태계인 것을 느끼고 사는 사람이 과연 있는가. 개인이 갖는 성향마다 모두 제각각인 것이다. 우주도 좁다는 사람이 있는 것이고 10평 남짓한 자신의 집이 넓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이 그 나라의 리더의 자리에 앉느냐에 따라 바뀌는 것이다. 명심해라. 지역이 아니라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누군가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형성된 리더십의 경험가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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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약의 힘 <엘랑 비탈>


경이로운 리더십을 많이 보아온 집단은 그러한 경험에 근거한 핵심적 정신문화를 만들게 되고 빈축 맞은 경험을 자주 보아온 집단은 정신문화에 대한 기대자체를 하지 않는다. 본부장이 베르그송이나 아놀드 토인비가 말하는 ‘엘랑비탈’, 즉 ‘존재가 한번에 비약하는 힘’을 주목하는 것은 그 힘의 원천도 결국 인간이 겪어 낸 오랜 정신적 숙성과정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정신적 숙성과정은 반드시 육체적 고통 즉 고독을 동반한다. 그리스 비극에서 인간이 가지는 최고의 고통은 추방이고 그것은 바로 고독을 의미한다. 몸이 아픈 것도 결국 혼자만이 겪는 극단의 고독 때문에 더 힘든 것이고 우리가 즐겨보는 SF물이나 스릴러 또는 공포물도 모두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고독함에 대한 노이로제를 건드리는 콘텐츠인 것이다. 결국 이러한 처절한 고독의 통과의례을 감수하며 분연히 일어서 본 리더십이 존재했느냐에 따라서 그 국가나 사회 집단 구성원의 미래가 바뀌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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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어당의 <생활의 발견>


자 이제 섬나라니 대륙이니 하는 말은 다시 쓰지 말아라. 작은 것에 연연해하는 편견은 사람의 값어치를 매우 떨어뜨린다. 영국 속담에 신사는 농담을 하지 않고 유머를 한다고 했다. 농담은 빈말을 말하고 유머는 촌철살인의 한마디를 말한다. 명심해라. 바로 이 입 무거운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 사람들이랑 말을 몇 마디 하면 어느 나라 사람이 되었든 느끼는 게 있을 것이다. 농담을 잘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영국식 유머는 더 더욱 안한다. 차라리 독일 쪽에 가까운 심각함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전작 ‘본부장이 말한다’에서 본부장이 심각하면 면접에 떨어진다고 했지만 일본인의 심각함은 좀 다르다. 매우 자연스럽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심각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부여된 생활 전반을 꼭꼭 씹어 먹으려는 안간힘이다. 본부장이 좋아하는 중국의 석학 ‘임어당’이 쓴 ‘생활의 발견’에서 중국인은 생활을 참 꿀떡 꿀떡 잘도 삼켜 먹는다. 그 책에서 보면 국가별(영국, 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 러시아) 국민성을 여러 각도로 분석하는데 영국과 중국인이 선두권이다.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이겠지만 본부장은 중국인의 국민성이 앞으로 21세기에는 매우 기대가 된다. 본부장이 귀에 못이 박히게 말하는 ‘실전형 인재’되기 위한 가장 기초인 그룹핑에 매우 탁월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영국인이나 일본인 또는 프랑스인은 중간 정도 되는 것 같고 오히려 독일인이 중국 다음일 것 같다. 자발적이 아니라 흩어지기 귀찮아서 함께 일 것 같은 사람들이다. 웃자고 하는 얘기다. 갈 때마다 느끼는 독일은 정말 삼삼오오 잘도 모여있다. 조용히 눈으로 말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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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는 군주론 절대 읽지 마라. 조직원 다 떠나고 혼자되기 싫으면 말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하지만 16세기에는 일본이 명실공히 국민성으로는 가장 시대에 맞았던 것 같다. 일단 꿈을 꾼다는 것은 실체가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개인의 꿈도 아니고 국가의 꿈인데 말이다. 16세기에는 영국도 대영제국이 아니었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대항해 시대를 이끌고 있었다. 토르데시아스 조약(이건 무조건 외워라. 정말 알고 있으면 있어 보인다. 그리고 이 조약이 주는 비지니스적 영감이 매우 많다)을 통해 스페인은 서경 42도 37분을 기점으로 서쪽 포르투갈은 동쪽을 지들끼리 접수한다. 아무도 동의 안했는데 말이다. 이때 이 조약을 선포해준 사람이 교황 알렉산드르 6세다. ‘보르지아’라는 미드에 나오는 인물인데 제레미 아이언스가 주연하는 거리의 무리배 보다 더 타락한 교황이 바로 그다. 정말 비도덕적 비상식적 부분이다. 본부장이 리더십 양성에 별로 도움이 안되는 책을 마키아 벨리의 ‘군주론’꼽은 이유가 다 여기에 있다. 성공은 냉혈한들의 전유물이 아니란 말이다. 상식적이지 않으면 가져도 누리지 못하고 빼앗아도 유지하지 못한다. 누차 말하지만 본부장이 가장 싫어하는 게 드라마는 막장이요, 말은 십원짜리 욕이다. 그냥 넘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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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본부장의 롤모델. 정말 멋있는 남자 <프랜시스 드레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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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당시는 모두가 본능에 충실하게 막장 드라마를 연출하던 시기였다. 유럽에서는 모범이 될 만한 나라가 프렌시스 드레이크라는 롤모델과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제정신 가지고 야물딱지게 정치하는 영국 정도일까. 스페인은 필리페 2세가 종교적 편견만 없었다면 괜찮은 분별력을 가진 정도. 다들 뭐에 홀렸는지 그저 분별없는 시대였다. 마치 대역사가 이루어지기 전의 폭풍전야처럼 말이다. 이런 시기 일본은 동서로 나뉘어 통일 전쟁을 하고 있었고 그 규모나 내용 모두 매우 근사했다. 뭔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통일 과정도 어렵사리라도 일사분란하게 규칙에 맞았다. 승부가 지어지고 나서 한마디로 패자나 주변 제3자의 군소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처절하게 오랜 기간을 통한 누구나 납득할만한 통과의례를 거치며 깨끗하게 승복하고 하나로 만들어진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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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에 모든 일이 진검승부라고 생각하면 지금처럼 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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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역사에서도 쉽게 찾기 힘든 것이 승복하는 문화다. 일본은 어떤 이유에선지 이게 되었다. 물론 미국의 남북전쟁과 중국의 국공내전도 매우 처절했지만 깔끔하긴 마찬가지다. 본부장이 그 이유를 말해주겠다. 적과 아군이 납득할 만큼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결국 대국(국토의 면적이 아니다)의 비밀은 이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통과의례의 과정에 대해 두려워하느냐 아니면 과감하게 부딪치느냐에 있다. 우리가 네덜란드를 열강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80년간의 스페인 독립전쟁에서 승리해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독립하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고 스위스가 유럽의 무게감 있는 중립국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신성로마제국의 합스부르그 왕가가 그토록 차지하려 했으나 굴복시킬 수 없었던 스위스인의 강인한 저항력에 있다. 붉은 십자가가 붙어 있는 스위스칼을 보면 느낌이 확 온다. 우리가 잘 아는 빌헤름텔이 왜 나왔겠는가. 독일의 대문호가 쓰고 그것도 모자라 로시니라는 이탈리아 음악가가 무려 6시간짜리 오페라로 만든 대작이다. 2시간도 힘든데 6시간이라니 얼마나 할 말이 많으면 그랬겠나. 그래서 스위스는 무서운 나라다. 지구상의 모든 시계를 만드는 나라가 아니던가. 시간을 아는 사람은 인내를 아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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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모든 명품시계는 스위스 시계


절대 고독의 시간을 겪어내면 대도약의 힘이 모아진다. 역사의 결과에는 다 그 만한 이유가 있다. 물론 아쉬운 부분들도 있겠지만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언제나 역사에서 불평하는 자만 될 뿐이다. 지금도 인터넷 공간으로 들어가보면 수많은 음모설과 배후설 그리고 역사에 만약이란 가정을 넣어서 반대의 결과를 설정하는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아인슈타인이 말하지 않았나.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우주는 철저한 인과관계의 고리로 되어있고 이것은 수많은 지난 사실들의 합으로 만들어진 오늘의 현상이다. 역사를 가정에 돌리고 자세를 취하거나, 나만 재수가 없다는 식의 논리는 언제나 스스로를 변방으로 끌려 나오게 만든다. 당당하게 중심으로 들어가서 맞서라. 역사는 맞서는 자들의 무대이고 그들이 주연이며 가만히 있는 자는 조연이다. 물론 조연도 나쁜 것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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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하지 말아라.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는 게 아니라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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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아시아 여러 나라보다 10년 먼저 시작해서 갑자기 혼자 부국강병해졌다는 식의 변명은 이제 식은 죽 같은 이야기이다. 무슨 일이든 플랜(Idea)도 짜기 힘들지만 플랜 이전에 그 플랜이 나오기 위한 집중력이 더 힘들고 또 플랜을 실행할 몸체(platform)을 만드는 것이 더 더욱 힘들다. 하지만 가장 힘든 것은 실행을 하겠다는 결단을 하는 것이다. 10년 앞을 보는 제아무리 뛰어난 자도 당장 눈앞에 있는 고통을 감내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본부장은 실행력이란 말은 잘 쓰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애매하다. 결단력이란 말을 쓰도록 해라. 실행력이란 부지런하다 정도로 느껴진다. 결단력은 자기희생이다. 포커로 치면 풀하우스와 로열 스트레이트 프러쉬와의 차이다. 하지만 모범생이지만 그래도 기본 포커는 쳐온 여러분도 알겠지만 풀하우스도 어려운 게 세상의 현실이다. 그래서 이리도 길게 결단의 리더십을 본부장은 일본 편 첫번째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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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현실에서는 풀하우스도 어렵다. 겸손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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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서 충분히 어려운 여정을 거친 도전자처럼 일본은 이제 세계무대로 나가서 자신의 실력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사실 아시아국가 중 이웃국가 정도를 넘는 팽창을 계획한 국가는 없다. 부족개념의 몽고는 여기서 빼자. 징기스칸을 무시해서가 아니다. 간단하다. 지금 없지 않은가. 있지도 않은 국가에 대해 이야기 할 필요가 있겠나. 약속한다. 이 글이 나올 때쯤 없어지는 국가는 과감히 뺄 것이다. 역사는 언제나 현실과 미래를 위한 것이다. 자 반대로 본부장은 인도가 극동의 일본까지 가겠다는 계획은 들어보지 못했다. 16세기에는 동양이던 서양이던 이웃나라를 침략한다거나 원정을 간다는 것에 대한 죄의식을 여기지 않았던 봉건시대였다. 즉 세습적 지배계층에 의한 권력독점이 당연시 되던 시대라 평민들의 발언권이라고는 없었다. 따라서 이 시대에는 모든 전쟁이 리더가 내미는 대의명분과 동기부여에 의해 승패가 결정된다. 일본은 그 점에서 매우 우수했다. 하지만 여기에 비하면 20세기에 부르짖었던 대동아 공영권은 그야말로 상식적으로 사기다. 이런 명분 없는 슬로건을 내밀면 일단 지고 들어가는 거다. 독일도 이런 거 내밀고 지고 시작했다. 전쟁이란 이미 이기고 시작해도 반반이다. 정복전쟁이라는 것이 과연 이미 100년도 훨씬 전에 나폴레옹이 날려버려 없어진 봉건적인 피지배계층이란 개념도 없는 시대에 과연 설득력이 있겠는가. 명분이란 듣는 자가 공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16세기에는 납득이 가는 얘기이다. 조선을 거쳐 중국과 동남아를 지나 인도를 간다는 것은 그 지역의 지배계층을 일소하고 그곳을 일본식으로 통치하겠다는 다분히 봉건적인 방식이었고 이런 방식은 당시 16세기 유럽에서도 상식적인 이야기였다. 예를 들어 스페인의 남미왕국 점령 과정을 들으면 정말 참혹해서 들을 수가 없을 정도니 말이다. 나쁜 짓 참 많이 했다. 중국 고사에 천 사람의 손가락질을 받으면 죽는다 했다. 여러분도 명심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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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남미정복을 샘플로 국가의 포용적 정책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본부장이 말하는 명분이란 결국 전체 구성원이 납득할 수 있었느냐의 문제이다. 결국 16세기에 일본의 인도원정계획의 명분은 너무나 상식적이었고 그것을 위한 동기부여도 적절했다. 이미 전쟁 게시 전에 점령할 국가에 대한 영지 분할을 잠정적으로 그어놓을 정도로 말이다. 일을 함에 있어서 먼저 큰 그림을 그려야 하는 이유는 일을 함에 있어서의 동기부여를 통한 일처리의 지속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데 있다. 다만 그 그림을 그릴 재료가 충분하느냐에 현실적 제약이 있다. 본부장이 보기에는 일본은 전쟁을 수행할 충분한 경험있고 존경받는 리더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도자의 모든 결단에서 가장 중요한 판단요소는 바로 함께 할 그룹이 베스트 그룹핑이며 이러한 베스트 그룹핑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조직 비전과 리더십의 눈높이 설정이 지속적으로 가능하느냐에 달려있다. 오랜 전쟁을 통해 다져진 리더의 인격에 대한 신뢰, 즉 우리 대장님의 어제 한 판단이 오늘도 부하들에게 예측되는 상태 말이다. 일본은 그 부분에서 전쟁 수행이 매우 용이했고 또 실제도 그랬다. 대부분의 군대가 뚜렷한 패배 없이 자연적인 혹한이나 보급로를 끊기는 문제로 고전했을 뿐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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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캐러비안의 해적에서 본 적 있는 영국 동인도 회사의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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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장은 일본이 인도에 대한 정보를 얻고 그곳을 점하겠다는 추론을 하는 과정이 매우 흥미롭다.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설립된 것은 1600년이고 그 이전에는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가마가 인도를 여행한 것이 1497년이다. 즉 동인도 회사 전 100년은 거의 포르투갈이 인도에 대한 무역독점권을 가지고 있었다. 앞에서 말했지만 토르데시아스 라인 동쪽인 아시아 지역에서 포르투갈의 독점적 활동으로 포르투갈 영향력은 당연히 일본까지 뻗쳤다. 일본인들은 이미 16세기 내내 포르투갈과 대등한 관계에서 교섭하였고 그들이 점하고 있는 인도 및 동남아시아의 각 나라에 대한 정보도 취하게 된다. 인도가 가져다 주는 환상을 들으며 일본인들은 스페인처럼 자신들이 가진 막강한 육군을 인식하게 되고 스페인이 남미를 점령하듯이 자신들도 인도까지 가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물어보자. 도대체 어떻게 말인가? 본부장이 전편 ‘본부장이 말한다’에서 글로벌화는 도시화라고 했고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모바일이라고 했다. 도시화라는 것은 도시의 욕망을 거래한다는 것이고 이는 사치품을 의미한다. 모바일이라는 것은 손과 발이 자유로운 상태로 이동의 편리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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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를 여행한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 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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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대항해 시대의 시작에는 두 가지의 요인이 있었다. 유럽은 로마멸망 이후 거주형태로 도시화가 가장 일반적이었고 도시화는 필히 귀족이나 상류층이 원하는 사치품의의 수요의 급증을 의미한다. 이 사치품의 대표적인 것이 향신료와 귀금속이다. 즉 포르투갈은 동쪽으로 향신료를 스페인은 서쪽으로 귀금속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거기에 함선의 발단은 이동에 대한 엄청난 정신적 물질적 비용 절감을 가져왔다. 한 마디로 지금이나 그때나 도시의 욕망을 찾아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자가 막대한 부를 거머쥘 수 있다는 공식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이러한 공식이 아직 맞지가 않았다. 도시화가 덜 이루어져 사치품에 대한 욕망보다는 땅에 대한 욕망이 더욱 컸었고 이는 포르투갈 상인의 무역에 대한 몰이해로 이어졌다. 한 마디로 향신료를 가져오라고 원하는 자도 없고 귀금속보다는 쌀이 더 귀했다. 이는 중국이나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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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이러지 말자. <제 2차세계대전 당시의 일본의 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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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사농공상이라는 신분제도 한 몫을 했는데 일본사회에서는 사무라이(侍)가 농부나 상공업을 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먹고 살려면 싸워서 봉지를 받아야 했다. 결국 무역이라는 것이 이루어질 동력 자체가 없으니 글로벌화도 없는 것이다. 개방성과 다양성 즉 포용적인 문화가 부족한 상태에서 유럽열강이 무역을 통해 추구하는 글로벌화 따라 하기를 감행한 것이다. 무력으로. 바로 여기서 대의명분과 동기부여가 해결해주지 못하는 변수가 발생한 것이다. 도시화도 없고 모바일도 없었다. 오로지 봉건적인 욕망에 따른 지배계층의 멋진 결단만 있었다는 것이다. 만약 배를 만들어 해전을 결심했다면 어땠을까. 그것도 문제인 게 항구를 통한 거대 도시화의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지속적인 해전을 치를 동력이 부족했다. 결국 그들에게 영감을 준 포르투갈인도 엄두도 못 낸 육지로 인도까지라는 목표를 세우고 출발! 결과는 한반도도 못 지나고 다시 돌아 온 것이다. 반대로 20세기에 ‘대동아공영권’이라는 반시대적인 명분을 내세워 인도네시아까지는 갈 수 있었던 것은 독일처럼 점령 이후 뒷일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마를 버티겠는가. 명분없는 전쟁에서 말이다. 인류애적인 마음의 양심에서 나와도 성공확률이 반반인데 말이다. 명심해라. 속임수로는 대국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미국내전인 남북전쟁에서 남군이 북군에게 진 것은 인간본성의 명분에서 이미 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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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의 연쇄작용이란 마법을 적용한 <원자폭탄>


20세기에 있었던 일본의 전쟁시도나 제국이라는 구태의연한 국체를 시대에 맞게 변화시키지 못한 것에 대해서 본부장은 일본에 대한 깊은 아쉬움이 있다. 인류를 선도할 예술적 눈높이나 아름다움에 대한 존경심은 매우 인정해 줄만 하지만 인간 본연에 대한 태도 부분에서 글로벌화를 이끌만한 포용적인 자세가 부족했던 것이다. 아마도 그것에 대한 근본적 이해보다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점에 대한 집착이 컸고 그것도 어찌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이번 일본 편에서는 모든걸 제쳐두고서라도 본부장이 여러분에게 강조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물밑에 흐르는 이해관계 측면에서 말한다면, 그러한 불가능할 것 같은 상상과 또한 그러한 시도를 실행했다는 것에서 나는 일본 리더십의 결단력과 실행력에 점수를 주고 싶고 또 배워야 한다고 본다. 본부장이 말한다. 집중과 아이디어는 노력이 필요하고 이게 되면 실행은 쉽다. 그러면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도 어느 정도 수월하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것은 결단을 하는 것이다. 역사는 이러한 결단의 리더십이 자주 이루어진 사회나 국가에서 위대한 리더가 나오게 되고 그가 만들어 내는 베스트 그룹핑에 의해 지속적인 조직 롤 모델화가 연쇄반응으로 무한 확산되면서 엄청난 도약의 힘을 발휘하는 것을 자주 보여준다. 이러한 리더십의 확대 재생산 현상을 꼭 명심하기 바란다. 따듯한 가족들이 있는 집을 뒤로하고 무시무시한 스페인 전함이 우글대는 대서양의 망망대해로 나갈 때의 프랜시스 드레이크와 그의 선원들의 마음이나 지금 여러분들의 마음이나 모두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기는 매한가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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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우 청년의힘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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