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표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63)는 21일 매일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과정에서 벌어진 정경유착의 배경에는 소유와 경영이 한데 묶인 한국 특유의 재벌체제가 자리잡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최 교수는 이어 "100여년 전 미국 대기업들도 록펠러, 카네기, 벤더빌트 등 설립자 가문이 경영까지 맡는 구조였지만 점차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했다"면서 "점차 자본금 규모가 커지면서 설립자 가문 지분율이 희석되는 과정에서 소유와 경영이 자연스럽게 분리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야권 유력 대선후보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싱크탱크인 '국민성장 정책공간'에서 경제분과위원장을 맡아 문 전 대표의 재벌개혁 구상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설립에도 참여해 공동대표를 지냈고, 공정거래위원회 비상임위원을 지내며 한국 재벌의 문제점을 누구보다도 정확히 간파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 교수는 최근 자신의 재벌개혁구상안을 담은 저서 '경영자혁명'을 발간했다. 문 전 대표 집권 시 재벌개혁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저서에 대한 재계의 관심이 높다.
최 교수가 꼽는 좋은 지배구조는 미국의 제조업체 제너럴일렉트릭(GE) 모델이다. GE의 경우 지배력을 행사하는 주주는 뚜렷하지 않은 대신 소유권이 없는 전문경영인인 잭 웰치 전 회장이 사실상 기업을 지배하며 끊임없이 혁신했고 제프리 이멜트 현 회장을 후계자로 지목하기도 했다. 최 교수는 "기업 규모가 커질 수록 주주구성에서 기관투자자 비중이 커지게 돼 '지배하지 못하는 소유권'이 대세가 된다"면서 "이렇게 되면 주식을 거의 소유하지 않은 제3자가 기업의 실권자로 나서게 되는데, 선진국 기업에선 전문경영인이 이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한국 대기업들이 한단계 도약하기 위해선 오너지배체제에서 탈피해야 한다며, 재벌체제에 대한 견제장치를 강화해 경영능력이 없는 오너 측 인사의 경우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최 교수는 "이사회에서 독립된 감사위원회를 설치해 이사회를 견제하도록 하는 동시에 이사회에 소액주주나 근로자 등 회사의 이해관계자들의 대표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문호를 열어야 한다"면서 "외부견제장치로는 대표소송제를 도입해 경영인의 책임을 무겁게 해야 전문경영인 체제가 뿌리내릴 수 있다"고 진단했다.
최 교수는 '전문경영인의 한계도 분명 존재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경영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면 경영진 자리에 오를 수 없다는 점에서 일단 검증된 인사가 기업을 이끈다는 확실한 장점이 있다"면서 "전문경영인은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투자하지 못할 거란 얘기도 있지만 일본기업들이 반도체 시장에 뛰어드는 의사결정을 내린 것은 바로 전문경영인들이었다"고 반박했다.
최 교수는 한국의 지주회사 체제를 편법적 지배체제로 규정하기도 했다. 그는 "미국처럼 지주회사만 기업공개하고 나머지 자회사와 손자회사들은 100% 지분을 보유하도록 해야 지주회사 체제가 오너일가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는 일을 막을 수 있다"면서 "현행 20%인 상장자회사에 대한 의무소유비율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오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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