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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태극기 부모’를 둔 ‘촛불 자식’은 어떻게 화해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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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다음주의 질문

이제훈 통일외교팀장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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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25일, 대한민국(남)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은 ‘전쟁 중’이다. 다만 전쟁 중이되 교전을 멈춘 상태다. 1953년 7월27일 발효한 ‘유엔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과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 정전에 관한 협정’의 결과다.(대한민국은 이승만 대통령이 북진통일을 주장하며 정전에 반대해 서명 주체로 참여하지 못했다.) 종전협정이 아니다. 정전 상태가 64년째 지속되고 있는 현실을 들어 어떤 국제법학자들은 ‘사실상 종전 상태’라고 한다. 그럼에도 국제법적으로나 국제정치적으로 한반도는 정전 상태다. 남과 북이 남북기본합의서(1991년 12월13일)에 “정전 상태를 남북 사이의 공고한 평화 상태로 전환시키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며 이러한 평화 상태가 이룩될 때까지 군사정전협정을 준수한다”고 합의·명시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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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탄핵반대 연설을 듣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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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은 1991년 9월17일 유엔에 동시·분리 가입한 별개의 주권국가다. 하지만 남과 북은 상호 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남북기본합의서 전문)로 정했다. ‘통일지향 특수관계론’이라 불리는 이 규정은 야누스의 얼굴처럼 양면성이 있다. 첫째, 화해협력의 동반자. 서로를 ‘외국’으로 간주하지 않아 민족내부거래·무관세교역이 가능하며 상호 방문 때 여권을 쓰지 않는다. 둘째, ‘교전 중단 상태의 적’으로서 상호 온전한 정치적 실체 불인정. ‘서로한테 외국이 아니되 두 개의 주권국가’라는 냉전기 동서독의 상호 규정보다 후진적이다. 국내법에서 전자는 남북교류협력법, 후자는 국가보안법으로 표현된다.

장광설의 까닭은 다른 데 있지 않다. 연인원 1300만명이 넘는 국민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고 각종 조사에서 80%를 넘나드는 대통령 탄핵 찬성 여론에도 ‘대통령 탄핵 반대 태극기 집회’에 나선 다수의 장노년층, 22일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 16차 변론에서 대통령 쪽 변호인으로 나서 1시간35분간 ‘필리버스터성 막말 변론’을 펼쳐 포털의 인기 검색어 상위 순위를 휩쓴 김평우(72) 변호사의 존재 같은 ‘난해한 한국 현실’을 살펴 공존의 기반을 다질 실마리를 찾으려는 고민을 포기할 수 없어서다.

서울대 법대를 수석졸업해 대한변호사협회 회장까지 지낸 김 변호사나 탄핵 반대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거리로 나선 수많은 장노년층한테 지금 한국은 ‘내전 중’이다. 과장이 아니다. 덕수궁 대한문 앞 탄핵 반대 집회장에 가면 “군대여 일어나라!”라고 적은 팻말을 쉽게 볼 수 있다. 노골적인 군사쿠데타 호소다. 탄핵 반대 집회 연사로 나서기도 한 김평우 변호사는 22일 변론에서 “헌재가 (탄핵 기각을) 안 해주면 시가전이 생기고 아스팔트가 피로 덮일 것”이라고 말했다. 탄핵 인용 땐 ‘물리력’으로 맞설 이들이 있으리라는 경고다. 둘 다 위헌적인 사실상의 ‘내란 선동’이다. 헌정사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운 ‘친정부 반체제 세력’의 등장이다.

이들은 왜 이렇게 결연할까? 육사 29기 모임 카톡방에 올라왔다는 탄핵 반대 집회 참여 호소 글에 이런 내용이 있다. “지금은 분명히 전시(戰時)에 다름 아니다…촛불에 먹히면 총 한 방 쏘아 보지 못하고 저들(북한-인용자)에게 넘어간다”. 김 변호사는 <탄핵을 탄핵한다> 책에서 대통령 탄핵을 “대한민국 헌법을 김일성의 주체사상으로 바꾸려는 대한민국 뒤집기 반역 운동의 한 과정”이라고 규정했다. ‘촛불·탄핵=종북좌파·반역’이다.

이런 인식이 대한민국 헌정체제나 민주주의 일반원칙에 어긋난다고 비판하려는 게 아니다. ‘3년 전쟁’의 트라우마가 정전 64년째인 2017년에도 어떤 한국인들한테는 ‘너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사생관으로 작동하는 ‘현실’이 중요하다. ‘태극기 부모’와 ‘촛불 자식’은 어떻게 화해·공존할 수 있나? ‘촛불’을 연평도에 떨어진 포탄과 동일시하는 ‘전쟁 난민 트라우마’를 다독일 ‘더 많은 평화’ ‘더 포용적인 평화’가 절실하다. 봄꽃이 산하를 수놓을 무렵 치러지리라 예상되는 대선에 나설 후보들은 ‘더 많은 평화’를 가져올 비전과 정책 수단을 내놓을 수 있을까?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주주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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