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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IFRS보다 무서운 저금리 쇼크, 보험사 구조조정 진앙지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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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금리에 곪아가는 보험사]<1>-②은행에 역전된 보험사 보장금리]

머니투데이

#시중은행 영업점에서 고객에게 보험을 팔 때는 보통 계열 보험사 상품을 권유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신한은행 영업점 직원들은 굳이 신한생명 상품을 권하지 않는다. 최저보증이율이 2.5%가 넘는 다른 생명보험사(이하 생보사) 상품을 적극적으로 판매한다. 신한생명의 최저보증이율은 1%에 불과해 예금과 비교해도 금리 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최저보증이율은 보험사가 무슨 일이 있어도 지급하겠다고 고객에게 약속한 금리다.

이 결과 신한은행에서 판매하는 전체 보험상품 중 신한생명 비중은 13% 수준에 불과하다. 계열 보험사 상품은 전체 판매 비중의 25%를 넘기지 못하도록 한 ‘방카쉬랑스 25%룰’에 따라 대부분의 금융지주 소속 은행들이 계열 보험사 상품을 25%까지 꽉 채워 파는 것과 대조적이다.

신한생명이 신한은행의 판매망을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금융 전문가들은 “리스크 관리를 잘하고 있다”고 호평한다. 단기적인 방카쉬랑스(은행에서 판매하는 보험상품) 실적을 포기하고 장기적인 금리 리스크 관리를 선택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단기 실적에 급급한 일부 생보사 중심으로 고금리 보험상품이 은행에서 팔려나가고 있어 후폭풍이 예상된다. 회계기준이 변경되지 않아도 저금리 기조로 보험사가 고객에게 돌려줘야 할 보험금 부담은 날로 늘고 있다.

지난 9일 이뤄진 기준금리 인하만으로 보험사가 쌓아야 할 부채 부담은 17조~18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2000년대 초반에 연 2% 이하의 저금리 쇼크로 줄파산한 일본 보험사를 뒤따르지 않으려면 국내 보험업계의 총체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례없는 ‘저금리 쇼크’에도 고금리 장사=한국은행이 지난 9일 기준금리를 1.25%로 인하하면서 은행권 정기예금 금리는 1.5% 밑으로 밀려났다. 반면 생보사 보험상품의 공시이율은 2.75%~3.38%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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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보사의 자산운용 수익률이 아직은 공시이율을 웃돌긴 하지만 가파른 초저금리 기조로 공시이율과 자산운용 수익률 간 격차는 줄고 있다. 생보사가 보험료를 굴려 내는 자산운용수익률은 2010년 연 5.88%에서 지난해 말 연 4.0%로 하락했고 올해는 이보다 더 떨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은행과 보험사 금리는 20년 전과 비교해 역전된 상항이다. 은행 정기예금 금리는 20년 전 연 12~13%였고 당시 보험사 공시이율은 연 7.5%였다. 그간 금리가 꾸준히 떨어지면서 만기가 길어야 5년 가량인 은행은 예금 금리를 꾸준히 낮춰왔지만 보험사는 저금리 추세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만기가 20~30년 이상으로 긴데다 저금리를 예측하지 못하고 확정금리 상품을 대거 판매한 탓이다.

생보사의 전체 보험료 적립금 중 연 5% 이상의 확정금리를 약속하고 받은 보험료는 지난해 6월말 기준 31.9%에 달한다. 일부 중소형 생보사는 확정금리형 보험료 비중이 전체의 절반 이상이다. 생보사의 금리역마진 위험액은 지난해 말 2조7070억원으로 치솟았다. 일부 생보사는 아직도 최저보증이율이 연 2.5%가 넘는 고금리 저축성 보험을 판매한다.

금리 역마진 구조는 심화됐으나 지난해 보험사 순익은 6조3000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보험사가 보유한 채권이 금리 하락에 따른 가격 상승으로 평가이익과 처분이익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험사들은 이보다 많은 보험금을 확정금리로 고객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보험사의 사상 최대 실적은 저금리의 역설일 뿐이다.

◇일본 보험사 줄줄이 파산시킨 저금리=이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초저금리를 경험하고 있는 국내 보험사들은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줄파산한 일본 보험사에 대해 연구 중이다. 당시 일본 보험사들을 파산으로 몰고 간 저금리·저성장 환경이 지금 국내 보험사가 처한 상황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일본 보험사들은 10년물 국채 금리가 연 8.9%에 달했던 1980년대에 단체연금과 일시납 저축성보험을 8%대 확정금리로 팔았다가 1990년대 후반에 10년물 국채 금리가 2%대로 추락하면서 대규모 역마진에 직면했다. 확정형 고금리 상품이 아니라도 일본 보험사들은 가파른 저금리 추세에 적응하지 못하고 예정이율이 자산운용 수익률을 지속적으로 밑돌며 자산건전성이 악화됐다. 일본 보험사들의 예정이율은 1988년부터 1998년까지 10년 남짓 동안 6.3%에서 2.8%로 떨어졌는데 같은 기간 자산운용 수익률은 7.1%에서 2.1%로 더 가파르게 미끄러졌다.

일본 생보사들은 자산운용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 해외 부동산 등 대체투자를 무리하게 확대하는 과정에서 자산 부실화가 가속화돼 결국 닛산생명, 도호생명, 다이쇼생명, 도쿄생명 등 8개 생보사가 문을 닫아야 했다.

한 생명보험사 사장은 “방카쉬랑스를 통해 외형 경쟁을 벌이면서 고금리 상품을 팔면 국내 생보사들도 파산한 일본 생보사들의 전례를 따를 수밖에 없다”며 “수익률을 올리려 대체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데 이 역시 근본적인 해법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보험 고유의 보장 기능으로 승부하는 전면적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일본 국채 금리는 만기 40년짜리도 연 1%밖에 되지 않고 만기 10년 미만짜리는 유통 수익률이 마이너스다. 저금리가 장기화하면서 일본 보험사들은 운용 수익률에 집착하기보다 보험 영업이익을 늘리는데 초점을 뒀다. 저축성보험을 대폭 줄이고 보장성보험을 늘리면서 금리 경쟁은 아예 접었다.

금융당국도 건전성 만 감독할 뿐 보험상품 가격에는 개입하지 않는다. 거액의 만기환급금이나 사망보험금을 보장해주는 관행도 사라졌다. 대신 살아있을 때 더 많은 보험금을 지급하는 ‘장수생존연금’ 등을 개발해 고령화 수요를 충족하는 한편 수익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권화순 기자 firesoon@mt.co.kr, 전혜영 기자 mfutur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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