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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국민 부담 10조라는데…구조조정 첫 회의부터 ‘비밀투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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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기재부·한은·산은·금융위·금감원 등

구조조정 3자 처음으로 한자리에

회의 장소 하루 전 갑자기 바꾸고

“도덕적 해이 탓” 내용도 공개 안해

정부, 책임론 부담 ‘국회 우회 전략’

야당 “국회 비공개 논의라도 하라”


해운·조선 등 부실 업종의 구조조정 비용 마련을 위한 ‘국책은행 자본확충 협의체’ 첫 회의가 4일 열렸다. 국민 부담이 많게는 10조원 이상에 이를 것으로 보이나, 정작 이 회의는 장소조차 공개되지 않은 채 밀실에서 진행됐다. 기업 구조조정의 첫 단추를 이런 ‘비밀주의’로 끼운 정부의 행보에 당장 정치권이 발끈하고 나섰다.

최상목 기획재정부 제1차관이 주재한 이날 회의에는 김용범 금융위원회 사무처장, 윤면식 한국은행 부총재보, 양현근 금융감독원 부원장보, 송문선 산업은행 부행장, 신덕용 수출입은행 부행장 등이 참석했다. 자본 수혈을 받는 당사자(산은·수은)와 구조조정 집도의(금융위·금감원), 비용 부담자(기재부·한은) 등 구조조정 3자가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특히 자본확충 방식을 놓고 이견을 보여온 정부와 한은의 고위 당국자가 직접 대면한 것도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기재부는 회의 뒤 낸 보도자료에서 “재정과 중앙은행(한은)이 가진 다양한 정책 수단을 포괄적으로 검토해 가장 효과적인 방안을 강구해 나갈 것”이라는 지극히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을 뿐이다. 세부 방안은 6월 말까지 마련하기로 했다.

김용범 금융위 사무처장은 이날 언론사 경제부장들과의 간담회에서 “우리(금융위)는 시나리오별로 보고를 했다. 이제 (기재부와 한은 등) 각 기관이 검증을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조조정의 범위와 속도, 방식, 금융시장 환경 등을 고려해 시나리오별로 필요한 국책은행 자본확충 규모를 제시했다는 뜻이다.

이날 회의는 철저한 보안 속에 진행됐다. 회의 내용은 물론 장소도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으며, 회의 뒤 주요 내용을 설명하는 기자간담회도 없었다. 하루 전날인 3일 오후까지만 해도 회의 장소는 정부세종청사가 있는 세종특별자치시로 예정돼 있었으나 이날 밤 9시께 갑작스레 서울로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은밀한 첩보작전을 연상케 한다. 기재부 관계자는 “정부가 검토 중인 구조조정 시나리오가 노출되면 대상 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어서 보안에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의 판단에 전문가들은 의구심을 드러낸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는 “정부가 추산하는 (구조조정) 비용이 얼마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비용은 사실상 국민들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라며 “국민들의 이해와 동의가 필요한 상황에서 지나친 비밀주의는 자칫 구조조정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흔들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에선 정부가 비밀주의를 내세운 속내가 국회를 우회해 구조조정을 추진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시각도 팽배하다. 그동안 정부는 구조조정의 시급성 등을 이유로 정공법인 추가경정(추경) 예산 편성을 통한 자본확충을 애써 피하려는 행보를 보여왔다. 추경은 국회 동의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부상할 정부 책임론에 부담을 느껴서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 정부가 무게를 싣고 있는 자본확충 방안은 국회 동의가 필요 없는 국유재산의 현물 출자나 한국은행의 ‘조건부 자본증권’(코코본드) 인수다.

이런 정부의 국회 우회 전략이 계속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기업 구조조정의 필요성에 대한 원칙적인 동의만 표한 뒤 추진 방식 등에 대해선 입을 다물던 야당이 정부 행태에 제동을 걸고 나섰기 때문이다. 김성식 국민의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당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정부가 할 일을 하지 않으면서 우회로만 계속 찾으려 한다면 국민적 저항에 부딪치게 될 것”이라며 “필요하다면 국회에서 비공개 논의라도 선행해서 (기업 구조조정) 진단에 은폐된 것은 없는 것인지 시행상 우선순위나 부작용은 없는지 반드시 점검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락 송경화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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