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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MB 때부터 미룬 구조조정 … 옥포조선 수주 1척, 동부제철 스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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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당진·울산·부산 현장 가보니

거제 근로자 1만2000명 해고 위기

축구장 37배 동부제철 3년째 멈춰

부산신항 야적장 빈 컨테이너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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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제시의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선 4번 도크가 텅 비어 있다. [거제=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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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거제도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거대한 구조물과 크레인 사이로 빈 도크가 보였다. 옥포조선소 4번 도크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대우조선해양은 3년치 일감을 쌓아두고 일했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수주잔량이 줄곧 내리막이다. 물론 대부분의 도크는 예전에 수주한 해양플랜트나 선박 구조물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조만간 4번 도크 신세다. 대우조선해양은 총 18기의 해양플랜트 수주잔량 중 올해에만 9기를 인도한다. 그러나 도크를 다시 채울 신규 수주 소식은 뜸하다. 지난 13일 5개월 만에 첫 수주에 성공했지만 영업으로 따온 계약이 아니라 해외 자회사의 물량을 이관하는 방식의 고육지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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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 중인 프로젝트가 인도되고 나면 근로자 대량 감축이 불가피하다. 대우조선은 2019년까지 외부 인력 포함 1만2000명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현재 대우조선의 총 근로자 수(4만2000명)의 30%에 해당한다. 대우조선해양의 현시한 노조위원장은 7일 “지난 한 해 거제에서만 40개가 넘는 조선 관련 중소기업이 폐업했고, 올해 3월까지도 수십 개의 업체가 문을 닫았다. 이대로라면 최대 2만 명이 해고될 수 있다”며 거제시를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해달라고 촉구했다.

이날 오후 옥포항 인근에선 대우조선해양 하청 근로자들이 소주병을 기울이고 있었다. 대규모 감원 소문에 소주 말고는 마음 달랠 길이 없다며 잔을 채웠다. 자신을 ‘거친 사람’이라고 표현한 한 근로자는 “2만 명이 해고되면 폭동이 일어나지 말란 법 있나. 이러나저러나 힘들긴 마찬가지이니 확 뒤집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라며 흥분했다.

| 좀비기업 1년 새 4배 이상 늘어나

조선·철강·에너지 업종에 집중

아무리 투자해봤자 적자만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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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당진시 동부제철 열연공장에서 지난 12일 직원들이 가동을 중단해 불이 꺼진 전기로 주변을 순찰하고 있다. [당진=프리랜서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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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우조선해양에는 이른바 ‘좀비 기업’이란 불명예스러운 수식어가 붙는다. 좀비 기업은 ‘한계 기업’ 상태가 3년 연속 유지되는 기업을 말한다. 대출로 대출을 갚으며 좀비처럼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는 의미다.

좀비 기업 수는 최근 급격히 늘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2014년 1678개 비금융 상장사 중 좀비 기업(258개)은 2013년(58개사)보다 4배 이상 늘었다. 특히 조선업은 좀비 기업이 가장 많은 업종 중 하나다. 2014년 기준 조선업종 상장사 중 34.6%가 만성적 한계 기업(좀비 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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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에너지 업종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철강·에너지 상장사 중 좀비 기업은 25%에 달한다. 증산 경쟁으로 생산은 늘었지만 가격 덤핑 때문에 돈을 벌지 못해서다. 실제로 지난해 우리나라 철강 수출량은 2939만3665t으로 4년 전보다 180만t 가까이 늘었지만, 수출금액은 되레 52억2232만 달러가 줄었다. 더 많이 팔았는데 이문은 오히려 줄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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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동부제철 공장 인근의 상가는 점심시간 에도 인적이 드물 정도로 지역경제가 가라앉았다. [당진=프리랜서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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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제철은 축구장 37개(26만4463㎡) 규모의 충남 당진의 열연공장을 3년 동안이나 멈춰 세웠다. 열연강판 가격이 워낙 하락해 제품을 팔수록 적자가 나기 때문이다.

좀비 기업이 많은 업종이 대한민국 산업의 주력 업종이라는 점에서 위기의 강도가 세진다. 2009년부터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해운업이 선박 발주를 줄이면 조선업이 직접적 타격을 받는다. 선박 건조량이 줄면 조선용 후판 가격이 떨어진다. 철강업계 침체는 스크랩(고철) 수요 감소로 이어져 고철 가공업체 등도 줄줄이 실적이 감소한다. 수출입 물동량의 99%를 차지하는 해운업은 물류업·항만업 등에도 파급력이 크다.

포항공대 산업경영공학과 전치혁 교수는 “노동집약적 산업인 조선·철강업 등이 경영·생산 효율을 높이지 않으면 고구마 줄기처럼 엮인 국내 주요 산업 체인이 줄줄이 무너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전방산업인 해운업도 어두운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지난 12일 방문한 부산신항 야적장에 빈 컨테이너가 가득했다. 부산신항터미널 관계자는 “경기가 좋을 땐 물건을 가득 채운 컨테이너가 가득하지만, 지금처럼 운임이 바닥을 뚫고 지하실로 들어가면 빈 컨테이너만 쌓여갈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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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상황이 어렵게 된 데엔 이명박 정부 이후 구조조정을 소홀히 한 탓이 크다. 구조조정의 고통을 꺼려해 채찍보다는 당근책을 더 많이 썼던 것이다. 따라서 향후 구조조정에선 특정 산업과 기업이 일시적 유동성 부족 사태를 겪고 있는 것인지, 구조적인 부진에 빠졌는지에 따라 대응이 달라져야 한다. 산업은행의 정용석 구조조정부문장은 “부실기업이라고 하더라도 산업 성장성이 크고 국민 경제적 중요성이 높다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재무적 지원과 자원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영욱 한국금융연구원 상근자문위원은 “저성장이 고착화된 뉴노멀 시대엔 좀비 기업이 부실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보다 선택적으로 금융 지원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거제·울산·부산·당진=문희철·김유경 기자 reporter@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문희철.김유경.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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