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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원희복의 인물탐구]민중연합당 공동대표 손솔 청년·연대·진보정치 실천하는 21살 ‘당찬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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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월 27일 창당대회에서 손솔 공동대표가 함세웅 신부와 함께 ‘세상을 바꾸자’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 이상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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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4·13 총선 국면에서 극과 극이 연출되는 장면이 있다. 한 정당은 나이 일흔여섯 된 분이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초빙돼서 스스로 비례대표를 공천하는 셀프 공천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또 다른 한 정당은 올해 나이 만 스물하나로 피선거권이 없어 국회의원 출마 자체가 안 되는 젊은이가 정당 대표로 뛰고 있다.

정당 대표가 젊다고 ‘그렇고 그런 당’이 아니다. 이번 총선에서 가장 많은 지역에 후보를 낸 정당은 새누리당으로, 248개 지역구다. 그리고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이 235개 지역구, 다음은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한 국민의당이 173개 지역에 공천했다.(이도 연대를 이유로 속속 후보가 사퇴하고 있다)

그 다음 정당은 어디일까.

바로 민중연합당이다. 민중연합당은 2월 27일 창당, 창당 1개월 만에 지역구에만 56명을 출마시켰다. 이는 원내 5명(지역 1명, 비례 4명)의 정의당 지역구 출마자 53명보다 많다. 오랜 역사와 세계적 연대까지 가진 녹색당도 이번 총선에 5명밖에 출마시키지 못했다. 출마자 정당 기탁금이 1500만원이나 한다는 점에서 웬만한 저력 혹은 열의 아니면 출마 자체가 어렵다.

정당 비례 번호가 16번이지만 총선 지역출마자 규모만 놓고 보면 민중연합당은 당당한 제4당이다. 창당 한 달 만에 이런 저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의외로 사람들은 잘 모른다. 기성 언론이 아예 무시하거나 ‘민중’ 자에 겁을 먹었기 때문일까.

민중연합당은 ‘1%의 기성정치에 맞서는 99%의 직접 정치’를 모토로 삼고 있다. 그래서 구호도 ‘99% 민중이 만드는 새로운 진보정당’을 표방하고 있다. 민중연합당은 또 ‘자주와 평화를 되살릴 정당’을 추구하고 있다.

민중연합당은 특이하게 3개 조직이 연합, 3인 공동대표 체제로 이뤄져 있다. 노동자당은 강승철 전 민주노총 사무총장, 농민당은 이광석 전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등 쟁쟁한 인물이 대표를 맡고 있다. 그리고 청년들의 ‘흙수저당’은 손솔씨가 대표다.

이렇게 자율적으로 활동하는 오픈 플랫폼을 통한 당내 당 형태는 한국 정당사상 첫 시도다. 이들은 이런 형태가 자유로운 개인들의 수평적 연대라는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손솔 공동대표는 올해 21세의 이화여대 총학생회장 출신이다. 아마 피선거거권이 없는 정당대표는 헌정사상 처음일 것이다. 그는 헌법재판소에 ‘25세 피선거권 제한은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손 공동대표는 청년들이 직접 정치에 뛰어든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총학생회장을 마치고 주변과 논의하다 기성 정당들의 ‘청년팔이’에 분노했다.(각 정당은 청년비례를 배정한다고 약속했지만, 거액의 경선비용을 받고 형식적으로 끝났다. 제1야당조차 청년후보 선발이 파행으로 끝났다) 2월 2일 103명이 ‘흙수저당을 만들자’고 발기해 현재 1300여명의 당원을 모았다. 모두 한 달 3000원 이상 당비를 내는 진성당원들로, 앞으로 매달 당비를 최저 시급인 6030원으로 할 예정이다.”

손 공동대표와 노동자당, 농민당이 합세해 한 달 만에 3만명이 넘는 진성당원을 확보할 수 있던 배경에 대해 “청년들이 비정규직으로 살면서 겪었던 본인들의 체험을 ‘직접 참여해 바꿔야 한다’는 절박감으로 표출한 것”이라며 “이 분들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결혼준비 자금을 아껴 출마자금을 마련했다”고 말했다.(그 중에는 모친이 물려준 재산이 8900만원이 있는 후보도 있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흙수저라는 단어가 너무 자조적이지 않으냐는 질문에 손 공동대표는 “요즘 청년들이 일반적으로 많이 쓰는 말이라 사용했다”면서 “당 이름은 처절한 현실 인식에서 변화를 만들어 가는 자극제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민중연합당에는 곧 창당할 ‘엄마당’도 합류할 예정이어서 앞으로도 실제 생활과 밀접한 정당 플랫폼이 계속 연합하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한다.

민중연합당 출마자 56명 중 청년후보가 19명(1명 비례)이다. 이들은 대부분 지역 대학총학생회장 출신이거나 지역 청년회, 청년네트워크에서 활동했다. 따라서 민중연합당은 ‘청년당’이라고 할 만큼 매우 젊다. 이들은 대부분 아르바이트와 비정규직 등 현 청년문제에 대해 누구보다 절감하던 ‘흙수저’들이다. 청년비례 1번에는 위안부 소녀상 지킴이 정수연씨가 선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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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7일 창당대회에서 손솔 공동대표가 단상에서 발언하고 있다. / 이상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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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마 기탁금 1500만 원 적은 돈이 아니다.

“그렇다. 등록금 세 번 낼 수 있는 돈이다.”

후보만 많이 낸다고 성공적인 것은 물론 아니다. 이번 총선에서 목표는 몇 석인가.

“몇 석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우리의 목표는 우경화된 국회에 진정한 진보정당의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지금 박근혜 정권을 제대로 심판할 수 있는 정당도, 자주와 평화를 얘기하는 정당도 없다. 새로운 진보정당이 국회에 진출하는 것은 앞으로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 등에서 큰 영향을 줄 것이다.”

기존 진보·이념 정당(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등)과 연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더불어민주당과도 연대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과거 진보정당의 역사를 보면 통합과정에서 어려움과 실망감이 많았다. 그래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통합의 길이 아닌 연대의 길을 가자는 것이다. 당명에 연합을 표방한 것도 그런 이유다. 우리는 이번 총선에서 시민혁명당, 원탁회의 등에도 참여해 연대 논의를 하고 있다. 우리는 총선 이후에도 계속 연대의 길을 가려고 한다.”

민중연합당 총선 공약을 보면 등록금 100 만원 상한제, 결혼 시 학자금대출 부채 탕감, 0~14세 병원비 국가책임제 등 청년과 신혼부부를 위한 공약이 많다. 여야 모두 총선 어젠다로 ‘경제’를 꼽지만 민중연합당은 ‘청년의 참담한 경제적 실태’가 주요 어젠다다. 정부는 반값 등록금을 실현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뻥튀기다. 소득수준별 차등 지급하기 때문에 학생의 절반가량은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다.

“당에서 자체적으로 공약에 대한 선호 조사를 했는데, 나이 불문하고 등록금 100만원 상한제에 가장 관심이 높았다. 또 고등학교·대학교 졸업자 중 직장을 얻지 못한 미취업자 32만명에게 연간 400만원의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공약도 선호도가 높았다. 이 실업급여 예산은 1조3000억원밖에 안 된다. 현재 정부는 실효성 없는 청년실업 예산으로 2조원 넘게 쓰고 있다.”

이른바 보수언론에서는 민중연합당을 과거 통합진보당 재건이라고 보도했다. 마침 해당 기사를 쓴 신문사 기자가 대학선배였다. 이에 손 공동대표는 ‘선배님, 왜곡과 선입견으로 기사를 쓰고, 낙인찍기와 배제를 하지 말라’고 공개 정정보도를 요청했고, 해당 신문은 이를 모두 정정했다.

그는 민주연합당에 대해 “통합진보당 재건, 부활이라는 프레임을 덧씌우는 것은 잘못”이라며 “우리는 직접 정치·연합정치라는 과거에 없던 새로운 정치,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손 공동대표는 또 “과거 통합진보당을 했다는 이유로 그들을 배제하는 것은 진보정치를 꿈꾸는 사람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반도 평화문제에 대해서도 “중국이 제안한 비핵화 평화협정, 즉 남북과 중국·미국이 종전 선언과 동시에 비핵화를 추진해야 우리나라에서 평화를 만들 수 있다”면서 “중국과 미국도 북한과 대화를 추진하는데, 박근혜 정권 혼자 대북 강경책을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손 공동대표는 둥글둥글한 외모에 잘 웃지만 청년·연대·진보로 똘똘 뭉친 ‘당찬 여성’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이는 청년비례 1석을 얻기 위해 목을 빼고 기다리거나, 청년끼리 이전투구를 벌이는 기성정당 청년정치 지망생과 차원이 달라 보인다. 지금이 1980년대라면 막강한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의 여성 의장은 충분히 하고도 남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손 공동대표는 전남 영광 출신으로, 영광 중앙초·해룡고를 나와 2012년 이화여대에 입학했다. 부모님은 고향에서 소를 키우며 농기계를 파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는 “고등학교 때까지 반장 한 번 해본 적 없을 정도로 나서기를 꺼려했던 조용한 학생이었다”면서 “중학교 때 어머니와 함께 광우병 시위에 참석했는데, 어머니가 ‘여기 나와 촛불을 든 이유를 기억하라’는 말씀에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그를 ‘의식화’시킨 주인공은 어머니인 셈이다.

그는 대학에 들어와 총학생회 활동을 하다가 국가정보원 댓글 선거개입에 충격을 받았다. 그는 열심히 규탄집회에 참여하고 국정원 개혁 서명작업을 벌였다. 2학년 때에는 세월호 참사와 국정교과서 문제에 항의하는 집회에 열심히 참여하자 선배들이 ‘잘한다’고 격려했다. 그는 “더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3학년 때 ‘해방이화’라는 공약으로 총학생회장에 출마했다”고 말했다.

91%의 지지율로 총학생회장이 된 그는 등록금과 대학 구조조정 문제는 등 학내 문제는 물론, 세월호 추모대회와 민주노총 파업 등 시국 문제에 적극 의사를 표시했다.

그가 이대 총학생회장으로 ‘이름’을 알린 사건은 바로 박근혜 대통령 이대 방문 반대 시위다. 지난해 10월 29일 한국여성단체협의회가 ‘제50회 전국여성대회’를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었다. 그는 이 대회에 참석하려는 박 대통령의 학내 출입을 막고 나섰다. 학생들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청년들을 더욱 궁지로 모는 노동개악, 대학의 가치를 훼손하는 대학구조개혁 등 국민들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대통령을 환영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수십 명에서 시작된 시위는 수백 명으로 늘면서 사복경찰이 대거 투입돼 학생들을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학생들이 다치고, 결국 박 대통령은 늦게 후문을 통해 대강당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모처럼 시국문제를 놓고 벌어진 여대에서의 시위, 그것도 대통령을 향한 시위대와의 충돌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게다가 그는 15일간 단식투쟁을 할 정도로 ‘강성 총학생회장’이다. 그는 “학내 6개 요구안을 걸고 단식투쟁을 하는데, 대학 총장이 ‘교육부 지침으로 어쩔 수 없다’고 하는 말을 듣고 ‘정부·정치가 대학의 과 하나를 폐지하는 데까지 영향을 미치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가 막연하게 정치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이것이 계기였다. 총학생회장을 마친 그는 이번 총선에서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휴학하고, 당을 만들면서 결국 지금의 민중연합당 공동대표까지 왔다.

지금 이렇게 정치 일선에서 뛰고 있는데 ‘고향에 계신 부모님은 뭐라고 하시냐’는 정말 ‘노인네 같은’ 질문을 던졌다. 이 질문에 그는 “처음에는 ‘네가 무슨 정치를 안다고’ 했는데, 요즘에는 ‘열심히 선거운동하고 있다’며 적극 후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당부했다.

“청년이 정치에 진입하기 너무 어렵다. 그것은 청년이 자조적이고 무기력해서가 아니라 정치제도가 그렇게 조장하고 있다. 내가 피선거권이 없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우리 청년이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은 특이한 것이 아니라 일상이 돼야 한다. 청년이 청년의 얘기를 하는 정당을 만들고 싶다. 국민들도 이런 취지를 이해하고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

<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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