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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검사들이 본 영화 ‘검사외전’과 ‘내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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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뉴스 AS] 검사 나온 영화들 ‘사실과 허구’, 그런데 말입니다

한겨레

영화 검사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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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 실화래.”

영화 <내부자>들의 엔딩크레딧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서던 한 검사는 뒷자리에 앉았던 관객의 말이 귀에 꽂혔습니다. 그 순간 씁쓸함과 동시에 억울한 감정이 밀려왔다고 합니다.

검사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들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내부자들은 감독판인 디오리지널을 포함해 ‘19금’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9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불러 모았습니다. <검사외전> 역시 960여만명을 스크린 앞에 앉혔습니다. 이들 중에는 당연히 ‘검사 관객’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검사 관객들은 통쾌함을 느끼는 일반 관객들과 달리 영화를 보고 나온 뒷맛이 개운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내부자들>을 본 한 검사는 “주인공인 검사가 악역으로 나오는 건 아니지만, 검찰 자체가 대기업 총수나 정치인, 언론사 고위 간부 등 권력자들과 한통속처럼 보이는 점이 불편했다”고 합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평가받는 접대 장면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연루됐다고 의심받는 ‘별장 성접대 사건’이나 건설업자가 검사들에게 향응을 제공한 ‘스폰서 검사’ 사건을 연상시키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검사외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에서 우종길(이성민) 차장검사는 재벌과 손잡고 후배인 변재욱(황정민) 검사에게 살인누명을 씌웁니다. 이 영화는 수원지검을 배경으로 합니다. 이 때문에 수원지검에서는 최근 검찰 내부게시판인 ‘이프로스’에 ‘검찰이 본 <검사외전> 알고 보면 더 재밌다’라는 제목의 카드뉴스를 만들어 올렸습니다. 카드뉴스 내용을 보면, 영화에서는 검사를 사칭하는 사기꾼 한치원(강동원)이 검찰청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장면이 나오는데, 검찰청은 사전출입등록을 하지 않으면 출입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또 변재욱 검사의 소속이 영화에서는 특별수사과로 나오지만 수원지검에는 특별수사과가 없고 특별수사부가 있다는 내용도 카드뉴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밖에도 영화에는 사실과 다른 ‘디테일’들이 여럿 있습니다.

검찰이 권력자들과 한통속 그려진 점 불편
일선 검사 “바빠서 나쁜짓 할 시간이 없다”
대형사건 맡으면 새벽5시 퇴근, 아침8시 출근

하지만 국민들이 통쾌해하는 이유는 있다
권력 입맛 맞지 않는 수사검사에 가혹하고
재벌 유착 스폰서 검사 의혹 등 끊이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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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부자들’ 검사 우장훈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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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자들>의 경우 주인공인 우장훈(조승우) 검사가 서울중앙지검에서 비자금 사건을 수사하다가 지역의 검찰청으로 좌천을 당하고 사건은 종결됩니다. 그리고 지역 검찰청에서 비자금 수사를 다시 시작합니다. 하지만 검찰에서 사건을 검사 개인이 가지고 다니지 않습니다. 인사 발령이 나면 그 사건은 해당 부서에 남아 있지 검사가 새로 발령난 곳으로 들고 갈 수는 없습니다. 또 <검사외전>에서 변재욱 검사 사건 재심의 증인 신청을 위해 사기꾼인 한치원이 부장검사의 사인을 위조하려고 연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지만 증인의 경우 검찰뿐 아니라 피고인 쪽도 법원에 신청할 수 있기 때문에 이같은 노력은 불필요한 일입니다.

고개를 끄덕일 만한 재미있는 디테일도 있습니다. 가령 <검사외전>에서 한치원이 검사를 사칭하며 양민우(박성웅) 검사에게 자신이 휘문고 출신이라고 소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말을 듣고 양민우 검사는 한치원을 무척 반가워 합니다. 실제로 최근 검찰 내에서 휘문고를 비롯한 이른바 서울 ‘강남 8학군’ 출신들이 검찰 중간 간부로 두드러진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검사 숫자가 2000여명 밖에 되지 않아 검사들이 고등학교 동문 정도는 서로 알고 있기 때문에 이같은 장면이 현실적이진 않지만 재미있는 포인트이긴 합니다.

사실 ‘허구’로 만들어진 영화가 모든 부분에서 현실과 일치할 수는 없습니다. 검사들도 이런 점은 인정합니다. 다만 검사 관객들이 불편해 하는 이유는 두 영화가 검사를 권력지향적이고 음험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범죄도 불사하는 모습으로 그리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 검사는 “나쁜 일을 하려고 해도 바빠서 할 시간이 없다”고 말합니다. 보통 검찰은 고소·고발 사건을 담당하는 형사부, 대형 부패·비리 사건 등을 전담하는 특수부, 대공 사건을 주로 맡는 공안부 등으로 나뉩니다. 지방검찰청 중 가장 큰 서울중앙지검의 경우만 보면 형사부 검사들은 한달에 고소·고발 사건 수백건을 처리해야 합니다. 특히 월말이 되면 미제 사건을 남기지 않기 위해 하루종일 사건 처리에 몰두해야 합니다. 특수부 검사들의 경우 대형 사건을 맡으면 주말도 없이 일을 해야 합니다. 한 특수부 검사는 수개월동안 새벽 5시 퇴근, 아침 8시 출근이 일상이었다고 합니다. 공안부 검사의 경우에는 요즘처럼 총선 등 선거를 앞둔 때에 무척 바빠집니다. 선거 수사를 전담하기 때문에 총선이나 대선 등 굵직한 선거 때는 항상 비상상황입니다. 특히 공직선거법의 경우 공소시효가 6개월로 무척 짧습니다. 이 때문에 수많은 선거 사건을 정해진 시간 안에 기소해야 하는 스트레스도 상당합니다. 그래서 큰 선거가 끝나고 6개월째 되는 날에는 어김없이 공안부 검사들의 회식 자리가 열리곤 합니다. 평소에 과도한 업무에 치여 사는 검사 관객들이 두 영화를 보고 느끼는 억울함에는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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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여주지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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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부자들>과 <검사외전>에 나오는 장면들이 설득력을 가지는 이유도 분명히 있습니다. 첫째로 공정해야 할 검찰이 권력의 편에 서 온 일이 너무 잦았다는 것입니다. 검찰은 수사 실패보다 권력의 입맛에 맞지 않는 수사를 한 검사에게 더 가혹한 대우를 하곤 합니다. 가깝게는 국가정보원 대선 여론 조작 사건의 수사팀장을 맡은 윤석열 대전고검 검사와 부팀장을 맡았던 박형철 변호사의 사례가 있습니다. 윤석열 검사는 여러 외압에도 국정원 사건 수사를 이끌어 나가다가 국정원 직원을 보고 없이 체포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고 검찰 내에서 한직으로 분류되는 고검으로 좌천돼 3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박형철 변호사의 경우 3년째 지역 고검으로 인사발령이 나자 최근 검사옷을 벗고 변호사 일을 시작했습니다. 과거에도 이같은 사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사건을 수사하면서 검찰 지휘부의 뜻과 달리 김인종 전 청와대 경호처장을 배임 혐의로 기소해야 한다고 버틴 것으로 알려진 백방준 전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 역시 승진을 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검찰은 결국 내곡동 사저 사건의 관련자들을 모두 무혐의 처분했습니다. 하지만 그 뒤 특검이 꾸려졌고, 김인종 전 경호처장은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그리고 김 전 처장은 대법원에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확정받았습니다. 애초부터 기소를 했어야 하는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전국 지방검찰청의 선임부장으로 승진이 유력한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을 맡았던 백방준 전 부장검사는 정당한 주장을 하고도 결국 검사장 승진을 못했습니다. 반면에 이명박 정부 시절 경제 위기가 온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던 논객 ‘미네르바’를 구속 수사하거나 미국산 소고기의 문제점을 보도한 <문화방송>(MBC)의 피디수첩 제작진을 수사한 검사들은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미네르바와 피디수첩 제작진들이 모두 법원에서 무죄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둘째로 별장 성접대, 스폰서 검사, 삼성 떡값 검사 의혹 등 검사가 지역 유지 또는 재벌들과 유착한 것으로 의심되는 일이 계속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내부자들>이나 <검사외전>은 이같은 검찰의 ‘흑역사’를 바탕으로 여러 장면을 재구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과장이 있을 수는 있지만 전혀 없었던 일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한 검사는 “영화를 보면 억울한 점이 하나둘이 아니다. 하지만 검찰에 여러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니까 인과응보라고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다만 모든 검사가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권력욕의 화신이거나 범죄도 서슴없이 저지르는 사람들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습니다.

두 영화가 그린 검사와 검찰 조직의 모습을 보면 검사 개개인은 억울해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국민들이 검찰 조직의 억울함까지 이해하긴 어려워 보입니다. 스스로 자초한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용기있는 검사 한 명이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고군분투하다 결국 권력의 힘에 수사가 가로막히는 영화가 아니라, 검찰 조직이 거대 권력에 맞서는 검사를 끝까지 보호하고 독려하는 영화를 보려면 검찰 스스로 더 공정하고 신뢰받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야 즐거운 마음으로 영화를 보러 갔다가 무거운 마음으로 관객석에서 일어나야 하는 억울한 검사 관객들도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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