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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댓글부대’ 김흥기, 중국 빅데이터 전문센터와 계약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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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평 규모 K룸 ‘빅브라더’ 진실규명 경찰수사에 달렸다



‘댓글부대’로 의심받는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 수출정보사업 용역은 단순한 국고보조금 횡령사건으로 막을 내릴 것인가. 국정원 출신의 김흥기 전 카이스트 겸직교수가 지난해 12월 용역업체 회장으로 영입된 사실이 밝혀지면서 KTL 용역팀의 정체에 대해 온갖 의혹이 제기돼 왔지만 경찰 수사는 예상했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0월 국회 산업자원위 국정감사에서도 야당의원들이 용역사업 전반에 걸친 ‘국정원 개입’ 의혹을 제기했으나 현재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의 수사는 예산 횡령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전 교수는 일찌감치 “나는 단순 무보수 명예회장에 불과할 뿐 용역사업과 아무 상관이 없고, 경찰 수사에서도 무관함이 밝혀질 것”이라고 호언한 바 있다. 현재 흐름대로라면 그의 호언은 맞아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그는 아예 경찰 수사대상에도 오르지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경찰 수사가 단순 횡령사건으로 끝나더라도 KTL ‘댓글부대’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 기회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주간경향> 보도에 불만을 제기한 김 전 교수가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경향신문>은 그를 서울중앙지검에 사기죄로 고소한 상태다. 김 전 교수가 경찰 수사에서 면죄부를 받더라도 민·형사소송이 진행되는 한 그를 둘러싼 의혹은 사법적 심판을 받을 기회가 여전히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특히 <경향신문>은 김 전 교수의 중국과학원 이름을 도용한 가짜수료증 장사(<주간경향> 1150호) 보도와 관련해 명예훼손 소송을 준비하면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댓글부대’로 의심되는 KTL 용역사업과 중국과학원의 교류가 사이버 여론조작을 위한 시스템 구축 차원에서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을 가능성이 포착된 것이다.

경향신문

김흥기 전 교수가 11월 4일 기자회견에서 서울의 중국과학원 최고위과정이 적법한 계약에 따라 이뤄져 왔다고 주장하면서 가상경제센터 쓰용 교수와 찍은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 이상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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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경제센터와의 계약서 왜 공개 않나

김 전 교수 주장에 따르면 2013년 9월 서울 강남에 설립한 중국과학원 지식재산 최고위과정은 중국과학원 가상경제센터 및 데이터과학센터(가상경제센터)와의 계약에 따라 운영됐다. 문제는 그가 “적법한 계약을 체결했다”고 주장만 할 뿐 계약서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도대체 왜 그는 계약서를 공개하지 못할까. 계약서 안에 외부에 공개하지 못할 내용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주간경향>은 이 같은 의문을 풀기 위해 취재를 하던 중 중국과학원 가상경제센터가 개인정보를 활용한 빅데이터 연구에서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기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빅데이터는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누가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느냐에 유용한 도구가 될 수도 있지만, 개인의 사생활과 의식을 통제하는 ‘빅브라더’로 악용될 수도 있다.

중국과학원 가상경제센터는 2004년 중국에서 최초로 빅데이터 전문연구기관으로 설립된 후 10여년간 금융시장, 공공행정 분야를 중심으로 엄청난 데이터 수집·가공·분석작업을 축적해 왔다. 그 결과 현재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빅데이터를 이용한 다양한 실험적 연구가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는 곳으로 꼽힌다. 2007년에는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인 청쓰워이 교수가 주임으로 임명되고, 3000만 위안(54억원)이 넘는 연구비가 지원될 만큼 중국 정부에서도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기관이다.

가상경제센터가 빅데이터 연구에 있어 탁월한 업적을 쌓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13억 중국 인구로 상징되는 엄청난 데이터 양에 있다. 가상경제센터는 고객 수 6억5000만명의 중국인민은행(PBC) 등 엄청난 개인정보를 보유한 회사들과 오랫동안 공동연구를 진행해 왔다. 이를 통해 가상경제센터는 빅데이터 연구에 있어 다른 어떤 나라도 따라오기 힘든 분석기법과 다양한 활용방법 등 노하우를 축적해 왔다.

김 전 교수와 운영계약을 체결한 쓰용 부원장 역시 빅데이터 연구의 권위자다. 이 분야에서만 20권의 책과 200편이 넘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의 전공은 비즈니스 인텔리전스(business intelligence)와 데이터마이닝(data mining)이다. 데이터를 수집·보관하고, 데이터에 안에 숨겨진 관계를 분석해 미래 실행가능한 정보를 추출함으로써 신속한 의사결정에 도움을 주는 것이 그의 관심 분야다.

그가 어떤 목적으로 김 전 교수와 계약을 체결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빅데이터 연구에 대해 기업과 정부기관뿐 아니라 실시간 유권자 여론 동향 탐지에 사활이 걸린 정치인들도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부분이다. 실제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012년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한 이유를 빅데이터 분석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오바마가 대선 2년 전부터 선거캠프에 빅데이터팀을 설치하고, 상업용과 공공데이터에 수록된 개인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미 공지의 사실이다. 유권자 개개인별 맞춤형 선거전략을 수립하는 데 빅데이터의 유용성이 확인되면서 이제 빅데이터 분석을 빼놓고는 선거전략 수립을 얘기하기 힘든 시대로 가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 10월 한 단체에서 주관한 포럼에서 ‘빅데이터와 선거’라는 제목으로 주제 발표가 이뤄지기도 했다.

언론에서 공개하면 안 될 내용이란 뭘까

문제는 2012년 이후 벤처기업을 접고 부동산 임대와 강연사업에 주력하는 김 전 교수가 왜 빅데이터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가상경제센터와 운영계약을 맺었을까 하는 것이다. 더구나 김 전 교수는 단순 교류 차원을 넘어 가상경제센터와 정식으로 운영계약을 체결하고 수수료까지 보냈다고 주장했다. 수수료 액수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4기에 걸쳐 중국과학원 최고위과정을 운영하면서 1인당 교육비가 600만원으로 책정됐음에도 김 전 교수는 오히려 손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대로 실제 수강료가 350만원이고, 총 수강생 106명 중 54명만 수강료를 납부했다 하더라도 2억원 가까운 돈이 들어온 것이다. 반면 뭉칫돈이 들어갔을 만한 지출 항목은 보이지 않는다. 강의장은 발명진흥회에서 무료로 제공했고 강사료도 많지 않았다. 정길생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이사장도 100만원밖에 받지 못했다고 했고, 정운찬 전 총리는 “강사료가 매우 짰다”고 했다. 그런데도 손해가 났다면 수수료 부담이 적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 전 교수가 최고위과정을 운영하면서 딱히 가상경제센터로부터 도움을 받은 것은 잘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쓰용 교수가 입학식과 수료식 때 간간이 참석했으나 4기에 걸쳐 13주 강의가 이뤄지는 동안 단 한 강좌도 가상경제센터에서 맡은 게 없다. 13주 과정 중 가상경제센터를 방문한 현지교육이 있긴 하지만 반나절 기간 짧은 강의식 토론과 두 군데 시설을 둘러보는 게 전부였다. 현지교육 비용은 1인당 80만원씩 따로 받았다.

이래저래 김 전 교수가 거액의 수수료를 지급하고 가상경제센터와 계약을 체결한 것은 뭔가 다른 목적이 있을 것으로 의심하기에 충분한 대목이다. 하지만 김 전 교수는 극구 계약서를 공개하길 꺼리고 있다. 그는 <경향신문>을 상대로 한 명예훼손 소장에서 “애초에 쓰용 교수도 계약서를 노출해도 좋다고 했으나 언론사에 전해져 그것이 기사화되는 것을 알고 난색을 표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쓰용 교수의 증언방법에 대해서도 “증인신청하면 제일 좋으나 주중 한국영사관 인증을 통한 진술서로 대체할 계획”이라고 했다.

도대체 언론에서 기사화되면 안 될 내용이란 무엇일까. 단지 최고위과정 운영계약이라면 계약서를 이렇게 감추고 비공개로 보여주겠다고 할 필요가 있을까. 김 전 교수의 석연찮은 태도를 둘러싼 의혹은 계속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특히 최고위과정과 가상경제센터는 별다른 상관관계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가상경제센터의 주요 연구분야인 빅데이터와의 연관성을 찾는다면 ‘댓글부대’로 의심받는 용역업체 그린미디어가 구축을 시도한 GIMS(Global intelligence Management Strategy) 프로그램이 더 가깝다. 그린미디어가 지난 1월 KTL에 제출한 최종용역보고서는 GIMS 프로그램의 운영체계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보고서 목차 중 눈길을 끄는 제목은 ‘글로벌정보 서비스 적용 및 검증된 시스템-GIMS 활용 구조도’다. GIMS 프로그램 개발이 차기 대선이 있는 2017년 완성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는 점도 그렇지만, 아직 시험운영 단계에 불과한 짐스를 ‘검증된 시스템’이라 부른 것도 이상하다.

경향신문

크롤링은 ‘댓글부대’와 어떤 관계

GIMS 프로그램은 정보수집 방법으로 내부정보망을 활용하는 방법과 함께 SNS 검색 등을 통해 외부로부터 빅데이터 수집을 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빅데이터 수집은 일명 크롤링(Crawling)이라는 프로그램이 사용됐다. 크롤링은 무수히 많은 컴퓨터에 분산 저장되어 있는 정보를 일정한 검색 키워드를 활용해 긁어 모으는 것을 말한다. GIMS 활용 구조도에 보면 크롤링을 뜻하는 게(Crab) 그림도 그려져 있다.

그렇다면 크롤링은 ‘댓글부대’와는 과연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주간경향>은 서울 강남의 한 컴퓨터 보안전문가 ㄱ씨로부터 크롤링을 통해 실시간으로 여론 동향을 탐지하는 시연장면을 볼 수 있었다. 프로야구단 기아 타이거즈에 대한 여론 동향 탐지를 목적으로 분석대상 사이트에 각종 포털, 커뮤니티 주소를 입력하니 실시간으로 타이거즈에 대한 찬·반 의견이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일목요연하게 표시됐다. ㄱ씨는 “이 시스템을 이용하면 어떤 사이트에서 주로 찬성과 반대 의견이 많은지도 알 수 있고, 부정적인 의견을 상쇄하기 위해 어떤 정보를 흘려보내면 좋은지도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메르스 파동 때도 정부에서 이 시스템을 이용해 여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몇 개 업체를 모아 입찰에 부쳤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빅데이터를 통한 의사결정이라는 측면에서 여러 모로 GIMS 프로그램은 가상경제센터의 연구분야를 연상시킨다.

실제 <주간경향> 취재 결과 GIMS 프로그램 시험개발과 운영은 2013년 7월이며, 김 전 교수가 쓰용 교수와 계약을 맺고 최고위과정을 본격적으로 띄운 시점은 2013년 8월로, 2개 사업이 거의 동시에 추진됐다. 그린미디어 최종용역보고서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일종의 정보 컨트롤타워로 100평 규모에 20여명의 운영요원이 상주하는 K룸을 설치할 계획도 갖고 있었다. 보고서에는 K룸에서 모든 시스템을 원격제어하고 정보수용자들의 움직임을 실시간 모니터링하게 설계가 돼 있었다.

전문가들은 “K룸이 수출정보 제공이라는 당초 고유 용역 목적에 사용되면 문제가 없겠지만 이를 권력기관이 여론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목적으로 사용된다면 빅브라더가 될 위험이 충분히 있어 보인다”고 했다. GIMS의 초기 개발을 맡았던 지엔씨솔류션 대표 금모씨는 “내가 개발한 프로그램은 수동으로 정보를 입력하는 것이었고 (원격제어를 통한) 모니터링이나 크롤링은 없었다”며 “누가 업데이트한 것 같은데, 어떤 용도로 사용하려 했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경찰이 ‘댓글부대’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 의지가 있다면 압수수색을 통해 가상경제센터와 김 전 교수가 맺은 운영계약서와 KTL 전산실 서버에 남아 있는 GIMS 프로그램부터 확보해야 한다. 과연 남은 수사기간 동안 경찰이 그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선택은 경찰의 몫이지만, 진실을 영원히 묻어둘 수는 없다.

<강진구 기자 kangjk@kyunghyang.com김신애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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