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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커버스토리]댓글…진보의 영토서 ‘보수의 벙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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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세계에서 우리를 반대하는 세력이 2 대 8로 많다. 다음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승리를 위해 1만명의 디지털 지도자를 양성해서 정면승부를 걸겠다.” 2010년 안상수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한 말이다. 정권재창출을 위한 ‘사이버 전사대’를 만들겠다고 노골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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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전사대 양병설의 결과일까. ‘온라인’ 복면을 쓴 국가기관이 인터넷 공간에서 폭력시위를 벌이고 있다. 국가정보기관이 댓글부대를 동원해 대선에 개입했다. 구청 직원들이 서울시 정책에 맞서 댓글 여론조작에 나섰다.

국가정보원은 2012년 대선에서 과거 흑역사를 되풀이했다. 헌정유린, 정치공작이라는 ‘검은 힘’ 대신 댓글이라는 ‘보이지 않는 힘’을 과시했다. 국정원은 심리전단 소속 직원 70여명과 민간인까지 댓글활동에 밀어넣었다. 이들은 사이버 공간에서 야당 후보를 비방하고 전직 대통령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국정원 댓글사건의 시작과 끝은 종북 프레임이었다. 야당 대선 후보를 ‘좌빨 후보’로, 특정 지역 시민을 ‘홍어 종자’로 매도했다. 국가정보기관이 분단상황을 악용해 현실정치에 개입한 것이다.

서울 강남구청은 서울시 현안에 댓글 여론전을 선포했다. 현대차그룹의 공공기여금 활용, 구룡마을 개발, 제2시민청 건립, 행복주택 건설 등 사활이 걸린 이슈마다 댓글로 공격했다. ‘(서울시는) 불법 공화국’ ‘(시의원은) 야바위’ ‘독불장군 서울시장’이라는 원색적 비판을 쏟아냈다.

강남구청 댓글사건은 ‘개발 이익’이라는 기득권 이슈와 무관치 않다. 개발자와 구청의 뿌리 깊은 유대관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깔려 있다. 2006년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투쟁과 최근 국정교과서 논란에서도 댓글의 은밀한 유혹은 공직사회를 부추겼다.

공직사회가 주도한 댓글 여론전은 인터넷 역학구도를 흔들었다. 온라인 공간은 더 이상 진보의 성역이 아니었다.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2012년 총·대선에서 온라인 승자는 보수 진영이다. 온라인에 취약했다는 자성 이후 오랜 시간 이기기 위한 싸움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여권은 한발 더 나아가 사이버테러방지법 처리를 벼르고 있다. 국정원에 민간 인터넷 서비스를 지휘·감독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법이다.

국가기관이 주도한 댓글사건 이후 민주주의 후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정원 개혁 등 제도 개선과 함께 공직사회 변화 등 문화적 개선도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승원 성균관대 겸임교수는 “공무원의 익명 댓글을 막으려면 민관의 자유로운 토론문화가 정착돼야 한다”며 “관도 계몽이 아니라 시민과 논쟁한 뒤 틀리거나 부족하면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구혜영·박은하 기자 kooh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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