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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장강명 "'댓글사건'서 영감 얻은 소설…최대한 불편하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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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작 '댓글부대' 출간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한혜원 기자 = 소설가 장강명(40)이 새 장편소설 '댓글부대'(은행나무)를 펴냈다.

'열광금지 에바로드'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에 열광하는 '오타쿠' 이야기를, '표백'에서는 꿈 없이 방황하다 자살을 택하는 신세대의 모습을, '한국이 싫어서'에서는 희망 없는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새 삶을 찾는 젊은이의 삶을 그린 작가가 이번에 파헤친 소재는 '인터넷 여론 조작'이다.

20대 초반 남성인 '찻탓캇', '삼궁', '공일사일공'(01査10)은 말하자면 '인터넷 여론 조작단'이라고 할 수 있는 '팀-알렙'의 구성원이다.

처음에는 기업 상품평이나 유학 후기를 지어내며 쏠쏠한 용돈을 벌던 이들은 모 전자회사 생산라인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죽은 이들을 대변하는 영화가 흥행하지 못하도록 '여론 물타기'를 하는 데 성공한다.

그렇게 조금씩 대담해지던 팀-알렙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 '이철수'와 '노인'으로부터 "민주주의를 해치는" 주요 인터넷 커뮤니티를 무력화하고 10대들 사이에 "386세대를 씹는"문화를 일으키라는 지시를 받는다. 선불금은 5천만원.

작가는 2012년에 낸 소설집 '뤼미에르 피플'(한겨레출판) 수록작 '삶어녀 죽이기'의 주인공들을 이 작품에 다시 불러왔다. 사악한 세력이 배후에서 여론을 조종하는 과정은 전작보다 더 적나라하고 파괴적으로 그려진다.

최근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서 만난 작가는 "국정원 댓글 사건에서 영감을 받았다"며 "우리가 굉장히 허약하게 쌓아올린 건물, 기둥 몇 개만 부러뜨리면 무너지는 인터넷이라는 건물을 튼튼하다고 믿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소개했다.

"만약 정말 똑똑한 사람들이 작정하고 인터넷 여론을 조작하려고 하면 가능할 것도 같았어요. 큰돈 안 들이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실제로도 그런 일이 이미 벌어진다고 생각해요."

이철수 일당이 팀-알렙을 꾀는 미끼는 현금이 아니라 '자부심'이다. 팀-알렙은 마치 정의의 사도가 된 듯 우쭐해 한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사실 세 사람은 이렇다 할 직업 없이 강자에게 이용당하고, 임무를 마치면 용도 폐기될 운명임을 알 수 있다. 현금을 손에 쥐었을 때는 음란하게 놀기에 바쁜데, 여자들에게도 이용당한다. 장씨가 그간 '표백', '열광금지 에바로드' 등에서 보여준 무력한 20대의 현실이 여기서도 보인다.

"젊은 남녀가 통째로 다 가난해지고 정신적으로 무력해질 때가 제일 파시즘이 퍼지기 쉬운 때인 것 같아요. 실제로 우리가 그 단계의 초입에 온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약간 듭니다. 좌절감이나 무력감을 누가 살짝만 건드리면 그게 증오로 변할 것 같아요."

소설은 전반적으로 불편하다. '김치녀' 정도 표현은 예사고,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의 남성 우월주의적이며 보수적인 시각을 완전히 체화한 등장인물들의 대화가 낯뜨겁다 못해 불쾌한 느낌도 준다. 작가는 "불편함은 의도한 것"이라고 했다

"사람 따귀를 후려치는 것 같은 느낌으로 쓰고 싶었습니다. 표현도, 주제도, 이야기도 다 사람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거죠. 표현도 센 표현과 보고 싶지 않은 장면들로만 꾸몄어요. 보통은 소설을 쓰면 기분이 좋은데, 이 작품은 쓰면 쓸수록 기분이 안 좋아지고 어두워졌어요."

장씨는 이 작품으로 올해 제주 4·3 평화문학상을 받았다. 2011년 한겨레문학상('표백'), 2014년 수림문학상('열광금지, 에바로드'), 올해 문학동네작가상('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에 이어 벌써 네 번째다. 동아일보 기자 출신인 그가 전업 작가로 남을 확신을 얻으려고 문학상 공모에 열을 올렸다는 이야기는 문단에서 유명하다.

작가는 "2013년 9월에 퇴사를 하고서 지난해 말까지 소설가로서 성과를 못 내면 전업작가는 포기하기로 아내와 약속했기 때문에 열심히 문학상에 지원했다"며 "상금은 아마 전세금 올려주는 데 다 들어갈 것 같다"고 웃었다.

방황하는 20대 이야기를 많이 쓰는 것에 대해서는 "저의 고민이 지금 20대의 고민과 비슷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지금 20대가 고민하는 게 '어떻게 살아야 하나'인 것 같아요. 한국사회가 그에 답을 못 주는 사회가 됐고요. 저도 그 고민을 굉장히 심하게 하거든요. 어떻게 살지, 뭘 해먹고 살아야 할지를 굉장히 고민하죠. 작품에서도 계속 그런 고민을 하는 주인공을 쓰려고 하다 보니 20대의 주인공을 자꾸 부르게 되는 것 같아요."

작가는 "이제는 지난해처럼 못 쓸 것 같다"고 했지만 벌써 출간 준비 중인 책이 줄을 서 있다. '문장' 웹진에 연재한 공상과학(SF) 소설 '목성에선 피가 더 붉어진다'를 내년 초 출간할 예정이며, 남북관계를 소재로 한 스릴러 장편도 쓰고 있다.

자신을 전업작가가 되게 해준 장치이면서도, '문학 권력' 논란으로 뜨거운 감자가 된 문학 공모전 제도에 대해서는 기자 경험을 살린 비소설 저서를 준비 중이다.

작가는 "한국 문학 판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이 문학 공모전 제도는 한국 특유의 문화인 '공채 제도'의 한 유형"이라며 "공모전 제도, 로스쿨-사법고시 논란, 대기업 입사 전쟁 등을 관통하는 한국의 공채 제도를 파헤치고 그 방식에 변화를 주자는 얘기를 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hye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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