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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단독] 중국과학원 ‘한국교육원 없다’ 공식입장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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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수료증 장사 ‘댓글부대’ 용역업체 회장 증거인멸 시도 의혹



국정원 출신으로 ‘댓글부대’ 의혹을 받아온 용역업체의 회장을 지내기도 했던 김흥기 카이스트 겸직교수의 ‘가짜 수료증 장사’ 보도 (<주간경향> 1150호)에 대해 중국과학원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중국과학원은 11월 18일 가상경제센터 홈페이지를 통해 “(우리는) 한국에 어떤 캠퍼스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공식선언했다. <주간경향>이 중국과학원 한국분원장 행세를 해온 김 교수 사기극의 전말을 보도한 지 보름 만에 공식입장을 밝힌 것이다. <주간경향>은 김 교수가 2013년 9월부터 150여명의 수강생으로부터 1인당 600만원의 교육비를 받으며 근 2년간 서울 강남에서 중국과학원 지식재산 최고위과정을 운영해온 사실을 11월 2일 단독 보도한 바 있다.

중국과학원을 대표해 공식입장을 밝힌 사람은 김 교수 초청으로 한국에 와서 입학식과 수료식에 참석하고 수료증도 전달한 가상경제센터 부센터장인 쓰용 교수였다. 본원과 3개 대학에 산하 100여개의 센터를 가지고 있는 중국과학원이 일개 부센터장을 통해 공식입장을 밝히도록 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중국과학원 ‘한국캠퍼스’는 본부와 대학 차원에서 논평할 가치조차 없는 만큼 김 교수와 교류를 해온 센터 차원에서 그 진상을 얘기하는 게 격에 맞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경향신문

2013년 9월 중국과학원 지식재산 최고위과정 1기 입학식 장면. 중국과학원이 한국교육원을 승인한 적이 없다는 공식입장을 밝힌 11월 18일을 전후해 김흥기 교수가 회장으로 있던 글로벌이코노믹 온라인 기사에서 중국과학원 관련기사가 일제히 사라졌다. 사진 앞줄 왼쪽부터 김영민 특허청장, 새누리당 김광림 의원, 이상희 전 과기부 장관, 중국과학원 가상경제센터 쓰용 부센터장, 정길생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이사장, 김흥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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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경제센터 반나절 방문 증명이 전부

실제로 쓰용 교수가 밝힌 교류·협력의 실체는 중국과학원과 아무런 상관도 없고, 김 교수가 운영하는 13주 과정의 교육 중 가상경제센터에서 제공하는 반나절짜리 ‘현장방문’(field trip)에 불과했다. 쓰용 교수는 가상경제센터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우리는 (김 교수가 운영하는) 프로그램 중 현장방문 코스만 공동으로 제공할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가상경제센터 직인과 자신의 이름이 들어 있는 수료증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입장을 정리했다. 수강생들이 13주 교육과정 중 중국과학원을 방문하면 가상경제센터 차원에서 반나절 코스를 돌게 하고 그 증명으로 수료증을 발부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중국과학원과 아무런 상관이 없고, 수료증 직인도 중국과학원 것이 아닌 가상경제센터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1인당 600만원의 교육비를 내고 김 교수가 운영하는 최고위과정에 등록한 수강생들은 수료증이 중국과학원에서 정식으로 발부한 것으로 믿고 있었다.

심지어 김 교수와 2013년 초부터 알고 지내며 수강생을 모집해주고 직접 3기로 과정까지 마친 박경식 미래전략정책연구원 원장조차 철저히 위장된 김 교수의 사기극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수료증은 중국과학원에서 13주 과정 전체를 이수한 증명으로 알았지, 단지 현장방문 코스를 이수한 증명이라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고 했다.

중국 현지 교육도 말이 교육이지 관광에 불과했다. 박 원장은 “2박3일 중 교육은 반나절가량 가상경제센터와 박물관을 둘러보고 베이징의 한 특허법인을 방문한 것이 전부였다”며 “나머지는 만리장성 등 주로 관광으로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이로써 중국과학원 한국분원장 행세를 하며 정부기관을 후원기관으로 등록시키고 전·현직 장·차관까지 강사와 수강생으로 동원한 김 교수의 사기극은 이제 생명을 다하게 됐다. 11월 2일 <주간경향>이 최초로 가짜수료증 장사를 보도할 때만 해도 설마설마하던 특허청과 중소기업청은 이제 김 교수라는 말만 나와도 진저리를 쳤다. 특허청 정연우 대변인은 “앞으로 김 교수로부터 어떤 후원 요청이 와도 이제는 후원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사기극이 막을 내렸다고 법적 분쟁까지 완전히 마무리된 것은 아니다. 중국과학원이 지금까지 조용히 관망하던 자세에서 벗어나 대학의 신용과 명예를 실추시킨 부분에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태도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중국과학원대학 시에 용 대외협력실장은 <주간경향>에 보낸 이메일에서 “대학 이름과 로고를 도용한 것을 포함해 지적재산을 침해한 ‘범법자’(infringer)에 대해서는 상응하는 법적 대응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알려 왔다.

중국과학원이 이처럼 강경대응 조치를 천명하고 나선 데는 김 교수의 사기극에 놀아난 한국의 정부기관들에 일차적으로 책임이 있다. 특허청과 중소기업청, 미래부 등 가짜수료증 장사에 놀아난 기관들이 최초로 사건이 불거진 후 보름 가까이 되도록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자 직접 행동에 나선 것이다.

특히 한국의 정부기관들이 어정쩡한 반응을 보이는 사이 김 교수가 11월 4일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명의도용 책임을 부인하고 정식 운영계획서가 있다고 주장한 것이 중국과학원을 결정적으로 자극했다. 김 교수는 기자회견에서 “중국과학원 명의를 도용한 것이 아니다”라며 “최고위과정 운영계약서가 있고, 계약에 의해서 모든 과정을 문제없이 처리했다”고 주장했다. 이를 전해 들은 중국과학원은 격노했다. 시에 용은 “한국에서 누구도 우리 대학의 이름과 로고를 사용할 계약을 체결하거나 권한을 가진 사람은 없다”며 김 교수를 범법자로 지칭했고, 아시아지역 대외협력 총책임자는 ‘사기’(fraud)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중국과학원, 법적 대응조치 검토

김 교수는 기자회견을 끝낸 직후인 지난 6일 베이징에 들어와 쓰용 교수와 면담을 시도했다. 김 교수는 <주간경향>을 상대로 언론중재위에 정정보도를 신청해 11월 9

일로 심문일정이 잡혀 있었으나 갑자기 당일 오전 취하서를 제출했다. 자세한 내막은 알기 어려웠지만 그에게는 정정보도보다는 쓰용 교수와의 면담이 그만큼 더 절실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자회견도 모자라 쓰용 교수를 만나 뭔가를 설득하려 한 그의 석연찮은 행보는 중국과학원을 더욱 자극할 뿐이었다. 중국과학원 아시아지역 대외교류협력 총지배인 이치장은 11월 10일 <주간경 향>과의 통화에서 “김 교수가 6일부터 베이징에 와서 쓰용 교수를 만나고 있는 모양인데, 우리는 그에게 관심이 없고 대학에서 내부조사를 통해 곧 공식 리포트가 나갈 것”이라고 했다. 대학의 모든 대외협력 사안을 총장에게 직보하는 권한을 갖고 있는 그는 김 교수가 쓰용 교수와 가짜 계약서를 꾸며내더라도 소용이 없다는 말도 했다. 그는 “어느 누구도 총장의 공식적인 위임 없이 중국과학원 이름으로 계약을 체결할 수 없고, 만약 내가 모르는 그런 계약서가 있다면 그건 가짜”라고 했다.

하지만 중국과학원의 이 같은 기류를 미리 눈치챈 듯 김 교수는 11월 18일 쓰용 교수가 웹페이지에 ‘한국캠퍼스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올리자 지금까지와는 다른 해명을 했다. 그는 “한국교육원은 최고위과정 운영사무국을 편의상 줄여서 사용한 명칭으로, 중국과학원 한국분원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했다. 교류의 차원을 중국과학원이 아닌 쓰용 교수가 있는 가상경제센터 차원으로 내리면서 한국교육원장 행세를 한 적이 없다고 태도를 바꾼 것이다. 또한 ‘댓글부대’로 의심받는 용역업체이자 그가 한때 회장으로 있던 글로벌이코노미 온라인 기사 중 중국과학원과 관련된 기사를 일제히 삭제했다. 삭제된 기사에는 그가 중국과학원과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공동주관하는 최고위 과정의 한국분원장임을 명시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중국과학원이 한국교육원을 승인한 적이 없다고 하자 ‘말바꾸기’와 함께 ‘증거인멸’을 한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김 교수의 돌출행각을 전해 들은 이치장은 황당해 했다. 그는 <주간경향>에 “쓰용 교수가 밝힌 입장을 가지고 한국 경찰에 고발하면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자료를 제공하고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반면 김 교수의 사기극에 직·간접적으로 동원된 미래부, 특허청, 중소기업청은 하나같이 “우리는 더 이상 휘말리고 싶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번 사태가 범죄수사로 이어지지 않길 바라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정부기관의 이 같은 소극적인 반응이 더 이상 망신살을 사지 않기 위한 ‘고육책’인지, 아니면 단순한 ‘눈치보기’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몸을 사릴수록 김 교수의 배후를 둘러싼 의문은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강진구 기자 kangjk@kyunghyang.com김신애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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