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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국정원 불법, 안보라는 말로 감추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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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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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서울변회 인권위 토론회

“첩보활동 말라는 게 아니라

적법절차 따르라는 것”

국정원 해킹 ‘국민고발단’

시민 2786명·단체 41곳 참여


국가정보원 해킹 의혹 사건의 진상을 밝히라는 요구에 대해 새누리당과 보수언론 등이 “안보 자해행위”(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라는 논리를 펴며 ‘물타기’를 본격화하고 있다. ‘적을 코앞에 두고 국정원을 무장해제시키자는 것이냐’는 식의 ‘안보론’을 내세워 불법 논란을 뭉개고 가겠다는 것인데, 법률 전문가들은 “첩보활동을 하지 말란 게 아니라 법 테두리 안에서 해야 한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라고 입을 모은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회(위원장 오영중)가 30일 서울 서초동 변호사회관에서 주최한 ‘정부기관의 정보수집 권한의 한계와 견제 방안 등에 대한 강연회 및 토론회’에서 최진녕 변호사는 “국정원이 적법절차를 지켰는지 여부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통신비밀보호법은 통신의 일방이나 쌍방 당사자가 내국인일 때는 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 허가를, 북한 공작원이나 외국인을 대상으로 할 때도 서면으로 대통령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국정원은 해킹 대상이 외국인이라면서도 해킹 프로그램인 아르시에스(RCS) 사용과 관련해 대통령 승인을 받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최 변호사는 “해외로부터 해킹 프로그램을 구매한 것은 문제 삼을 수 없지만, 국정원이 마음대로 민간인 사찰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라며 “국가 안보를 위해 통신제한조치를 하더라도 통신비밀보호법에 규정된 적법절차를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수진영 일각에서 “국정원의 사이버전 능력을 제거하라는 것이냐”며 반발하는데, 정보기관으로서 활동은 하되 법 테두리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게 핵심이란 얘기다. 대통령 승인 등 절차를 밟을 경우 제3자나 언론에 공개되는 게 아닌데, 마치 적법절차를 밟으면 비밀스러운 첩보활동이 불가능한 것처럼 호도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서울변호사회 토론회에서는 하드웨어가 아닌 프로그램이 ‘감청설비’에 해당하는지, 해킹 프로그램을 이용해 통화를 녹음하게 한 뒤 빼돌리는 게 감청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하지만 형식적으로 실시간 감청으로 볼 수 없을지라도 해킹 프로그램은 통화 내용뿐 아니라 스마트폰에 저장된 모든 정보를 빼낼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심각한 권리 침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대상이 누구인지를 떠나 해킹 자체만으로 불법성이 농후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아르시에스 프로그램은 현행법상 그 사용을 적법하게 허용하는 근거 규정이 존재하지 않아 위법한 행위”라며 정보통신망법, 형법의 비밀침해죄 등이 적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해킹 프로그램은 상대의 휴대폰 등에 악성프로그램을 심어 원할 때 언제나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전송받을 수 있기 때문에 감청에 해당한다. 외국인이 상대였다고 해도 대통령 승인이 없었다면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말했다.

“RCS 사용 적법 규정없어” “감청보다 더 심각한 폐해”

국정원이나 여당 쪽의 ‘안보론’은 책임 회피용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최강욱 변호사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국정원은 헌법의 어떤 조항에 의해 도청 프로그램을 구입하고 어떤 법률에 근거해 실행했는지 설명한 다음에 국가 안보를 얘기해야 한다. 국가 안보만 내세우는 것은 일을 저질러놓고 감추려는 것밖에 안 된다”며 “그런 식이라면 국가가 행한 모든 일이 (불법이더라도) 안보를 위한 것이라고 하면 되는 것이냐”고 했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도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첩보활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하려면 적법절차에 따라 하라는 것”이라며 “문제의 발단은 대선 개입과 댓글 공작 등으로 국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떨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직 국정원 관계자는 “사전 허가나 승인이 어려운 경우가 있다면 일정 기간 뒤에라도 승인을 받거나 보고를 하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서울변호사회 토론회에서 이광철 변호사는 “국정원의 국내 보안정보 수집은 원칙적으로 폐지돼야 한다. 해외, 대북 정보와 관련 있는 국내 정보만을 제한적으로 수집하도록 하는 것이 옳다”며 국정원의 국내 정보 수집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손영동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사이버 위협이 심각해지는데 다른 나라에 비해 정보 수집에 법적 규제가 많다. 새로운 위협을 직시하고 관련 법을 전면 재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한편 국정원 해킹 사찰 의혹 수사를 위한 ‘국민고발단’을 모집해온 시민사회단체는 이날 시민 2786명과 41개 단체 이름으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장을 냈다. 고발 대상은 이병호 국정원장과 원세훈·남재준·이병기 전 국정원장 등 국정원 전·현직 관계자 10여명,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국정원 직원이 속했던 국정원 연구개발단(팀) 직원들, 국정원의 해킹 프로그램 구매를 중계한 나나테크 허손구 대표다.

이들은 고발장에서 △휴대폰·컴퓨터 감청·해킹 프로그램을 국회 정보위원회에 통보 없이 도입(통신비밀보호법 위반) △악성코드 유포·통신망 침입(정보통신망법 위반) △대통령 승인 또는 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 허가 없이 감청(통신비밀보호법 위반) △직권을 남용해 사생활 침해(국가정보원법 위반) 등의 혐의를 적시했다.

서영지 김규남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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